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외를 원칙으로, 원칙을 예외로 바꿔버린 대법원
김동욱 변호사의 '노동법 인사이드'
최근 대법원은 완성차 업체가 불법파업에 참여한 노동조합과 조합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에서, 불법파업에 의한 손해의 인정범위, 손해배상책임 제한에 대한 판결을 선고하였다(대법원 2023. 6. 15. 선고 2017다46274 판결, 2018다41986 판결, 대법원 2019다38543 판결 등). 대법원은 불법파업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은 노동조합에게 있으므로, 불법파업에 대한 책임제한을 함에 있어서는 조합원들의 노동조합에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조합원들에게는 노동조합보다 더 많은 책임제한을 해주어야 한다는 취지로 판결하였다.
판결선고 후 그 의미를 둘러싸고 언론기사, 경제단체, 노동계로부터 다양한 해석들이 제기되었고, 대법원도 이례적으로 두 차례에 걸쳐 판결을 설명하는 보도자료를 발표하였으며, 고용노동부도 판결과 노란봉투법의 관계에 대해 두 차례 보도자료를 내는 등 판결을 둘러싸고 큰 혼란이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이 판결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공동불법행위에 대한 부진정연대책임의 법리나 신의칙에 의한 손해배상 제한 법리 등이 법률전문가가 아니라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데서 기인한 면도 있다.
대법원이 2차례의 보도자료를 통해 강조한 것도 이 부분이다. 판결을 읽는 독자들이 판결을 잘못 이해했다는 것이다. 어려운 법리이므로 판결을 잘못 이해하고 잘못된 비판을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번 혼란의 원인이 그것뿐이었을까? 이번 판결은 그 형식적인 문언을 떠나 판결이 내포하고 있는 실질적인 의미와 불러일으킬 사실상의 효과에 대해 다양한 관점으로 평가가 가능한 판결이다. 특히 최근 우리 사회는 노란봉투법을 둘러싸고 극심한 대립을 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 노란봉투법 제3조의 내용과 혼동이 되기 쉬운, 아니 어떻게 보면 노란봉투법 제3조가 입법된 것과 실질적으로 동일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판결을 선고한 대법원은 과연 이번 혼란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인가?
이번 판결의 일차적인 의미는 대법원에서 두 차례에 걸쳐 발표한 보도자료가 정확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불법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판단함에 있어서는 먼저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이 가담한 쟁의행위가 정당한 범위를 넘고 그로 인하여 사업자에게 손해가 발생하는지를 심리하고, 손해가 인정되면 노동조합과 조합원은 공동불법행위자로서 파업의 상대방인 회사에게 발생한 손해를 공동하여 배상할 부진정연대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법원은 그 다음 단계에서 손해의 액수를 정하게 되는데, 이때 손해의 공평한 분담 이념에 따라 책임을 제한하여 최종적으로 배상할 손해를 확정한다. 이러한 책임제한은 공동불법행위자들 사이에서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이 대원칙이다. 다만 대법원 보도자료가 인용한 대법원 2014. 4. 10. 선고 2012다82220 판결 등에서는 극히 예외적으로 공동불법행위자 사이에 책임제한 비율을 달리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왔다. 대법원은 이러한 법리에 근거하여 쟁의행위의 경우 개별 조합원 등에 대한 책임제한을 노동조합보다 많이 해주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문제는 공동불법행위자들 사이에 개별적인 책임제한 법리는 정말 지극히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법리라는 것이다. 공동불법행위자에 대하여 부진정연대채무를 인정하는 것은 피해자에게 다수 행위자의 각 행위 및 손해와의 명확한 인과관계 증명의 부담을 덜어주고, 손해배상에 있어서는 공동불법행위자들에게 민법상 원칙인 분할채무가 아닌 연대책임을 지움으로써 책임재산의 범위를 확대하고 가해자의 무자력 위험으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공동불법행위 규정의 취지를 고려하면, 공동불법행위가 성립하는 경우 각 공동불법행위자는 각자 피해자에게 발생한 손해 전부를 배상하여야 하고, 공동불법행위자 중 1인이 피해자와의 관계에서 자기의 관여도에 해당하는 일부만의 배상책임을 지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허용되지 아니함이 타당하다. 판례 역시 공동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의 범위는 피해자에 대한 관계에서 가해자들 전원의 행위를 전체적으로 함께 평가하여 정하여야 하고, 그 손해배상액에 대하여는 가해자 각자가 그 금액의 전부에 대한 책임을 부담하는 것이며, 가해자의 1인이 다른 가해자에 비하여 불법행위에 가공한 정도가 경미하다고 하더라도 피해자에 대한 관계에서 그 가해자의 책임 범위를 위와 같이 정하여진 손해배상액의 일부로 제한하여 인정할 수는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2007. 6. 28. 선고 2007다7768 판결).
그러므로, 공동불법행위자 사이의 책임은 피해자에 대한 관계에서는 동일하게 인정되는 것이 대원칙이고, 극히 예외적으로 공동불법행위자들 사이에 책임제한 비율을 개별적으로 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대법원 판결은 쟁의행위 영역에서 공동불법행위 책임의 원칙과 예외를 바꾸어 놓은 듯하다. 대법원 판결의 태도에 의하면 쟁의행위 영역에서는 공동불법행위자 사이에 동일한 책임을 부담한다는 것은 예외가 되어 버리는 것이고, 오히려 공동불법행위자 사이에 책임이 개별화하는 것이 원칙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앞으로 재판을 담당하는 하급심 재판부는 이번 대법원 판결의 취지에 따라 불법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의 책임을 노동조합보다 더 많이 감경하는 것을 원칙으로 재판을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 판결의 효과가 노란봉투법 제3조와 묘하게 닮아 있다는 점이다. 언론기사나 경제단체 등에서 이번 대법원 판결이 노란봉투법 제3조를 입법한 것이라고 비판하는 배경이다. 사견으로는 고용노동부 보도자료의 내용처럼 이번 대법원 판결의 법리가 노란봉투법 제3조와는 다르다고 본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공동불법행위를 인정하고 책임제한 단계에서 개별적으로 책임제한을 하라는 것이고, 노란봉투법 제3조는 – 노란봉투법의 의미가 불분명하여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 불법파업에 가담한 조합원들의 공동불법행위를 부인하고 처음부터 개별적인 손해배상 책임으로 가자는 것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인해 증가하는 증명의 부담도 노란봉투법에 의한 증명의 부담보다는 적은 것이 맞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 양 법리가 도출할 결론은 사실상 큰 차이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책임 개별화가 실현되는 것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과 노란봉투법은 손해배상 책임 개별화를 위해, 입구를 좁힐지(노란봉투법), 출구를 좁힐지(대법원 판결)의 차이만 있을 뿐인 것이다. 경제단체 등에서 이번 대법원 판결에 심각한 우려와 함께 비판을 제기하는 이유이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노동그룹장/중대재해대응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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