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다 주먹’ 범죄도시, 그러나 이곳엔 마동석이 없다 [이형석의 불편한 편집숍]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는 마동석의 주먹에 모든 것을 걸고 ‘범죄를 저지르는 자’와 ‘범죄를 막으려는 자’의 폭력을 이분법적으로 양식화하며 ‘응징의 서사’를 밀어붙인다.
그러나 마동석의 주먹이 ‘찢어버린’ 스크린을 뚫고 나와 현실세계를 마주하면 허탈하다. 이곳엔 마석도가 없다. 그리고 마석도가 있어서도 안 될 일이다.
‘고담시티’에 배트맨이 있다면, ‘범죄도시’에는 마석도가 있다. 부패한 정치인과 악덕기업, 범죄세력과 결탁한 경찰이 지배하는 곳이 ‘고담시티’라면 ‘범죄도시’는 중국에서 건너온 조선족 출신의 폭력조직과 베트남에서 잠입한 흉악범죄자들, 일본의 야쿠자와 손잡은 마약밀매업자들이 판치는 곳이다. ‘범죄도시’에서 범죄와 범죄자의 알리바이는 중국, 베트남, 일본, 즉 우리 사회의 바깥에 있다.
배우 마동석이 연기하는 마석도에겐 배트맨 같은 망토나 가면, 표창, 배트카 같은 ‘소품’은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맨주먹 하나면 충분하다. 동네 헬스장에서 한 번쯤 마주쳤을 법한 몸 좋은 아저씨, 험상궂은 얼굴과 퉁명스러운 말투 속에 착하고 수줍은 속내를 감췄을 것 같은 왠지 모를 친근함. 한국 영화관객들은 마석도에 열광했다. 모두 3편이 개봉된 ‘범죄도시’는 ‘삼천만 영화’ 등극을 앞두며 한국 영화사상 가장 성공한 시리즈가 돼가고 있다. 2017년 개봉한 제1편이 688만명, 2022년 선보인 제2편이 1269만명, 지난 5월 23일 극장에 걸린 제3편이 27일까지 979만명을 동원했다. 편당 평균 관객 수가 1000만명에 육박한다.
누구든 한 방에 나가떨어지는 괴력의 펀치를 소유한 마석도는 ‘한국형 슈퍼히어로’라 할 만하다. ‘범죄도시’는 ‘정의롭고 강력한 형사’와 ‘절대악의 범죄자’라는 단순 명쾌한 이분법의 스토리에 마동석을 한국형 액션히어로로 세워놓으며 국내 관객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다.
특히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정유정 사건,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상대로 무차별 폭행을 휘두른 부산 ‘돌려차기남’ 사건 등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현실에서의 끔찍한 범죄와 겹치며 영화는 판타지로나마 한국 관객에 ‘통쾌한 응징’을 선사한다.
하지만 후련함 뒤에 개운치 않은 불편함이 뒤따른다. 마석도가 카메라를 가려놓고 용의자를 심문하며 저지르는 폭력, 범죄자의 가랑이 사이 급소를 움켜쥐며 희롱하고 겁주는 장면, 영장 없이 수색하고 용의자를 가둬놓는 대목.... 어떤 관객에겐 자꾸 눈에 밟힐 신(scene)들이다.
영화는 유혈이 낭자한 화면과 칼로 몸을 썰고 베는 소리와 함께 범죄자의 잔인한 폭력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며, 극 중 빌런(악한)을 절대악의 화신으로 만든다. 반면 주인공인 마석도는 동료와 시민을 위해 온몸을 바치는 정의감과 희생정신, 범죄자들의 총칼에 대항해 맨주먹 한 방으로 상대를 고꾸라뜨리는 힘이 강조된다.
‘범죄도시’에선 사운드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마석도의 주먹질엔 통쾌한 타격음이 동반되며, 장첸(윤계상 분)-강해상(손석구)-주성철(이준혁)·리키(아오키 무네타카)로 이어지는 빌런의 액션신엔 신경을 거스르는 끔찍한 마찰음이 결합된다. 마치 칼과 도끼로 살을 도려내고 힘줄을 끊고 뼈를 짓이기는 듯한 과장된 효과음이 빌런을 한층 흉악무도하게 느껴지게 한다.
‘범죄도시’ 1~3편은 흉악범죄에 대한 공포심과 응징의 욕망을 자극하며 한국 관객을 열광시켰다. 굳이 비교하자면 ‘고담시티’의 범죄는 도시 내부에서 잉태되고 자라났지만 ‘범죄도시’의 그것은 이방인들이 저지르거나 외부로부터 ‘이식’된 것으로 보여진다. 바깥으로부터 온 끔찍한 범죄와 흉악한 범죄자를 시민의 강력한 수호자이자 공권력의 순수한 집행자인 형사가 처단하고 응징한다. 물론 ‘범죄도시’는 대중오락영화지만 매우 단순하고 이분법적인 구도의 스토리를 통해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부조리와 병폐, 과잉되고 왜곡된 공권력 집행에 자칫 정서적 윤리적 면죄부를 줄 수 있다.
