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ESS 화재 80%는 ‘원인 모름’… 정부 골머리

세종=전준범 기자 2023. 6. 28.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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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생 확대 따라 늘어나는 ESS 수요
문제는 화재…원인 못 찾는 건 더 문제
정부, 원인 규명 연구기관 구축 착수
“ESS 안전 정책·예산 투입 신경 써야”

정부와 업계의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 원인 규명 노력에도 지난해 발생한 ESS 화재의 80%가량은 원인 파악조차 안 됐다. ESS는 생산한 전력을 저장했다가 나중에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도록 하는 장치다. 날씨나 시간대에 따라 발전량이 불규칙한 신재생 에너지를 대규모로 활용하려면 이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신재생 에너지 발전 설비가 탄소중립 로드맵에 따라 계속 늘어날 것이란 점에서 ESS 화재 원인 규명은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정부는 원인 규명 연구를 위한 안전성 평가센터와 화재안전 교육센터 구축에 잇따라 나서며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소방청에 따르면 2017년 초부터 작년 말까지 발생한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 사고 44건 중 약 70%인 30건은 ‘원인 미상’으로 처리됐다. 2022년 12월 27일 전남 영암군 금정면 연소리의 한 태양광 발전소 ESS에서 불이 나 소방관들이 진화 작업을 하고 있다. / 뉴스1

28일 정부·학계 등에 따르면 에너지 당국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ESS 안전성 평가센터’ 건립에 본격적으로 착수한 데 이어 ‘ESS 화재안전 교육훈련센터’ 구축에 관한 정책연구용역도 발주했다. ESS 화재 관련 연구·교육 전문기관을 늘려 화재 원인을 분석하고 예방 역량을 강화하려는 목적에서다.

이 중 지난달 말 기공식 행사를 한 ESS 안전성 평가센터는 신재생 에너지 발전 설비 보급과 함께 끊이지 않는 ESS 화재 사고 원인을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기관이다. 내년 12월 완공을 목표로 전북 완주군 1만6654㎡ 부지에 지상 4층 규모로 세워진다. 건물에는 각종 안전시험 공간과 연구·교육 시설, ESS·연료전지 등 주요 신재생 에너지 실증설비 등이 들어선다.

산업부 관계자는 “ESS 하나만 분석하는 게 아니고, 전력변환장치(PCS)·보호장치 등 ESS 작동 과정에서 연동되는 여러 주변 시스템을 하나의 덩어리로 묶어 화재 발생 시 인과 관계를 보다 명확히 규명하는 연구 활동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SS 안전성 평가센터가 화재 원인 규명에 초점을 맞췄다면 ESS 화재안전 교육훈련센터는 ESS 화재 발생 시 대응 역량을 키우는데 방점을 둔 기관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전기안전관리법에 따라 전기 화재 대응 법정의무교육을 실시 중이긴 하나 실제 ESS 화재 시 대처 능력은 여전히 미흡한 게 사실”이라며 “보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ESS 화재 관련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SS는 생산한 전력을 저장했다가 나중에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장치다. 날씨나 시간대에 따라 발전량이 불규칙한 신재생 에너지 설비에 반드시 필요하다. 올해 1월 기준 국내 ESS 설비 규모는 10.17GWh다. 사진은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멱우지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 시설의 모습. / 뉴스1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많은 나라가 신재생 에너지 발전 비중을 확대하면서 ESS 수요도 빠르게 늘고 있다. 올해 1월 기준 국내 ESS 설비 규모는 10.17기가와트시(GWh)다. 시장조사기관 우드매킨지에 따르면 글로벌 ESS 시장 규모는 오는 2031년 1테라와트시(TWh)까지 커질 전망이다.

문제는 ESS를 항상 따라다니는 화재 우려다. 산업부와 소방청 등에 따르면 2017년 8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ESS 화재 건수는 32건, 재산 피해액은 466억원이다. 전국 곳곳에 설치된 ESS에서 1.7개월에 한 번씩 크고 작은 화재가 발생한다는 의미다. 작년에는 총 9건의 ESS 화재가 발생했는데, 피해 규모는 직전 5년 피해액 총합과 맞먹는 448억원에 달했다.

자꾸 불이 나는 것도 큰일인데, 더 심각한 문제는 불이 왜 났는지 모를 때가 많다는 점이다. 소방청에 따르면 2017년 초부터 작년 말까지 발생한 ESS 화재 사고 44건 가운데 약 70%에 이르는 30건이 ‘원인 미상’으로 처리됐다. 작년만 보면 ESS 화재 9건 중 7건(77.8%)의 원인을 찾지 못했다. 인과 파악이 잘 안 된다는 건 앞으로도 화재가 계속될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가 전문 연구기관을 세우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2020년 2월 6일 김재철 당시 ESS 화재사고 조사단 공동단장이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에서 ESS 화재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조사단은 95% 이상의 높은 충전율로 운영하는 배터리 운영 방식과 배터리 이상 현상이 결합해 화재로 이어졌다고 추정했다. / 뉴스1

지금까지 밝혀진 유력한 화재 원인은 배터리다. 정부는 2017년부터 매년 ESS 화재가 끊임없이 발생하자 2019년 1월 ‘민관 합동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위원회’에 이어 같은 해 10월부터는 ‘ESS 화재사고 조사단’을 꾸려 원인 파악에 나섰다.

그간 조사단이 지목한 ESS 화재의 주된 원인은 배터리의 지나치게 높은 충전율이다. 국내에서 쓰이는 ESS는 주로 리튬이온배터리 기반의 대형 에너지 저장 시스템이다. ESS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배터리라는 의미다. 조사단은 95% 이상의 높은 배터리 충전 상태가 급격한 전압 변동과 온도 상승을 야기해 화재로 이어졌다고 추정했다. 그러면서 ESS 충전율을 낮춰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러나 이후로도 화재는 계속 발생하고 있다.

정부가 올해 초 확정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현재 7.5% 수준인 신재생 발전 비중은 2036년 30.6%로 확대된다. ESS 수요도 꾸준히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옥헌 산업부 수소경제정책관은 “전력 안정성을 확보하고 ESS 산업을 활성화하려면 화재로부터 안전을 확보하는것이 핵심”이라며 “정부의 정책 노력과 기업의 자발적인 안전 관리 의지가 합쳐진다면 국내 ESS 산업이 한 단계 도약할 것”이라고 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ESS 화재 원인 파악과 안전성 확보에 많은 시간과 돈이 요구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며 “정책 지원과 예산 투입에 관한 국민적 공감대를 모으는 일도 게을리해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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