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 반란 후 의구심 커진 `푸틴 리스크`…러 우방들, 복잡해진 셈법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의 무장반란 사태 이후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러시아 우방국들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당장 푸틴 대통령을 버리진 않을지언정, 러시아 내 정세 불안 심화에 대비한 '리스크 헤지'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외교가나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이들 국가는 미국을 견제할 목적으로 러시아와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지만, 러시아 정국 불안이나 영향력 약화 등 상황 변화에 따라 러시아와의 관계 유지가 자국에 독이 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27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마이클 맥폴 전 주러시아 미국 대사는 이란과 카타르 등 러시아 우방국들이 프리고진 반란 이후 바로 푸틴 지지를 표명한 데 대해 "전혀 놀랍지 않았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상황을 자극하는 것은 미국은 물론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라며 "하지만 안정 추구가 목적이라면 비공개 석상에서 푸틴이 안정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을 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바꾸기 위해 러시아와 협력관계를 지속해온 중국의 경우 이미 과거부터 '공개석상 지지, 비공개석상 의구심'이란 혼합전략을 써왔다.
반란 사태 이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푸틴 대통령과 통화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중국 외교부는 25일 대변인 명의로 "중국은 우호적인 이웃 나라이자 신시대 전면적인 전략적 협력 동반자로서 러시아가 국가의 안정을 수호하고 발전과 번영을 실현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냈다.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차관이 무장 반란 직후인 24일 베이징에서 친강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지지 선언에 앞서 중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외교적으로 난처한 상황에 내몰려 비공개 석상에선 러시아에 대한 좌절감이 감지된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NYT는 분석했다.
실제로 지난 4월 시 주석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평화 프로세스에 관한 대원칙을 제안하는 등 러시아와의 거리를 조금 벌린 것도 이런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직 미 정보기관의 중국 분석가였던 존 컬버는 "앞으로 이 같은 헤지와 신호 보내기가 더 많아지기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과 대립하고 있는 중국 입장에선 약해진 러시아로 인해 국제적인 고립만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 등 중동 국가들도 공식 석상에선 푸틴 대통령을 지지하지만, 비공식 석상에선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는 유사한 모습이 관찰된다.
중동 국가들은 미국이 중동 문제에서 손을 떼기 시작하자, 그 대체자로 러시아를 주목해왔다. 특히 러시아는 2015년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면서 중동 내 입지를 넓혀왔다.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아랍 국가 지도자들이 무장 반란 사태 이후 푸틴 대통령과 통화하고 일제히 지지를 표명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빈 살만 왕세자도 26일(현지시간) "헌법 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러시아의 조치"에 지지를 표명했다. 그러나 이런 공개 지지 표명에는 사우디와 러시아 간 불협화음이 감춰져 있다.
석유를 수출하는 국가들의 모임인 석유수출국기구(OPEC) 플러스(OPEC+)를 주도하는 사우디와 러시아는 그동안 감산에 협력해왔지만, 최근 들어 사우디가 유가 부양 노력을 이어가는 동안 서방 제재에 쫓긴 러시아가 싸게 원유를 내다 팔면서 양국 사이가 틀어졌다.
미국외교협회(CFR)의 마틴 인디크 석좌연구원은 "이제 아랍 국가들은 훨씬 더 신뢰할 수 없고 잠재적으로 불안정한 러시아에 직면하게 됐다"라고 분석했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동맹국이면서도 러시아와의 불편한 관계를 원치 않아 왔던 나라다. 시리아 내 친이란 세력을 몰아내려면 러시아의 묵인이 중요하기에 우크라이나 지원을 압박하는 미국의 요청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무장 반란 이후 이스라엘 현지 언론에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방문을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러시아처럼 서방 제재를 받으면서 러시아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는 이란 내부에서조차 프리고진의 반란 이후 양국 관계의 재평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실정이다.
아프리카처럼 러시아가 바그너 그룹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해 온 지역에서도 불확실성이 더욱 커졌다.
말리는 친러시아 성향이 뚜렷했던 국가다. 지난 2월에 유엔 회원국들이 특별총회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철군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을 때 반대표를 던진 7개국 중 하나였다.
말리는 프리고진의 반란 이후 별다른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바그너 그룹 용병들이 말리 반정부 무장세력에 맞서 싸워온 만큼 어느 편에 설지 입장을 정하기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맥폴 전 주러시아 미국 대사는 "바그너 그룹은 러시아가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이끈 점이 있다"면서 "바그너 그룹이 없으면 푸틴으로선 영향력 있어 보이는 능력까지 축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양수기자 ys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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