▶‘범죄도시’의 10가지 공식=‘범죄도시’는 이제까지의 3편을 통해 몇 가지 자체 공식과 이 시리즈만의 ‘시그니처(서명)’를 만들어냈다. 익숙하지만 살짝 변주되는 극적인 계기나 배경, 장면들을 통해 ‘범죄도시’는 식상하지 않게, 관객이 으레 가질 법한 기대를 충족시킨다. 그러나 살짝 바뀌면서 거듭되는 공식은 이 시리즈가 갖는 스토리의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범죄도시’ 1~3편에 공통되는 ‘공식’을 10가지로 추려봤다.
①마석도는 뒤통수로 등장해 ‘술방’으로 퇴장한다. 영화 초반 길거리에서 싸움이 일어나면 마침 이곳에 있던 마석도가 등장해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간단히 해결한 뒤 가던 길을 다시 간다. 마지막은 항상 사건을 다 해결한 마석도가 동료 형사들과 술자리를 갖는 것으로 끝난다. 뒷모습으로 등장하는 마석도는 사건이 벌어지면 언제 어디서나 나타날 것 같다는 느낌을 주며 그의 영웅적 풍모를 강화한다. 마지막 신은 이 시리즈가 계속되는 한 늘 ‘해피엔딩’이 될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②마석도는 끝까지 맨주먹으로 싸운다. 마석도는 오로지 주먹뿐, 총이나 칼을 쓰는 법이 없다. ‘민중의 펀치’라고 할 만하다. 형사 마석도가 외모와 달리 ‘순수한’ 공권력의 집행자라는 점을 강조한다. 주먹으로 안 되면 총이나 칼을 꺼내는 범죄자들의 ‘비열함’과 대비돼 마석도의 힘은 정정당당함을 보여준다.
③마석도는 영장 없이 수사한다. 수색영장 없이 수색하고 체포영장 없이 용의자를 구금한다. 2편에선 주베트남 한국영사가 베트남에서 영장 없이 수사하면 불법이라고 거듭 어르고 달래지만 마석도는 “이 나라 법이 우리나라 사람들 못 지켜주면 우리라도 좀 지켜야 되는 거 아닌가”라는 한 마디로 거부한다.
④카메라가 없는 곳에 ‘진실’이 있다. 마석도의 ‘진실의 방’은 카메라가 없는 용의자 심문실을 가리킨다. 그는 ‘용의자는 맞아야 자백한다’고 철저히 믿는 듯 보인다. 그는 범죄자들에겐 심문을 위해 거침없이 폭력을 행사한다.
⑤마석도는 때리고, 빌런(악한)은 찌른다. 그래서 격투신은 효과음상으로는 ‘타격음’과 ‘마찰음’의 대결이기도 하다. 마석도가 휘두르는 주먹의 바람소리와 이어지는 타격음은 통쾌하지만 힘줄이 끊어지고 살이 썰리는 듯한 칼과 몸의 ‘마찰음’은 기분 나쁘다.
⑥빌런의 폭력에는 피가 흘러넘친다. 마석도가 주먹을 휘두른 자리에는 피가 남지 않지만 범죄자들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유혈이 낭자하다.
⑦빌런의 알리바이엔 늘 외국(의 깡패)이 있다. 1편의 빌런인 장첸은 하얼빈에서 이주해온 조선족 출신의 폭력조직 두목이다. 2편에서 강해상은 베트남에서 납치 살인을 벌이다 한국으로 넘어온 중범죄자 출신이다. 3편에서 주성철은 일본 야쿠자와 결탁한 경찰이고, 리키는 일본 조직이 파견한 자객이다.
⑧여성 빌런도, 여성 경찰도 안 나온다. ‘범죄도시’에서 여성 캐릭터는 거의 역할이 없다. 빌런이라고 할 만한 인물에도, 범죄자를 잡는 경찰에도 여성은 찾아볼 수가 없다. 기껏해야 2편에서 피해자 가족으로 등장해 강해상을 꾀는 역할을 맡는 김인숙(박지영)이나 3편에서 중국 마약밀매업자인 진 회장(심영은) 정도가 중요 인물로 꼽힌다. ‘범죄도시’에서 여성 은 대개 술자리나 유흥업소에서 등장한다. 클럽 손님이거나 접대부로 말이다.
⑨마석도의 상사들은 “경찰은 실적으로 말한다”고 하지만 마석도는 출세나 승진엔 관심이 없거나 적어도 그렇게 보인다. 사건은 마석도 홀로 거의 다 해결하지만 공은 늘 상사에게 돌아간다.
