[매경이코노미스트] 세 지역 이야기

2023. 6. 28.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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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용 공공 조형물 늘린 A
외국 노동자에만 미래 맡긴 B
청년 여성 정주 환경 만든 C
지역 지속가능성의 키 쥔
젊은 여성 붙잡은 곳이 생존

A지역 지자체장은 지역에 길이 보존될 업적을 남기고 싶었다. 관광객 유치를 명분으로 커다란 지역 상징 조형물을 세웠다. 지역 국회의원과 의기투합해 중앙정부의 공모사업을 연거푸 따냈다.

B지역 지자체장은 거대 제조업으로 잘나갔던 지역경제의 부흥을 꿈꿨다. 제조업 일자리를 꺼리는 청년들을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미래를 맡기는 쪽으로 눈을 돌렸다.

C지역 지자체장은 지역의 정주 환경 개선에 노력하며, 그 초점을 청년 여성에게 맞췄다. 청년 여성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을 공들여 유치하고, 새로운 상권이 들어설 거리를 단장했다. 공공 산후조리원을 만들어 1년 이상 거주한 지역민에게는 무료로 제공하고, 아이들을 위한 돌봄과 의료 지원 및 양질의 방과 후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세 지역이 속한 나라는 초저출생, 급고령화, 수도권 일극화로 지역 소멸 위기가 높아지고 있었다. 각 지역은 그 후 어떻게 됐을까?

A지역에 가면 흉물로 전락한 조형물부터 만난다. 아무도 거기서 사진을 찍지 않는다. 중앙정부 돈으로 건립한 공공시설들은 수요가 적고 유지관리비가 더 들어 시설 운영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지자체의 운신 폭은 좁아졌고 재정은 파산 위기에 몰렸다.

B지역은 외국인 일색의 공장지대가 됐다. 외국인을 주 고객으로 하는 늙은 택시 기사나 작은 가게 주인 외에는 내국인이 사라진 지 오래다. 외국인들이 자국어만 써도 지역 내에서 사는 데는 문제가 없다. 타지에서 방문하는 내국인은 출장을 온 사람뿐이다.

C지역에는 타지에서도 젊은 여성들이 취업하러 들어왔다. 그들의 감성에 지역다움을 가미한 상권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관광객까지 끌어들였다. 사진을 찍고 지나가는 곳이 아니라 머무는 곳, 살아보고 싶은 곳으로 변했다. 젊은 남성들도 몰렸다. 청년들은 지역에서 일하고 데이트하고 결혼했다. 수도권보다 싼 집값, 출산·보육·교육에 대한 지원이 지역의 출생아 수와 젊은 전입 인구를 늘렸다.

세 지역 모두 한국에 있을 법한 곳이다. A지역은 중앙정부 재정 지원을 따내 인프라를 계속 건설했지만, 이용률이 낮은 유사 시설들만 늘어났고 기업도 유치하지 못했다. 중앙정부 지원을 받아 건립한 시설은 용도 전환이 어려웠고 돈 먹는 하마로 남았다.

B지역은 타지보다 높았던 1인당 지역총생산이 변화 시도에 장애가 됐다. 가부장적 1인 부양자 가구가 옛말이 된 현실에서 비제조업 일자리를 찾는 고학력 청년 여성을 잡지 못했다. 그 지역에 있으면 장가가기는 글렀다는 걸 알게 된 청년 남성도 떠났다.

C지역은 지방소멸위험지수(=20·30대 여성 인구/노인 인구)의 분자를 이루는 젊은 여성이 지역 지속가능성의 키를 잡고 있음을 간파했다. 청년 여성이 지역에 남는 이유와 들어와 사는 이유를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곳, 지역 살이가 부끄럽지 않고 당당한 곳으로 만드는 걸 목표로 했다.

최근 지역 소멸 위기 속에서도 희망을 보게 되는 측면이 있다. 지역 방문자가 늘어 생활인구 개념으로 지역경제에 활력을 준다는 점, 청년은 수도권으로 몰리지만 50·60대 은퇴자는 비수도권 유입이 많다는 점, 신재생에너지로 가야 하는 에너지 다소비형 기업과 중국에서 국내로 돌아오는 기업이 비수도권에서 입지를 찾고 있다는 점 등이다. 이에 더해 젊은 여성의 선택을 출발점으로 삼은 C지역의 섬세한 노력도 희망의 실현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돈과 시간을 잘 쓴 지역이 살아남는다.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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