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한국도 첫발 뗀 '천연수소' 탐사...땅속 무한에너지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2023. 6. 2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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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안탈리아주의 키메라산 불구멍. 땅속에서 스며나오는 가스의 10%가 수소다. 위키미디어코먼스

‘우리나라도 시작하는군.’

지난주 TV에서 반가운 뉴스를 접했다. 한국석유공사가 본격적으로 천연수소 탐사에 들어간다는 내용이다. 천연수소(또는 자연수소)는 땅 밑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수소로 천연가스의 하나다. 다만 천연가스가 메탄이나 에탄 같은 탄화수소를 뜻하므로 여기에 포함하지 않고 따로 이름을 붙였다. 메탄과 수소는 땅 밑에 분포하는 장소나 생성 메커니즘도 달라 이런 구분이 더욱 적절해 보인다.

사실 얼마 전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심층기사를 읽지 않았다면 TV에 잠깐 나온 뉴스를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무려 7쪽에 이르는 기사는 ‘사기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약간 들 정도로 기이한 내용이다. 쉽게 말해 천연수소 개발이 최상의 시나리오대로 진행되면 인류가 쓰는 에너지를 공급하고도 남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과학적 근거도 꽤 제시하고 있어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비웃고 넘어갈 수도 없었다. 아무튼 좀 헷갈렸는데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탐사에 들어간다니 적어도 사기는 아닌 것 같다.

지난 1987년 서아프리카 말리의 우물 시추공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나고 25년이 지난 2012년 수소가 나온다는 게 확인된 뒤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갔고 2018년 그 결과를 담은 논문이 발표됐다. 상공에서 원형으로 보이는 지역에 반경에 따라 시추공을 뚫어 발생한 수소 농도를 측정한 그래프다. 수소에너지국제저널 제공

● 우물 파다가 우연히 발견

이야기는 36년 전인 1987년 서아프리카 말리 보우라케보우고우 마을에서 시작한다. 당시 가뭄으로 물이 마르자 우물을 만들려고 시추공 전문가를 불러 108m까지 땅을 팠지만 지하수를 찾는 데 실패했다.

그런데 구멍에서 바람이 나왔고 담배를 피우던 한 인부가 얼굴을 들이민 순간 폭발이 일어나 큰 화상을 입었다. 구멍 입구에서 붙은 불은 꺼지지 않았는데 불꽃은 반투명했고 연기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인부들은 수주 만에 간신히 불을 끄고 구멍을 막아버렸다

20년이 지난 2007년 말리의 부유한 사업가로 석유회사 페트로마의 회장인 알리오우 디알로는 이 얘기를 듣고 뭔가 있다고 생각해 이 일대 부지를 사들였다. 2012년 디알로는 캐나다의 석유 컨설팅 회사인 채프먼페트롤리움에 조사를 의뢰해 25년간 봉인된 구멍을 다시 열었다. 분석 결과 구멍에서 나오는 기체의 98%가 수소(이하 수소분자(H2)를 뜻한다)였다.

깜짝 놀란 디알로는 상용화 가능성을 보려고 300kW급 소형 화력발전소를 만들었고 주민들은 처음으로 수소를 태워 나온 전기의 혜택을 봤다. 수소에 꽂힌 디알로는 회사 이름까지 하이드로마(Hydroma)로 바꿨다. 코로나19와 쿠데타 발생 등 말리의 상황이 불안정해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이 일대에 뚫은 여러 시추공에서 수소가 확인돼 지금 본격적인 개발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땅 밑에 수소가 있다는 건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지금까지 석유회사들이 뚫은 시추공만 수백만 개에 이르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의 관심은 석유와 메탄 같은 탄화수소였기 때문에 수소는 분석조차 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설사 수소를 검출하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뿐 주목하지 않았다.

지구는 수소 공장일까. 천연수소는 기반암(basement rocks)의 방사성원소에서 나오는 방사선 에너지가 물분자를 쪼개 만들어지거나(1) 철이 풍부한 맨틀 암석이 고온고압에서 물분자를 만나 산화될 때 부산물로 만들어진다(2). 한편 지구 중심이나 맨틀에 존재하는 수소가 단층(fault) 사이로 새어 나올 수도 있다(3). 천연수소는 지표로 새어 나오거나 불투과성 암석층(salt layer)에 막혀 아래 공간에 저장된다. 사이언스 제공

그런데 말리의 천연수소 발견 소식이 알려지면서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고 이 현상을 알린 과거 보고서나 논문들이 재조명됐다. 예를 들어 주기율표의 아버지인 드미트리 멘델레예프는 1888년 우크라이나의 한 석탄 광산에서 수소가 새어 나온다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 뒤에도 구소련에서는 수소 발생에 대해 종종 보고하곤 했다.

