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시세] "물약 1개 포장이요"… 지옥에 열광하는 아저씨들

정원기 기자 2023. 6. 28.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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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세대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

[편집자주]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시각이 남다른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 세대).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머니S는 Z세대 기자들이 직접 발로 뛰며 그들의 시각으로 취재한 기사로 꾸미는 코너 'Z세대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Z시세)을 마련했습니다.

미국 유명 게임사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11년 만에 디아블로4를 출시하면서 이른바 '지옥 마케팅'이 인기다. 사진은 지난 18일 서울 영등포구 디아블로4 팝업스토어에 마련된 릴리트 대형 조형물. 릴리트는 게임 속 핵심 캐릭터. /사진=정원기 기자
"그토록 바라던 지옥으로 들어갑니다."

게임·영상 속에서만 볼 수 있었던 지옥이 현실에서 그대로 구현됐다. 식품과 의류, 전자제품 등 산업 곳곳에서 '지옥으로 오라'며 소비자를 유혹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에는 '빨간색 치유 물약 마셔본 후기' 'HELL버거 맛 평가' '지옥 패션'에 대한 내용이 넘쳐난다.

이른바 '지옥 마케팅'은 미국 유명 게임사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11년 만에 '디아블로4'를 출시하면서 시작됐다. 블리자드가 '지옥 마케팅'을 펼치는 이유는 이용자 대부분이 경제력을 갖춘 30대 이상의 '아저씨'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11년 전 추억을 떠올리며 흔쾌히 지갑을 열고 있다.



굿즈, 조각상·마우스·바람막이 등 다양


디아블로4 팝업스토어에는 한정 소장판 박스를 비롯해 프리미엄 대형 스태츄(조각상) 등 총 39종의 다양한 굿즈가 전시됐다. 사진은 지난 18일 팝업스토어 현장. /사진=정원기 기자
지난 18일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디아블로4' 팝업스토어에 들어서자 비장한 표정의 남성들이 매장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들은 지옥문 입장과 동시에 악마를 찾아 해치우려는 영웅처럼 매장 곳곳을 신중히 둘러보는 모습이었다.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릴리트 대형 조형물이다. 르네상스 예술 형식을 빌려 증오의 군주로 불리는 대악마 메피스토의 딸 릴리트를 위세 있게 표현했다.

디아블로 1·2편을 경험한, 충성도 높은 팬이라고 밝힌 김모씨(남·37)는 "20대 때 게임을 즐겨 했는데 사회에 나와 일에 치이다 보니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다"며 "디아블로 최신작 출시 소식에 옛날 생각이 나서 이곳을 찾았다"고 즐거워 했다. 이어 "'HELL IS COMING'이라는 문구와 릴리트 조형물을 보니 지옥문으로 입장하는 기분"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컴퓨터를 새로 주문했다는 박모씨(남·30대)는 "월급을 조금씩 모아 130만원가량의 조립PC를 구매했다"며 "디아블로 시리즈의 최대 강점은 스토리인데 이번에는 비주얼적으로도 대폭 업그레이드돼 고사양 컴퓨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헤드셋이나 마우스는 기존에 사용하던 것을 쓸 계획이라 따로 구매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디아블로와 협업한 스틸리스즈의 제품을 눈으로 보니 생각이 바뀐다"고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디아블로4 팝업스토어에는 전자제품과 의류 등 다양한 컬래버레이션 상품이 전시돼 있다. 사진은 지난 18일 스토어에 마련된 헤드셋·마우스(왼쪽)와 바람막이. /사진=정원기 기자
간혹 여성들도 눈에 띄었다. 여성들은 게임 골수팬은 아니지만 디아블로 상품에 큰 흥미를 보였다. 프리미엄 대형 스태츄(조각상)와 디아블로 테마의 장식용 잔·머그컵 등 다양한 굿즈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남자친구와 함께 방문한 양모씨(여·20대)는 "악마 형상과 빨간색·검은색으로 꾸며진 상품이 새롭게 느껴진다"며 "대중적인 컬래버레이션 제품과는 확연히 다르다"고 놀라워했다. 이어 "디아블로에서 영감받아 제작했다는 바람막이가 상당히 힙하다"며 "사실 게임은 잘 모르지만 굿즈를 보니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 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빨간색 치유 물약 한잔 주세요"


