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리 TV가 착해?…먹방 없이 진심으로 노동하는 ‘일꾼의 탄생’
지난 14일 충남 공주 계룡면 하대 2리 마을. 분명, 서울에서 3시간을 달려 <일꾼의 탄생> 촬영장에 도착한 줄 알았는데, 여긴 지금 어디? 작업복에 안전모까지 착용한 인부 4명이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위해 안전바를 설치하느라 분주한 모습이 영락없는 공사 현장이다. 바닥에 구멍을 뚫고 용접까지 한다. 오전 9시에 시작해 11시까지 영농폐기물 집하장 설치를 끝낸 뒤 맡은 두번째 일감이다. 그런데도 땡볕 아래에서 2시간30분 쉼 없이 일하는 이 성실한 인부들은 누구? 트로트 가수 진성과 박군, 코미디언이자 방송인 손헌수와 미키광수다.
2021년 12월 시작한 <일꾼의 탄생>(KBS1 수 저녁 7시40분)은 전국 방방곡곡 일손이 필요한 마을의 민원을 해결해주는 프로그램이다. 65살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이 50%에 육박하고, 열에 한 집꼴로 75살 이상 홀몸노인이 사는 농산어촌 지역에서 공공서비스 제공은 원활하지 않다. <일꾼의 탄생>은 이런 현실에 뛰어들었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이은미 <한국방송> 피디는 “일손이 부족한 곳에 가서 일도 도와드리고 힘을 드리는 착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금껏 76회 동안 마을 30~40여곳을 찾았다. 충남 보령의 작은 섬 녹도를 시작으로 지난 14일 충남 공주 계룡면(7월26일, 8월2일 방영 예정)까지 도착했다. <체험 삶의 현장>(1993~2012년) 같은 일손 돕는 프로그램은 있었지만 <일꾼의 탄생>은 온갖 ‘일’을 직접 한다. 마늘 수확, 어업 등은 여기에서 ‘일’도 아니다. 지붕을 고치고, 울타리를 짓고, 40년 가까이 된 흙집 바닥을 수리하는 등 대대적인 ‘공사’도 겁내지 않는다. 이날도 이일한(94)씨 집에 방풍막을 설치하고, 배기순(93)씨 집 대문을 수리하는 등 할 일이 10여가지가 됐다. 계룡면 촬영을 담당한 홍성수 피디는 “보통 2~3일 촬영해 여섯 집 정도 찾고 2회 분량으로 내보낸다”고 했다. 진성은 “무명 시절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등 여러가지 일을 해봤던 게 도움이 된다”고 했다.
“연예인이 일을 해봤자”라고? 오산이다. 마을 청년회장이 돕거나 전문가를 부르기도 하지만, 대부분 이들이 직접 한다. 능력 밖의 일은 임시방편으로 처리해놓고 방송과 관계없이 전문가한테 의뢰해 추후 수리를 해주는 식이다. 일이 다 끝나야 ‘밥’을 먹는다. 이날도 오전 일을 다 끝내고서야 오후 1시30분 인근 식당에서 김치말이 국수로 늦은 점심을 했다. 그리고 곧바로 오후 작업에 들어갔다. 미키광수는 “밥보다 일이 먼저더라. 촬영이 정해진 시간이 없더라. 끝까지 일한다”고 했다. 손헌수는 “일하는 걸 좋아한다”며 웃었지만 다크서클이 늘어졌다. 그는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어르신들한테 도움이 되는 것이 좋다.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하체 근육도 단련하고 있다”고 했다. 초대손님으로 나왔다가 일을 너무 잘해 75회부터 고정 출연 중인 박군은 “섭외된 뒤 지난 3월 미니 굴삭기 자격증을 땄다”고 했다.
뭘 이렇게까지 ‘진심’인가. 방송에는 현장에서 고생하는 모습이 다 담기지 않는다. 땀 흘리는 모습을 강조해서 보여주지 않아 민원을 쉽게 뚝딱 처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교양프로그램이어서 출연료도 적다. 그러나 ‘일꾼’들의 ‘등장’은 일상의 불편함을 해결해주는 것을 넘어 농어촌에 시끌벅적한 하루를 선물해주는 의미도 크다. 이희권(61) 이장은 “마을은 며칠 전부터 잔치 분위기였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추억을 선물해줬다”고 했다. 이들을 보려고 인근 마을에서도 찾아왔고, 한 주민은 진성이 일하는 모습을 휴대폰에 담기도 했다. 김명월(66) 부녀회장은 진성이 용접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진심으로 못 하는 게 없네, 용접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고, 말도 잘하고”라며 감탄했다. “이들이 온다고 해서 닭이라도 삶을까 했는데 저 사람(피디)이 절대 그러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어휴 밥도 못 먹고 일을 하네. 어쩌나.”
진성은 “농어촌에서 70~80년 살아온 어르신들의 깊은 인생길을 시청자들한테 보여줄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시청자들한테는 살아 있는 ‘인생 극장’이 따로 없다. 민원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여러 이웃의 사연은 우리를 웃고 울린다. 앞선 방송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움직임이 불편해 집밖에 잘 나오지 않았던 어머니는 이들이 만든 차양과 벤치를 보며 바깥바람을 맞을 수 있다며 감격해했다. 다른 회차에서는 세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진성·손헌수·미키광수를 보면서 “아들들이 살아온 것 같다”며 기뻐했다. 이날 촬영 현장에서도 허리가 굽은 이선자(84)씨가 거동이 불편한 남편을 보살피는 사연을 듣고 박군의 눈이 그렁그렁해졌다. 이선자씨는 ‘일꾼’들이 안전바를 만드는 동안 “젊은 사람들이 땡볕에서 지치고 고생한다”며 미안해했다.
<일꾼의 탄생>은 2021년 추석 특집으로 방송됐다가 반응이 좋아 정규 편성됐다. 시청률이 7%(닐슨코리아)에 육박한 적도 있지만 최근에는 3~5%대를 오간다. 자극적인 장면도 없고 일만 하는 뻔한 프로그램이지만, 진정성이 주는 감동이 커서 오랫동안 지속되기를 바라는 이들이 많다. 아이돌그룹 샤이니 멤버 온유부터 가수이자 방송인 황보 등 여러 연예인들이 ‘일일 일꾼’으로 나섰다. 초대 손님으로 자주 나오던 트로트 가수 김용임은 46회(지난해 11월16일 방송)부터는 고정으로 합류해 몸을 아끼지 않는다. 시청자들은 “올바른 장비 사용법”을 알려주고 “일꾼은 밥심인데, 새참도 많이 주라”는 평도 남긴다. “케이비에스가 공영방송사로서 이런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기를 바란다”는 요구도 적지 않다.
진성은 과거 암 투병 등으로 몸 상태도 좋지 않지만 “어르신들이 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같이 행복해져서” 추석 특집부터 지금껏 출연했다. 손바닥 수술을 하고도 쉬지 않았던 그가 최근 1년6개월 만에 ‘고정’을 내려놨다. 진성은 “한번 촬영하고 나면 이삼일은 몸이 아팠지만 견뎠는데, 이제는 한계에 온 것 같다. 70살 넘어서도 노래를 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며 아쉬워했다. 진성이 떠난 <일꾼의 탄생>은 현재 손헌수와 미키광수 그리고 김용임과 박군이 이끌고 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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