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가볼만한 곳] 청량한 풍류 흐르는 함양 화림동계곡

2023. 6. 28.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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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추천 ‘풍류가 깃든 계곡’

본능적으로 시원한 곳을 찾는 계절이다. 여름에는 바다도 좋지만, 계곡 특유의 청량함에 끌린다. 어느 계곡으로 향할지 고민은 접어도 될 듯. 풍류에 일가견이 있는 우리 선조들이 경치가 뛰어난 계곡을 이미 발굴했으니 말이다. 조선 시대 선비들이 ‘영남 제일의 동천(洞天)’으로 칭송한 안의삼동(安義三洞)에 속하는 화림동계곡이 오늘의 목적지다.

함양 선비문화 탐방로 [촬영=김수진 작가]

화림동계곡이 위치한 함양은 ‘좌안동 우함양’이라 불린 영남 선비 문화의 중심지였다. 이를 증명하듯 선비들이 자연을 벗 삼아 학문과 인생을 논하던 정자와 누각이 곳곳에 있다. 그중 화림동계곡은 함양을 넘어 우리나라 정자 문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계곡을 따라 기이한 바위와 반석, 산이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완성하고, 그림 같은 풍경을 조망하는 명당에 정자가 들어섰다.

옛 선비들처럼 계곡과 누정의 운치를 만끽하도록 이곳에 선비문화탐방로를 조성했다. 탐방로는 2개 구간이 있으며, 화림동계곡의 백미인 거연정과 농월정을 잇는 1구간(약 6km)이 인기다. 계곡을 따라 숲길과 마을길을 거닐며 거연정, 군자정, 영귀정, 동호정, 경모정, 람천정, 농월정 등 7개 정자를 차례로 방문한다. 양쪽 끝에 있는 거연정이나 농월정, 어느 곳에서 출발해도 상관없다. 물이 흐르는 방향대로 걷고 싶다면 거연정에서 시작한다.

화림동계곡과 농월정의 아름다운 조화 [촬영=김수진 작가]

산과 물, 바위, 정자가 완벽한 합을 이루는 거연정(경남유형문화재) 앞에 서는 순간, 화림동계곡이 풍류 명소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기암괴석을 타고 흐르는 계곡물과 암반 위에 절묘하게 세운 정자가 기막힌 조화를 이룬다. 조선 시대에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화림재 전시서가 서원을 세우고 그 옆에 억새를 엮어 처음 거연정을 지었으며, 이후 재건과 중수를 거쳤다. 조선 후기 학자 임헌회는 〈거연정기〉에서 “영남의 승경 가운데 삼동(안의삼동)이 최고이고, 삼동의 승경 가운데 화림동이 최고이며, 화림동의 승경 가운데 이 정자가 최고”라고 썼다. 현대에도 화림동 거연정 일원이 명승으로 지정된 걸 보면 예나 지금이나 풍치를 바라보는 눈은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거연정 지척에 성리학의 대가인 일두 정여창과 연관된 군자정(경남문화재자료)이 자리한다. 정여창은 처가가 있는 봉전마을을 찾으면 영귀대에서 쉬곤 했는데, 후손들이 선생을 기리는 뜻에서 이곳에 정자를 세우고 군자정이라 이름 붙였다. 자연 암반 위에 지은 군자정은 아담하고 소박한 자태가 매력적이다.

화림동 계곡 [촬영=김수진 작가]

거연정과 군자정을 지나 본격적인 계곡 산책이 시작된다. 두 정자 사이에 난 다리(봉전교)를 건너자마자 왼쪽 숲속으로 덱 탐방로가 보인다. 탐방로에 들어서면 상쾌한 기운이 감싼다. 울창한 나무 그늘과 시원한 계곡물 소리가 무더위를 잊게 한다. 탐방로에서 계곡으로 내려가 잠시 쉴 수도 있다.