햄버거 브랜드 버거킹은 게임 속 캐릭터 이름을 딴 헬(HELL)로 릴리트 와퍼 등 신메뉴 2종을 출시했다. 사진은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버거킹 선릉역점에서 식사하는 시민들(왼쪽)과 해당 햄버거. /사진=정원기 기자
식품업계에서는 디아블로를 활용한 '펀슈머 마케팅'이 대세다. 펀슈머란 영어 단어 'Fun'(재미)과 'Consumer'(소비자)를 결합한 합성어로 즐거움을 중요 가치로 두는 소비자를 의미한다.

햄버거 브랜드 버거킹은 게임 속 상징적 캐릭터의 이름을 딴 신제품을 출시했다. '헬(HELL)로 릴리트 와퍼'와 '헬로 이나리우스 와퍼' 등 2종으로 각각 매콤한 디아블로 소스와 달콤한 베이컨 잼이 뿌려진 게 특징이다.

지난 19일 전국 유일 디아블로 콘셉트 스토어로 변신한 버거킹 선릉역점을 방문했다. 이곳은 외관부터 일반 버거킹 매장과는 달랐다. 악마가 마중 나와 서있었고 매장 내에는 게임 음악을 틀어놓아 현실과 동떨어진 곳에 왔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비자들은 이색 서비스에 만족한다는 반응이다. 게임 아이템을 받기 위해 릴리트 와퍼 세트를 구매한 정모씨(남·30대)는 "선릉역 주변에는 프랜차이즈 햄버거부터 수제버거 등 햄버거 가게가 많다"며 "평소 버거컹을 즐겨 찾진 않았지만 신메뉴를 먹기 위해 와봤다"고 말했다. 이어 "콘셉트가 지옥이라 그런지 살짝 매콤하다"며 "지옥에 이런 버거집이 있다면 입맛에 잘 맞을 것 같다"고 농담을 건넸다.

버거킹 관계자는 "신메뉴 론칭 당일 선릉역점에는 평일보다 150% 더 많은 고객이 방문했다"며 "게임 마니아들이 기다려 온 콘텐츠인 만큼 반응이 뜨겁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기에 힘입어 다음달에는 디아블로와 협업한 새로운 메뉴를 공개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더본코리아의 커피전문점 빽다방은 게임 아이템 치유 물약을 토대로 음료를 만들었다. 사진은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빽다방 선릉중앙점에서 기자가 구매한 디아블로 에너지 드링크. /사진=정원기 기자
게임 속 아이템을 모티브로 한 음료수도 등장했다. 더본코리아의 커피전문점 빽다방은 '디아블로 에너지 드링크'를 시즌 한정 판매한다. 해당 음료는 캐릭터 체력을 보충해 주는 치유 물약에서 영감을 받아 개발됐다.

직장인 강모씨(여·26)는 "레드 컬러의 레몬맛 카페인 음료"라며 "갈증 해소와 함께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품 방향성이 잘 설정된 것 같다"며 "게임 캐릭터들이 전쟁에 나설 때 치유 물약이 필수인 것처럼 직장인은 카페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유쾌하게 해석했다.

더본코리아 관계자는 "게임 론칭 시 MZ세대가 많이 유입되는 점을 고려해 전략적으로 블리자드와 협업했다"며 "게임 아이템이 떠오르는 비주얼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출시 후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팔린다"며 "게임사 측에서도 굿즈 행사의 참여율이 높아 이례적이라는 평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고객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여러 브랜드와 협업을 계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원기 기자 wonkong96@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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