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반도체공장 '복붙' 시도…韓이 美中기술전쟁 핵심 전장"-FT
삼성반도체 기술을 유출한 혐의로 검찰이 기소한 전직 삼성전자 임원 사건에 대해 외신이 조명하며, 최근 몇 년간 이어진 미국과 중국 간 기술 분쟁의 '핵심 전쟁터'가 한국이라고 분석했다.
2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에 비밀을 공유하다 기소된 한국의 칩 마스터'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번 사건은 지정학적 라이벌 사이에서 국가가 어떻게 분열됐는지 잘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FT는 기소된 최 모 씨의 이력을 따라가면서 한국 대기업에서의 경험을 발판으로 중국으로 넘어가 다시금 반도체 산업 부흥의 주역이 되려던 그의 '야망'이 미국 정부의 수출 통제정책의 여파로 좌절됐고, 중국 투자자들로부터 내쫓기는 신세가 됐다고 평가했다. 매체는 그가 2006년까지만 해도 '반도체 수율의 달인'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업계 최고 기술자로 각광받았던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최 씨는 삼성전자에서 20여년 일하다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로 옮겨 부사장으로 2010년 퇴사했다.
한동안 대만과 싱가포르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던 그는 2015년 싱가포르에 '진 반도체'를 설립했다. 2018년부터는 삼성과 SK하이닉스 출신 한국 엔지니어 200여명을 스카우트했다. 검찰에 따르면 그는 중국 시안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려 했다. 앞서 지난 12일 수원지검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수사부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설계 자료를 중국으로 빼돌려 부정하게 사용한 혐의로 최 씨를 구속기소하고 공범 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에 대해 FT는 "최 씨 일당이 (삼성전자) 화성 공장의 기본 엔지니어링 데이터와 시안 1공장의 설계도 및 청사진을 훔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공장을 복제하려 했다는 게 검찰 시각이다.
최 씨 측은 "직원들이 각자 자기 경험과 노하우를 사용한 것"이라며 "수백명의 칩 전문가들이 노하우를 모으면 청사진을 훔치지 않아도 공장 짓는 게 어렵지 않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 측은 "반도체 칩 공장을 건설하려면 엄청난 양의 정확한 데이터가 필요하다. 필요한 모든 세부 정보를 암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특히 최 씨는 애플의 핵심 부품제조업체인 '폭스콘'으로부터 62억달러 (8조원) 투자를 유치해 공장을 세우는 일명 '프로젝트 F'를 추진하고 있었는데 미·중 갈등이 격화하면서 물거품이 됐다. 폭스콘은 2019년 투자계획을 철회했고 시안 공장 설립은 이뤄지지 못했다. 미·중 기술 갈등이 수면위로 올라오면서 애플이 중국에서 조달하는 부품을 늘리지 않으려 하는 움직임에 발맞춰 폭스콘도 중국 투자를 취소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 씨가 최근까지 벌이던 중국 내 두 번째 사업 '청두 프로젝트'도 결과적으로 미·중 반도체 갈등의 유탄을 맞았다. 최 씨는 2020년 광저우 지방정부 및 청두시와 합작투자 회사 CHJS를 설립해 공장을 세울 준비를 했다. 중국 지방정부 등으로부터 투자금도 4560억원가량 유치했다. 하지만 공장을 채울 제조 장비를 구하지 못했다. 미국에서 수입해와야 하는데 미국 정부 제재로 차질을 빚게 됐다. CHJS는 검찰 기소엔 빠져있지만 그의 사업이 재차 실패한 건 미·중 기술 분쟁의 여파라는 분석이다.
FT는 "미국 정부와 의회가 칩 관련 전문 기술이 중국으로 흘러들어가지 않도록 행동하면서, 중국 정부는 한국을 통해 기술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공격적으로 펼쳤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미·중 기술 전쟁의 핵심 전장이 한국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미·중 간 '기술 전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올해 초 미 정부는 "국가의 적들이 중요한 기술 자산을 갖거나 사용하지 못하도록 '파괴적 기술 타격 부대'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첨단 기술을 안보로 접근한다는 취지다. 중국 정부도 자국 내 외국기업들 단속에 나섰다. 7월부터는 '방첩법'을 시행해 기술 단속에 나선다.
미국 전략정보회사 스트라이더의 그레그 레비스키는 FT에 "중국 정부는 최근 10년간 국가가 지원하는 산업의 스파이활동을 적극적으로 확대해왔다"며 "최 씨의 사례를 보면 중국은 단순히 사람이나 기술을 노리는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플레이'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서울대 산업스파이 문제 전문 연구원인 벤 포니는 "진짜 문제는 최 씨가 아니라, 그가 '합법적'으로 스카우트해 고용한 수백명의 한국인 엔지니어들이다"며 "한국의 엔지니어들이 중국으로 가는 게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시각이 있지만, 이는 합법적인 경력 이동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엔지니어들이 단순히 중국을 돕기 위해 가는 게 아니다.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 직장을 잃으면 생계를 위해 직업 제안에 응하게 되는 것"이라는 일각의 의견도 전했다. 다만 한국 정부는 재발 방지를 위해 주요 엔지니어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있으며 새로운 조사 기관을 설립하고, 산업스파이 처벌을 강화하도록 제도 보완에 나섰다고 덧붙였다.
김하늬 기자 hone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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