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능력보다 충성심? “쇼이구 국방장관의 건재는 러시아의 역설”
경질 예상 깨고 연일 공개 행보
충성심 강한 인물 중용하는 푸틴이 비호
민간군사기업(PMC)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러시아에서 무장 반란을 일으키는 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이 징계를 받기는커녕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등장하는 곳마다 모습을 드러내는 등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결국 푸틴 대통령 치하에선 능력보다 충성심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고스란히 보여준 ‘러시아의 역설’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27일(현지시간) “푸틴 대통령이 프리고진의 분노를 일으킨 러시아 최고 군사 지도자(쇼이구 장관)를 공개 석상에 내세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프리고진이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로의 진격을 멈춘 다음 날인 26일 쇼이구 장관이 군부대를 방문하는 영상이 공개된 데 이어 푸틴 대통령이 주재한 국방안보 기관장 회의에도 참석했다. 당시 쇼이구 장관은 고개를 숙인 채 푸틴 대통령의 발언을 듣는 모습이 포착됐다.
27일엔 푸틴 대통령이 크렘린 광장에서 반란을 진압한 군인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설 내내 자리를 지켰고, 곧바로 러시아를 방문한 쿠바 국방부 장관과 회담을 열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미국이 수십 년간 쿠바에 대한 불법적인 경제 봉쇄를 가하는 상황에서 러시아는 쿠바를 돕고 어깨를 빌려줄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프리고진이 바그너 그룹 대원을 이끌고 본토를 휘젓는 사이 별다른 대응을 취하지 못했던 쇼이구 장관이 자리를 보존한 배경엔 푸틴 대통령의 전략적 판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NYT는 “푸틴 대통령이 안정을 되찾고 통제를 회복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쇼이구 장관을 노출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여기에 쇼이구 장관을 경질할 경우 자칫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줄곧 쇼이구 장관을 비난했던 프리고진에 굴복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도 푸틴 대통령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프리고진은 지난 24일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나도누를 장악한 뒤 쇼이구 장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참모총장의 소환을 요구했었다.
영국 에든버러대에서 러시아는 연구하는 루크 마치도 프랑스24 인터뷰에서 “쇼이구 장관을 제거하면 푸틴 장관이 프리고진의 압력을 받아 움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며 “무언가 푸틴 대통령의 뜻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인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외신들은 푸틴 대통령과 쇼이구 장관의 인연이 깊다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NYT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군 복무 경험이 없는 쇼이구 장관을 2012년 전격적으로 국방장관에 발탁했다.
쇼이구 장관은 1991년 비상사태부 장관을 시작으로 부총리와 모스크바주지사 등을 역임했는데, 푸틴 대통령의 통치 이념을 누구보다 착실히 따랐던 인물로 꼽힌다. 2019년엔 푸틴 대통령의 생일을 맞아 휴가를 함께 보내기도 했다.
NYT는 “푸틴 대통령은 제멋대로 구는 러시아군을 통제하기 위해 쇼이구 장관과 게르시모프 참모총장에게 계속 키를 맡겼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러시아 안보 전문가인 안드레이 솔다토프는 NYT에 “이것이 바로 러시아의 역설”이라며 “정치적으로 군을 대표할 수 있는 매우 약하고 타협적인 사람이 푸틴 대통령에겐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선 시베리아 토착민 투바족 출신인 쇼이구 장관이 태생적으로 권력에 위협이 되지 않고, 푸틴 대통령이 중용할 수 있는 이유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또 쇼이구 장관을 대체할 인물이 마땅치 않다는 ‘대안 부재론’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미 신뢰를 잃은 쇼이구 장관을 재신임한 푸틴 대통령의 선택이 바그너 그룹의 반란으로 흔들린 군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프랑스24는 “푸틴 대통령이 쇼이구 장관을 경질하는 대신 그의 오른팔인 게라시모프 참모총장을 제거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프리고진 반란 후폭풍이 잠잠해지면 쇼이구 장관을 내쫓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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