숲길과 포장길로 이어진 탐방로를 걸어 화림동계곡의 정자 가운데 가장 크고 화려한 동호정에 이른다. 동호정(경남문화재자료)은 조선 선조 때 학자인 동호 장만리를 기리기 위해 그의 후손이 건립한 중층 누각이다. 위풍당당한 정자도 볼거리지만, 계곡에 펼쳐진 드넓은 암반이 시선을 끈다.

차일암이라 불리는 너럭바위를 중심으로 금적암(琴笛岩)과 영가대(詠歌臺)라고 새긴 글씨가 눈에 띈다. 각각 ‘악기를 연주하는 곳’ ‘노래 부르는 곳’이라는 뜻으로, 선조들이 이곳에서 풍류를 즐겼음을 보여준다. 차일암은 오늘날에도 휴식처이자 놀이터다. 바위에 누워 쉬는 이도 있고, 인증 사진을 찍는 이도 있다. 반석에서 바라보는 정자도, 정자에서 바라보는 반석도 아름답다. 건너편 탐방로에서 정자와 암반이 한눈에 담긴다.

거연정 [촬영=김수진 작가]

1구간 마지막 정자인 농월정에 이르니 풍경은 더욱 웅장하다. 거대한 월연암 한쪽에 농월정이 서 있고, 그 뒤로 산이 원근감을 달리하며 펼쳐진다. 몽환적인 이 장면은 드라마 ‘환혼’의 배경으로 등장했다. 조선 시대 학자 지족당 박명부가 지었다는 정자는 세월의 흔적이 덜 느껴지는데, 2003년 화재로 소실됐다가 2015년에야 복원했기 때문이다. 억겁의 시간을 보낸 듯한 너럭바위에 견주어 새것 같은 정자 외양이 다소 이질적이지만, 농월정이 있어 이곳의 풍치가 비로소 완성된다.

선비문화탐방로는 길이 평탄해 남녀노소 누구나 걷기 편하다. 그늘이 없는 마을 길 구간도 포함되니 모자와 선크림, 마실 물을 꼭 준비하자. 전 구간을 걷기 부담스러우면 정자와 계곡에서 여유롭게 쉬며 일부만 둘러보는 것도 방법이다. 거연정과 동호정, 농월정 인근에 주차할 공간이 있어 자동차 이동도 가능하다.

동호정에서 바라본 풍경 [촬영=김수진 작가]

빼어난 계곡에 이어 숲을 향유할 차례. 함양 상림(천연기념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이다. 통일신라 때 최치원이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조성했다고 전하며, 다양한 수종 2만여 그루가 빼곡한 숲을 이룬다. 숲속을 산책하며 함화루(경남유형문화재), 이은리 석불(경남유형문화재), 최치원신도비(경남문화재자료) 등도 살펴볼 수 있다. 상림 일대를 공원으로 꾸며 연꽃단지, 음악분수, 역사인물공원 등 볼거리가 많다.

개평한옥마을은 개울을 따라 한옥과 돌담이 어우러져 고아한 멋을 뽐낸다. 함양 일두고택(국가민속문화재), 풍천노씨대종가(경남문화재자료), 개평리 하동정씨고가(경남문화재자료) 등 문화재로 지정된 고택이 여럿이다. 정여창의 옛집인 일두고택은 ‘미스터 션샤인’, ‘다모’, ‘토지’ 등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일두고택 맞은편에는 500년이 넘는 전통을 간직한 솔송주를 테마로 하는 솔송주문화관이 있다.

정여창을 기리는 함양 남계서원(사적)이 개평한옥마을에서 멀지 않다. 영주 소수서원(사적)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세운 서원이며,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살아남았다. 뒤쪽 높은 곳에 제향 공간을, 앞쪽 낮은 곳에 강학 공간을 배치했고, 작은 연못이 운치를 더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서원’ 아홉 곳 중 하나로, 뒤쪽에 솔숲이 우거져 산책하기 좋다.

김수진 작가 [한국관광공사 추천 7월 가볼만한 곳 여행작가]

정리=함영훈 기자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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