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신용등급 낮아지면 ELS·DLS 못 판다
등급산정·검증비 부담, 고객성향과 등급 미스매치 과제
앞으로 신용등급이 낮은 증권사는 파생결합상품 판매가 어려워질 수 있다.
주가연계증권(ELS)과 파생결합증권(DLS)을 비롯한 구조화상품 위험등급에 제조사의 신용등급을 반영하는 '투자성 상품에 대한 위험등급 산정 가이드라인(이하 가이드라인)'이 시행을 앞두고 있어서다. 증권사 신용등급이 'BBB' 이하로 떨어지면 ELS, DLS 상품의 위험등급이 모두 한 등급씩 높아져 판매가 제한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가이드라인 시행 시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중소형 증권사들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이드라인에는 그동안 금융사별로 제각각이던 투자성 상품의 위험등급 산정기준을 통일하고, 증권사나 은행 등 판매사가 자체적으로 위험등급을 산정해 소비자에게 안내하도록 판매자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금융당국과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은 자본시장연구원이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투자성 상품 위험등급 규율 강화'를 주제로 연 세미나에서 가이드라인 시행을 앞두고 산적한 과제들에 대해 논의했다. ▷관련기사:펀드 '위험등급' 증권, 은행사별로 달라질 수 있다?
세미나에서 '위험등급 산정 의무화에 따른 이슈 및 업계 영향'을 주제로 발표에 나선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존에는 ELS, DLS 등 파생결합상품에 시장위험(기초지수)만 반영했다"면서 "하지만 발행사의 신용위험이 손실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앞으로는 신용위험도 반영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신용등급이 낮은 중소형 증권사가 ELS, DLS 상품을 발행하면 위험등급이 상향돼 판매가 어려울 수 있다"고 전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위험등급 산정 의무화에 따라 은행은 고위험 상품 판매를 축소할 수 있고, 저신용 중소형 증권사들도 판매가 위축될 개연성이 있다"면서 "다만 현재 대부분의 금융사 신용등급이 'BBB+' 이상인 만큼 신용위험 반영에 따른 중소형 증권사들의 부담은 당장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진단했다.
판매사 등급산정, 검증비 부담 커진다
금투업계에서는 위험등급 산정과 검증체계 마련에 따른 전반적인 비용 증가도 우려하고 있다. 이를 위한 데이터 수집 비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상품별로 △펀드의 경우 과거 순자산가치 데이터가 △파생결합상품(ELS, DLS)은 기초지수, 과거 수익률, 수익구조, 발행사 신용위험 등이 △주식이나 채권은 일간수익률과 신용등급 △일임 상품은 편입상품 규모와 일간수익률 등의 데이터가 필요하며 환율, 발행사 신용등급, 환매비용 등의 자료도 필요하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위험등급 산정, 검증에 필요한 데이터 수집 비용이 은행, 증권사와 같은 판매사들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고 제조사인 운용사들도 위험등급 산정업무를 외부 위탁할 경우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상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은행, 증권사들이 동일 상품에 대해 다른 위험등급이 나올 수 있는 문제를 제기하는데, 이는 기준 산식이 비슷하다고 해도 회사마다 모델이 달라 발생할 수 있는 이슈"라면서 "회사마다 보유한 데이터가 다를 수 있지만 제대로 데이터 확보가 안 되면 등급 산정에 대한 수치를 신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위험등급 산출을 위탁할 수 있는 전문 인프라 유관기관이 필요하다는 대안도 제시됐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자본시장 데이터 공급 인프라를 제공하는 유관기관에 업무위탁해 비용 부담 등을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김도연 코스콤 경영전략본부장은 "소비자 보호를 과도한 비용이나 부담으로 인식하는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면서 "판매사 간 중복 투자나 위험등급 처리 오류 발생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게 정보기술(IT) 인프라 제공 기관인 코스콤이 대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위험등급 산정업무를 외부에 위탁한다고 해도 판매사나 제조사의 '책임'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김재흥 금융감독원 금융상품판매감독팀장은 "업무위탁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업무를 위탁한다고 해서 제조사나 판매사들이 위험등급 산정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업무를 위탁해도 제도 취지가 판매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험등급 적정성 판단 기준과 검증체계 등을 자체적으로 가지고 이를 내부통제에 적절히 반영해야 한다"고 전했다.
투자성향과 미스매치, 동일등급 대체상품 오인 등도 과제
앞으로 모든 투자성 상품의 위험등급이 1~6등급으로 적용되는 만큼 고객 투자성향과 등급이 매칭되지 않는 문제도 장기적 과제로 거론됐다. 현재 증권사의 고객 투자성향 등급은 1~5등급 체계다. 고객 투자성향이 3등급인 경우 판매사에 따라 가입할 수 있는 상품군은 3~6등급 혹은 4~6등급 식으로 갈릴 수 있다.
이에 금융투자협회는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세부사항을 담기로 한 '표준투자권유준칙' 내 기존 5등급 체계로 제시했던 고객 투자성향 등급 예시에 6등급 체계를 추가한다는 방침이다. 장기적으로 고객 투자성향 등급을 위험등급 체계와 맞추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이봉헌 금융투자협회 자율규제본부장은 "기존 공모펀드뿐 아니라 모든 투자성 상품 위험등급이 6등급으로 변하는 만큼 고객 투자성향과 위험등급에 차이가 있는 부분을 어떻게 다뤄나갈지 추가적인 협의가 필요하다"면서 "아직 확정된 사항은 아니지만, 등급이 미스매칭 되는 부분을 장기적으로 해소할 수 있도록 투자성향 6등급 예시를 제공해 유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 경우 기존의 고객투자 성향 관련 시스템을 모두 바꿔야 하는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금융당국과 학계 등에서도 투자성향 등급 변경은 의무사항이 아닌 만큼 당장 시행은 어렵다고 판단하고 장기적으로 등급을 맞춰 가는 방향이 긍정적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밖에 투자성 상품의 위험등급을 6등급 체계로 통일했을 때 소비자들의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동일 위험등급 상품을 대체 상품으로 오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제 선임연구위원은 "위험등급이 잘 정착되면 한눈에 상품의 위험 수준을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자칫 동일 위험등급 상품을 대체상품으로 오해할 여지도 있다"면서 "2등급의 펀드상품과 파생결합상품은 오렌지와 사과처럼 대체할 수 없고 같은 등급이라고 해도 투자자마다 기대효용이 다를 수 있어 모든 고객에게 똑같은 형식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맞는지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김재흠 팀장은 "이번에 금투업계가 어떻게 대응하고 해결해 나가는지에 따라 투자 위험등급뿐 아니라 전반적인 업계 발전의 초석이 될 것으로 본다"면서 "가이드라인의 본격적인 시행 전 소비자 권익증진을 최우선으로 놓고 산정 결과를 소비자에게 쉽게 설명하는 방법 등의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당국은 애초 오는 10월부터 가이드라인과 이에 대한 세부사항을 반영한 '표준투자권유준칙'을 시행할 방침이었으나 아직 논의할 사항이 산적한 만큼 시행 시기를 내년 1월로 미루기로 했다.
김미리내 (pannil@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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