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속으로]① 보물찾기 하자던 남친의 진짜 속내는?...10대 카푸어들이 만든 보험사기극

이학준 기자 2023. 6. 28.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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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졸 후 무직 상태로 외제차 구입
연 10% 캐피탈 대출 금리에 카푸어 전락
유튜브 동영상 보고 보험사기극 꾸며
여성 섭외해 결혼 시킨 후 살해 계획 꾸민 전력도

연일 언론에 등장하는 각종 사건 사고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한 단면을 보여준다. 범죄는 법과 제도의 힘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를 교묘히 포착하고, 파고들어 그곳에 뿌리를 내리기 때문이다. 때로는 우리사회의 일그러진 가치관과 세태가 범죄를 양산하는 토양이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 사고가 우리를 되돌아보는 반면교사(反面敎師)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조선비즈는 과거에 일어났던 주요 사건들을 통해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을 되짚어 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사귄 지 50일 기념으로 선물을 준비했어. 여기 숨겨놨으니까 찾아봐.”

산으로 둘러싸인 논밭 한가운데에 위치해 고즈넉한 느낌을 주는 전라남도 화순의 한 펜션. 새로 사귄 동갑 남자친구의 로맨틱한 서프라이즈 계획을 들은 A(19) 양은 마치 로맨스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한 행복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2021년 10월 초순의 시원한 날씨와 곤충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밤 11시의 고요한 분위기도 두 사람을 축복하는 무대 장치 같았다.

남자친구 유 모(19) 씨가 보여준 휴대전화 지도 애플리케이션(앱)에는 펜션에서 약 1km 떨어진 위치 주소가 떠 있었다.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남자친구의 특별한 이벤트에 감동하며 그곳으로 향해 가던 A 양은 문득 주변에 아무도 없는 시골 밤길을 혼자 걷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공포감에 휩싸였다. 다행히 중간에 펜션 경비원을 만났고 “무서워서 그러는데 저기까지만 같이 가주실 수 있냐”고 부탁했다. 그러나 막상 도착한 장소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의아해하며 경비원에게 다시 돌아가자고 말하려던 찰나, 돌연 품속에서 흉기를 꺼낸 경비원이 A 양 목덜미를 찌르기 시작했다. 무방비 상태였던 A 양은 흉기에 여러 차례 찔렸으나, 칼이 부러지는 바람에 치명상을 피했다. 당황해하는 경비원을 뒤로 한 채 도망치던 A 양은 중간에 붙잡혀 목이 졸렸으나 죽을 힘을 다해 저항해 뿌리치고 다시 펜션을 향해 달렸다. 결국 A양은 시민들에 의해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졌다.

신고받고 출동한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A양을 찌른 경비원 박 모 씨는 차량 트렁크 안에 숨어 있었다. 박씨를 검거한 경찰은 그가 경비원이 아니라 펜션에 있던 A양의 남자친구 유 씨와 고교 동창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공범 임 모 씨의 존재도 드러났다. 임 씨는 범행이 발생한 시각, 화순 시내에서 유 씨인 척 돌아다니며 그의 거짓 알리바이를 만드는 역할을 맡았다. 이 모든 것이 비싼 외제차를 사느라 빚더미에 앉은 10대 카푸어(자동차 때문에 형편이 어려워진 사람)가 유튜브 동영상에서 힌트를 얻어 꾸며낸 보험사기극이었다.

일러스트=정다운

◇ ‘카푸어’로 전락한 10대, 유튜브 동영상 보고 범행 결심

유 씨와 박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각자 꿈에 그리던 외제차를 그야말로 대책없이 ‘덜컥’ 샀다. 안정된 직업도 없고 아직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이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1금융권 은행은 없었다. 결국 캐피탈 업체에서 이자율이 10%가 넘는 대출을 받았다. 외제차를 타고 다니며 남들의 부러운 시선을 즐기는 순간은 뿌듯했지만 곧 대출금과 관리비에 허덕이게 됐다.

머리를 싸매던 유 씨의 눈에 들어온 것은 ‘남편이 졸음운전을 하다 아내만 사망하는 교통사고가 발생해 남편이 거액의 사망보험금을 수령했다’는 내용의 유튜브 동영상이었다. 보험설계사로 일하던 유 씨는 눈이 반짝 뜨였다. 사람을 살해한 뒤 사고사로 위장해 수억원에 달하는 사망보험금을 타내면 카푸어에서 벗어나 ‘영 앤 리치(Young and Rich·어린 나이에 부유한 생활을 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가 될 기회라고 생각한 것이다.