⑩빌런에겐 동정의 여지가 없다. ‘범죄도시’는 영화 초반부터 최종 악한의 잔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폭력행위를 길고 자세하며 충격적으로 보여준다. 처음부터 관객의 동정 여지를 봉쇄하는 것이다.
▶이곳엔 마동석이 없다...응징의 판타지가 대체한 공권력의 윤리=‘범죄도시’는 특정 인물을 절대악의 화신으로 ‘악마화’하고, 범죄자와 응징자(형사)의 액션을 서로 다른 스타일로 보여주며 폭력을 ‘양식화’한다. 그것의 결과와 효과는 마동석이 재현하는 ‘공권력의 집행’으로서, 모든 행위를 경찰력의 행사로서 정당화하는 것이다. 불법 수사와 과잉 폭력의 가능성까지 말이다.
누군가에게 잔혹한 폭력 장면을 보여준다고 하자. 그 사람은 즉각적으로 폭력을 행사한 사람에게 무한한 공포감과 적대감, 응징의 욕구를 갖게 될 것이다. ‘범죄도시’는 이를 뛰어나게 이용한다. ‘범죄도시’의 초반은 빌런의 잔혹성을 최고 수위까지 끌어올려 관객에게 인지시키는 데에 집중한다. 윤계상이 등장할 때도, 손석구가 처음 나올 때도, 이준혁이 카메라 앞에 들어설 때도 가능한 한 리얼한 칼질과 도끼질, 최대한의 효과음, 더 많은 피가 필요했다. 이들은 첫 등장부터 이미 ‘악마’로서 동정의 여지가 없는 인물로 각인된다.
‘범죄도시’에서 범죄자와 형사들이 각각 보여주는 액션스타일도 선악의 이분법을 확실히 한다. 마석도는 무조건 맨손을 쓰고, 형사들은 많은 장면에서 경찰봉을 들고 뛰어간다. 칼과 총으로 무장한 범죄자들 앞에서 말이다. 경찰봉은 장난감 같고 형사들이 순진해보일 정도다. 공권력의 집행자인 형사들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설정이다. 반면 총과 칼을 포함한 범죄자들의 살인도구는 끔찍하고 섬뜩하다. 범죄자들이 자신들이 죽인 시신을 처리하는 장면, 즉 비닐을 씌우거나 절단해 나눠 담는 등의 대목을 필요 이상으로 자주, 자세히 묘사하는 것도 ‘범죄도시’의 특징 중 하나다. 이 영화는 ‘범죄를 저지르는 폭력’과 ‘범죄를 막는 폭력’을 서로 다르게 묘사한다. 전자는 잔혹하고, 후자는 낭만적이다. 마석도의 주먹은 무한히 강력하고 한없이 순수하다.
절대악인 빌런과 순수한 형사들, 무장한 범죄집단과 사실상 무장해제한 공권력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는 마석도가 이미 여러 대사로 강조했듯 “(진짜) 나쁜 놈만 잡을 수 있다면 (조금) 나쁜 짓은 용서받을 수 있다” “시민 보호라는 최종 목적만 이룰 수 있다면 사소한 불법은 저질러도 된다”는 논리를 합리화할 수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용의자에게 폭력을 쓰고 불법 수색·구금을 하는 마석도처럼 말이다.
현실로 돌아오면 공권력, 특히 경찰과 검찰 권력은 엄격한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지만 그 구성과 집행이 어느 한 시대 정치적이지 않은 때가 없었다. 적어도 검경의 공권력 행사 결과는 커다란 정치적 파장을 낳기 마련이었다. 공권력 행사의 ‘적법성’ 기준에는 사소하거나 무시해도 되는 것이 없는 이유다. 공권력의 행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적법해야 한다. 아무리 나쁜 범인이라도 범인을 가려내고 잡아 가두고 처벌하는 과정은 완벽하게 ‘법대로’여야 한다.
특정 인물이나 집단의 ‘악마화’에 기대 스스로의 존재와 오류를 정당화하는 것은 권력이 빠지기 쉬운 유혹이자 권력 그 자체의 속성이기도 하다. 빌런을 일단 완전한 악마로 만들어 놓고, 주인공의 행위에 대한 신뢰와 윤리를 유도하는 영화의 흔한 이야기 기법은 정치판에서 더 익숙한 것이기도 하다.
‘범죄도시’에서 다루는 범죄는 가해-피해 경계가 우리 사회의 내부에 있지 않고 우리 사회의 밖과 안 사이에 있다. 대개 가해자는 바깥에서 오고, 피해자는 안에서 생겼다. 사회 갈등을 다루는 편하고 단순한 방식이다. 이 이야기 구조가 우리 사회 내부의 병폐를 외면하고, 이방인과 외래문화에 대한 혐오를 키우는 것은 아닌지도 돌아봐야 할 문제다.
과연 ‘범죄도시’ 시리즈는 세계를 확장하고 진화해갈 수 있을까.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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