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2023] (11) 경희대 이승구 “수비 범위 넓은 것이 내 장점”
#예상치 못한 포지션 변경과 혼란
초등학생 시절 또래 친구들보다 키가 컸던 이승구는 5학년 말미 학교 농구부 감독의 제안으로 농구를 시작했다. 제대로 배워본 적은 없었지만, 큰 신장 덕에 센터를 봤고 자신감도 얻었다. 초등학교 졸업 당시엔 180cm였다고.
춘천을 떠나 서울에서 농구를 배우기 위해 대현초 전학을 택한 그는 휘문중에 진학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맡아왔던 리바운드와 수비로 센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중학교 3학년인 2016년. 제53회 전국남녀중고 춘계농구연맹전 남중부 금명중과의 예선전에선 30점 9리바운드를, 2016 연맹회장기 전국남녀중고 농구대회 남중부 8강전에선 명지중 상대로 19점 17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주전으로 활약하며 창창한 미래를 꿈꿨던 이승구. 그러나 마냥 순탄하진 않았다. 키가 더 이상 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고 포지션을 변경해야 했기 때문이다. “키에 대한 아쉬움은 지금도 많아요. 2m까지 컸으면 환상적이지 않았을까요? 당시엔 키가 당연히 클 줄 알고 미드레인지 슛 정도 연습했고 3점슛은 생각을 못 했어요.”
갑작스러운 변화에 급하게 외곽슛 연습을 시작했지만, 감은 잡히지 않았다. 스몰 포워드 역할을 연습해도 팀 내 센터 중 주전은 자신뿐이었기에 대회 출전 시 다시 4, 5번을 소화할 수밖에 없었다.
중학교 말미 약간의 부침을 겪었던 그는 고등학교 1학년으로 넘어가서야 슈터로 전향할 기회를 잡았다. 선배 중 센터를 볼 수 있는 선수가 많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슛 연습할 시간이 늘어났다. 본래 역할이었던 궂은일은 유지하고 3점슛을 장착하기 위해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신입생으로서 출전 기회를 많이 받은 건 아니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기록이 있었다. 2017 한국중고농구 주말리그 남고부 인헌고 상대로 22점 22리바운드를 폭발시켜 팀이 17점 차 승리(95-78)를 챙기는 데 앞장섰다.
또한, 휘문고가 종별선수권대회 정상에 등극하면서 이승구는 농구 인생 첫 우승을 맛보기도 했다. 2학년 주말리그 왕중왕전 당시엔 송동훈(KCC), 김환(조선대)과 함께 삼일상고 상대로 맹활약하며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소중한 기록과 추억을 안고 어느새 10대의 끝자락에 다다랐다. 3학년은 아프지만 성장할 수 있던 1년이었다. 종별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홍대부고를 만난 휘문고는 접전을 펼치다 경기 막판 2점 차(71-73)까지 좁혔지만, 7초의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우승을 내줬다.
그가 이 경기를 곱씹는 또 다른 이유는 4쿼터 초반 부상으로 인해 벤치로 물러났기 때문이다. “뛰다가 무릎에서 소리가 났고 연골이 찢어져서 못 뛰었어요. 벤치에서 계속 지켜봤는데 무릎이 안 움직이니까 눈물이 나더라고요.”
얼마 지나지 않아 주말리그 왕중왕전 결승에서도 홍대부고를 상대하게 됐고 다시 한번 우승을 놓치고 말았다. 우승의 문턱을 넘지 못해 아쉬움이 남지만, 정신적으로 한 층 성장할 수 있었다.
대다수의 20학번 선수들이 공감하듯 이승구도 대학 입학 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큰 상실감을 느꼈다. “동계훈련 마치고 3~4개월 휴가를 받으니까 몸 올라온 게 없어지고 허무했어요. 팀 훈련도 전혀 못 했고요. 가끔 할 수 있는 사람들만 모여서 연습했습니다.”
2학년이 됐을 땐 부상으로 마음고생이 심했다. 2021 KUSF 대학농구 U-리그 1차 대회 종료 후 3차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손목 부상을 당한 것. 3차 대회와 MBC배까지 출전할 수 없었던 이승구는 9월 왕중왕전이 돼서야 복귀했다.
추운 겨울 같았던 2년을 보낸 후 3학년이었던 2022년. 장기 결장 후 복귀로 인한 자신감 하락과 고학년의 부담감을 안고 있었지만, 마음을 다잡고 궂은일부터 하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마음가짐이 응답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한양대 원정 경기(4월 6일)서 3쿼터까지 16점 차(49-65)로 끌려갔던 경희대. 4쿼터 들어 추격의 고삐를 당긴 경희대는 78-78 동점까지 이뤄냈고 경기 종료 12초 전 3점슛을 터뜨려 대역전극을 만들어냈다.
위닝샷의 주인공은 이승구였다. “워낙 크게 지고 있었어요. ‘이대로 끝나면 큰일 나겠다’ 싶어서 일단 수비부터 하자고 생각했죠. 그런데 갑자기 동점이 됐고 (고)찬혁이가 볼을 저한테 주더라고요. 볼이 손에서 떨어지자마자 감이 너무 좋아서 꿈 같았어요. 영화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그의 천금 같은 활약 덕에 경희대는 승리를 챙겼다. 올 시즌 초반은 4연패로 팀 분위기가 가라앉는 순간도 있었지만, 이후 연승으로 기세를 살렸고 지난 22일 건국대전 역전승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이 경기서 이승구는 11리바운드와 경기 막판 귀중한 3점슛을 올렸다.
리그에서 승수를 많이 쌓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던 이승구는 MBC배와 플레이오프에 사활을 걸 것을 예고했다. “MBC배 예선은 무조건 통과하고 싶어요. 플레이오프에선 1위 고려대를 만나겠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하면 우리가 이길 기회가 온다고 생각합니다. 끝까지 해서 유종의 미 거두고 싶네요.”
자신의 장점을 수비로 기재한 것처럼 프로 진출 시 수비적인 부분에 큰 기대를 안고 있었다. 그는 “프로는 외국선수도 뛰다 보니까 그 농구 시스템과 패턴들이 궁금해요. 수비도 더 체계적일 텐데 제가 수비 범위가 넓고 안 보이는 수비를 잘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웃음)”라며 미소를 보인 뒤 “또 무빙슛도 제 장점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헌신적인 수비와 결정적 한 방으로 팀의 사기를 끌어 올린 이승구. 과연 그가 바란 대로 유종의 미를 거두고 프로 진출까지 이뤄낼 수 있을지 지켜보자.
#사진_점프볼 DB
Copyright © 점프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