A 양과의 만남은 철저히 계획적이었다. 유 씨와 박 씨는 소셜미디어(SNS)를 돌아다니며 피해자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A 양을 발견하고 메신저로 접근한 뒤 끈질기게 구애했다. 교제 직후 유 씨는 19살에 불과했던 A 양에게 보험 가입을 권유했다. 단순히 실적을 올리기 위한 것이니 보험료는 자신이 내겠다는 부탁이었다. 남자친구의 간곡한 설득에 A양은 사망보험금으로 5억원이 나오는 보험에 가입했다. 보험금 수익자는 법정 상속인이 아닌 유 씨로 지정됐다.

◇ 공범도 죽이려 했던 10대…결혼·이혼까지 불사

놀랍게도 A 양은 첫 번째 타깃이 아니었다. 이들이 피해자를 섭외해 공범과 계획 결혼까지 시키는, 그야말로 한 편의 영화 같은 보험사기극을 꾸며 성공 직전까지 갔었던 사실이 수사를 통해 밝혀졌다. A 양에게 범행을 저지르기 6개월 전인 2021년 4월 유 씨와 박 씨는 지인 B(20) 씨를 보험사기극의 첫 피해자로 설정했다. 두 사람은 술과 여자를 좋아하는 B씨에게 여성 C(19) 씨를 접근시켰다. C 씨에게는 B씨와 교제·혼인한 뒤 살해하는 데 성공하면 사망보험금을 나눠 갖기로 약속했다.

C 씨는 B 씨와 결혼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남편을 보험에 가입시키지는 못했다. 그러자 유 씨는 이번엔 작전을 바꿔 B 씨에게 보험사기를 제안했다. 그는 “보험에 가입한 다음에 등산하다 산에서 굴러라. 그리고 보험금을 받아 나누자”며 “사촌 형이 의사라서 허위 진단서를 발급받을 수 있다. 최대한 안 다치는 쪽으로 할 수 있다”고 속였다. 그 말에 속아 넘어간 B씨는 부인 C씨를 수익자로 하는 보험에 가입했다. 사망보험금은 2억원이었다.

유 씨와 박 씨는 C 씨에게 남편을 밀어 살해한 뒤 실족사로 위장시키자고 했다. 세 사람은 두 차례 야산을 답사하며 CCTV에 포착되지 않도록 동선을 짰고 예행연습까지 했으나 수상함을 눈치챈 B 씨가 잠적해 계획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광주지법 전경./조선DB

하지만 이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두 달 뒤 이번에는 범행 타깃을 공범이었던 C 씨로 바꿨다. C 씨에게는 고교 동창생이자 A 양 살인미수 사건의 공범인 임 씨와 결혼한 뒤 B 씨를 대상으로 한 보험사기와 비슷한 시나리오로 보험금을 갈취하자고 제안했다. C씨는 이 제안도 받아들여 B씨와 이혼한 뒤 임 씨와 다시 결혼했다. 유 씨와 박 씨는 C 씨에게 “임 씨만 보험에 가입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으니 너도 보험에 가입하라”고 제안했고, C 씨는 사망보험금 합계 6억원에 달하는 보험 3개에 가입했다. 유 씨, 박 씨는 임씨와 함께 C씨를 죽여 6억원을 타내려 했으나, C씨가 이 계획을 알게 되면서 다시금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작년 4월 1심 법원은 살인미수, 살인예비 혐의로 유 씨에게 징역 20년을, 박 씨에게는 징역 15년을 각각 선고했다. 임 씨와 C 씨에게는 각각 징역 5년과 징역 1년 6개월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보험금 수령을 위해 혼인신고를 하게 하거나 범행 장소에 여러 차례 방문해 중간 동선을 체크하고, 범행 발각 시를 대비한 거짓 알리바이까지 준비하는 등 매우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범행을 저질렀다”며 “세 차례에 걸쳐 작업 대상을 바꾸면서까지 범행을 완성하고자 하는 확고한 범죄 결의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범행 전후 상황 등을 종합하면 살인 범죄를 다시 범할 위험성이 있다”며 “죄질이 매우 나빠 중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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