한편 1970년대 심해 중앙해령(해저 산맥)의 열수분출구에서 나오는 수소를 보고한 논문이 나왔고 1980년대 미국 캔사스주의 시추공에서 검출한 수소에 대해 보고한 논문도 있다. 후속 논문에서는 천연수소의 발생 메커니즘을 제안했다. 천연수소에 대해 산업계는 무관심했지만 학계는 비록 소수이지만 오래전부터 흥미를 갖고 있었다는 말이다.

● 땅 밑에서 나오는 재생에너지?

석유와 천연가스는 화석연료, 과거 살았던 동식물의 사체가 변해서 만들어졌다. 따라서 매장량이 정해져 있고(물론 탐사로 새로 발견되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고갈될 자원이다. 반면 천연수소는 화석연료가 아니라 지질 활동에서 만들어진다.

지난해 10월 미국 지질조사국에서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천연수소의 추정 매장량은 수조 톤으로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쓸 양이다. 참고로 수소의 주된 용도인 암모니아 비료를 만드는 데 매년 9000만톤이 쓰인다. 게다가 천연수소는 계속 만들어지기 때문에 이 정도 사용량으로는 고갈될 염려도 없는 재생에너지라는 것이다.

사문석화로 수소가 만들어지는 반응의 한 예로 철감람석(fayalite)이 고온고압에서 물과 만나면 석영(quartz)과 자철석(magnetite)으로 바뀌며 수소가 나온다. PNAS 제공

연구에 따르면 천연수소의 80%는 사문석화(serpentinization)라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지각 밑 맨틀의 철이 풍부한 감람석이 고온 고압의 조건에서 물을 만나면 산화반응이 일어나 사문석으로 바뀌면서 부산물로 수소가 나온다는 것이다. 실제 실험실에서 300℃와 300기압 조건 아래서 이 과정을 재현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수소는 작고 가벼워 암석의 틈을 통해 올라가다가 투과성이 낮은 염(salt) 형태의 암석층 아래 붙잡혀 고인다. 1987년 말리에서 우물을 파다 우연히 이런 암석을 뚫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지각에 포함된 방사성 동위원소도 수소를 만들 수 있다. 고에너지 방사선이 바위틈으로 침투한 물분자를 쪼개 수소를 만드는 반응을 통해서다. 흥미롭게도 과거 몇몇 원자력발전소가 사용한 방사성 원료와 폐기물에서 나오는 방사선으로 수소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검토했지만 사업성이 없어 포기했다고 한다. 

끝으로 지구 중심(외핵)이나 맨틀에 포함된 수소가 지각변동으로 위로 이동해 단층 같은 지각의 경계면에서 새어 나올 수 있다. 다만 실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 중이다. 아무튼 미생물이 지구의 주된 수소 발생원인 줄 알고 있었던 나로서는 다들 놀라운 사실이다. 

2019년 미국의 스타트업 네추럴하이드로전에너지는 네브라스카의 옥수수밭과 콩밭 사이에 미국 최초로 천연수소 탐사 시추공을 뚫었다. Viacheslav zgonnik 제공

현재 말리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천연수소를 찾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호주와 미국 프랑스와 스페인 접경지대 브라질 등 여러 나라에서 이미 시추공을 많이 뚫었고 수소의 존재를 확인해 상업성 검토에 들어갔다고 한다. 

수소를 얻는 과정으로 색을 부여하는 관습에 따라 천연수소는 화이트수소 또는 골드수소로 불린다. 석유를 검은 황금이라고 부른 걸 떠올리면 골드수소가 더 어울릴 것 같다.
 

● 블루 그린보다 청정인 골드

탄소중립을 실현하려면 수소경제로 전환해야 한다지만 이는 수소가 청정 연료라는 전제가 충족됐을 때 얘기다. 현재 생산되는 수소의 90% 이상은 많은 에너지를 들여(따라서 이산화탄소도 많이 나온다) 메탄에서 만들고 부산물로 이산화탄소가 또 나오는 그레이수소다. 이 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합치면 연간 9억 톤으로 항공 운항에서 나오는 양과 맞먹는다. 

따라서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로 물을 전기분해해 만드는 그린수소가 주목받지만 여러 조건이 충족돼야 해 쉽지 않다. 재생에너지 효율이 낮은 우리나라는 중동에 그린수소 설비를 짓는 쪽으로 집중하고 있다. 대신 우리나라에서는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포집 저장하는 블루수소가 현실적인 대안으로 충남 보령에 2026년 세계 최대 규모의 설비를 완공할 예정이다.

한국석유공사는 지금까지 탐사를 통해 국내 다섯 곳에서 의미 있는 수준의 수소 발생을 확인했다고 한다. 모쪼록 이어지는 연구와 개발이 성공해 골드수소가 블루수소에 더해 우리나라가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데 기여하기를 바란다.

SK E&S는 충남 보령에 세계 최대인 연산 25만톤 규모인 블루수소 생산기지를 2026년 완공할 계획이다. 그린수소 생산이 여의치 않은 우리나라에서 천연(골드)수소가 나온다면 블루수소와 함께 탄소중립을 이루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SK E&S 제공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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