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없다면 어떻게 의사가 존재할 수 있겠는가

이균성 논설위원 2023. 6. 28.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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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성의 溫技] 의대 정원 논란에 부쳐

(지디넷코리아=이균성 논설위원)보건복지부가 의대 정원 확대 논의에 의료 수요자와 전문가를 참여시키기로 한 것은 올바른 판단이다. 그동안 이 문제를 주로 의사단체와 논의해왔으나 의료 수요자와 전문가도 참여하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중심으로 논의하겠다는 것이다. 조규홍 장관은 최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공급자인 의료계의 의견을 들었으니 다른 의견도 폭넓게 수렴하겠다”는 취지로 이런 계획을 밝혔다.

보정심은 보건의료정책 최고 심의기구다. 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노동자·소비자·환자단체 등이 추천하는 수요자 대표와 의료단체가 추천하는 공급자 대표를 동수로 하되, 중립적 보건의료 전문가와 정부 위원을 합쳐 총 25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정부는 의료현안협의체와 보정심 논의를 함께 진행할 계획이다. 의료현안협의체는 지난 2020년 9월4일 맺은 ‘의정합의’에 따라 올 1월에 구성됐다.

대한의사협회는 즉각 반발했다. “9·4 의정합의와 그동안의 의료현안협의체 논의 과정을 한순간에 수포로 만들어버린 보건복지부에 깊은 유감과 분노를 표한다.”는 성명서를 내놓았다. 성명서는 “의료계와 정부의 신뢰관계가 무참히 짓밟혔다”며 “향후 진행되고 이뤄질 정부와의 각종 분야 모든 논의를 즉각 중단할 것을 신중하게 검토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의대 정원 확대 논의가 순조롭잖을 듯하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인구 변화와 질병의 변화에 따라 의료의 공급과 수요를 예측하고 이에 맞춰 의대 정원을 조절하는 것은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아무리 과학적이라 하더라도 예측은 예측일 뿐이고 결과는 시간이 지나봐야 아는 일이 많다. 이 문제 또한 그럴 수 있다. 다만 현재는 물론이고 앞으로도 상당기간 의사가 부족하다는 데는 의사들도 동의한 것일까. 이 문제로 의료현안협의체에 참여했으니 해본 말이다.

의사가 부족하다는 사실은 코로나19 국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특히 필수의료 분야는 의료공백이란 말이 나돌 정도였다. 의사가 부족해진 것은 의약분업 논란 이후 2006년부터 18년간 의대 정원을 동결키로 한 영향이 컸을 수 있다. 이 조치는 과학적이고 건강한 보건의료정책에 따른 결과라기보다 의(醫)와 약(藥)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의(醫)를 설득하기 위해 내놓은 일종의 떡이라고 봐야한다.

정치적 합의가 오래전부터 한계상황에 부닥친 셈이고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이 퍼지면 의료대란이 재발하는 것이다. 지난 27일 열린 ‘의사인력 수급 추계 전문가 포럼’에서 권정현 한국개발연구원(KDI) 박사는 '인구구조변화 대응을 위한 의사인력 전망'을 통해 2050년에 의사 수가 2만2천 명 부족할 것으로 예상하고 이에 대비하기 위해 2030년까지 의과대학 정원을 5%씩 증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대한의사협회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원장은 인구 감소 추이 등을 고려할 때 의사가 부족하지 않고 의사가 늘면 건강보험 진료비 증가 등의 문제가 나타나기 때문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특히 한국·일본의 고령화 비율에 따른 의사 수 비교를 통해 노인비율 20%인 시점(일본 2006년, 한국 2025년)에 인구 1천 명 당 의사 수는 일본이 2.08명이고 우리는 2.90명으로 예측했다.

보통사람이 두 예측 가운데 무엇이 더 과학적인 것이지를 알 길은 없다. 보통사람 뿐만 아니라 전문가들도 그 과학을 얼마나 신뢰할 지도 의문이다. 분명한 것은 통계와 예측은 입장에 따라 얼마든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대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과학적 방법론에 근거해야 하기는 하지만 결국 정치적 합의도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이것이야말로 의사협회가 인정해야 하는 단 하나의 사실이다.

합리적인 의사 숫자에 대한 과학적 통계와 예측은 신뢰할 수 없지만 ‘환자가 없다면 어떠한 진료 행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과 ‘의사는 진료 전문가이지 정책의 전문가는 아니다’ 점은 누구든 인정해야만 하는 사실이 아니겠는가. 의협의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닐 수 있지만 그것만이 정답이라는 증거 또한 찾을 길은 없다. 의협은 주장은 할 수 있으되 그렇다고 정책에서 타자를 배제까지 할 순 없다.

주장이 옳고 선하다면 두려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같이 테이블에 앉아 의료 수요자를 설득할 수 없는 주장이라면 그 주장에 누가 동의하겠나. 의대 정원 확대 논의에서 의사들의 주장을 더 많이 반영하기 위해서라도 의협은 보정심 논의에 더 성실하게 응하는 게 순리다. 그곳을 뛰쳐나가 자기 목소리만 키운다고 다 지킬 수 있는 건 아니다. 상식 있는 사람이라면 누가 복지부 판단을 욕하겠는가.

이균성 논설위원(sereno@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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