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탈취 솜방망이 처벌 없앤다…법원이 직접 증거조사 ‘디스커버리 제도’ 추진
신속 해결·처벌 강화·사각지대 해소…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마련
5년간 피해액 25조원 추정… “솜방망이 처벌 없앤다”
지난 12일 산업계와 과학기술계에 깜짝 놀랄 만한 뉴스가 전해졌다. 중국이 삼성전자의 전직 임원을 영입해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장을 통째로 복사하려는 시도를 했다는 소식이었다. 수원지검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수사부(박진성 부장검사)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 핵심 임원 출신인 A씨를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이번 기술 유출로 삼성전자가 입은 피해가 최소 3000억원에 이른다고 봤다.
기술유출로 국내 기업이 입는 피해는 한두 푼이 아니다. 지난 5년간 기술유출 피해액만 25조원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기술유출로 국내 기업의 피해가 계속해서 커지자 정부가 대책을 내놨다. 기술유출 분쟁을 신속히 해결하고, 양형기준을 개정해 기업들의 산업재산권을 보호한다는 방침이다.
특허청은 ‘원스톱 분쟁 해결체계 구축’과 ‘기술유출 처벌 강화’ ‘보호 사각지대 해소’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기술탈취 방지대책을 28일 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당정 협의와 재계·전문가 토론회를 거쳐 마련됐다.
원스톱 분쟁 해결체계는 행정조사와 분쟁조정, 기술경찰 수사 사이 연계를 강화하기 위해 구축된다. 특허청은 ‘산업재산 분쟁 해결 종합지원센터’를 설치해 기술유출로 발생한 피해를 신속하게 구제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산업재산 분쟁조정법’을 제정해 ‘산업재산 분쟁조정원’ 설립도 추진하기로 했다.
행정조사와 분쟁조정 과정도 손본다. 그동안 아이디어 탈취에 대한 행정조사는 시정 권고와 미이행 공표만 가능해 강제력이 없었지만, 앞으로는 시정명령 제도와 불이행 시 과태료 부과 제도를 도입한다. 또 기술 분야별 전문조사관 체계를 구축해 아이디어 탈취 사건을 우선 처리하는 신속 조사 체계를 마련한다. 현재 평균 11개월이 걸리는 행정조사 기간은 6개월로 단축하기로 했다.
특허청은 효율적인 분쟁조정을 위해 사실 조사 기능을 강화한다. 특허청의 기술전문가가 현장 조사를 하고, 상임 분쟁조정위원을 둬 분쟁조정의 전문성을 높일 계획이다. 의도적인 조정 불응을 막기 위해 행정조사와 기술경찰 수사는 분쟁조정에 활용할 수 있다. 특허청은 분쟁조정 기간은 2개월로 유지하면서 성립률을 75%까지 올릴 예정이다.
기술유출의 양형기준 개정도 추진한다. 지난해 선고된 영업비밀 해외 유출 범죄의 형량은 평균 14.9개월로, 최대 징역 15년인 법정형보다 훨씬 낮았다. 또 기소된 유출범 중 75.3%가 집행유예를 받았다.
특허청은 대검찰청과 함께 영업비밀 유출 범죄의 양형기준 상향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기준 정비 제안서를 양형위원회에 올해 4월 제출했다. 피해기업의 침해 입증과 손해액 산정에 필요한 증거를 쉽게 수집하기 위해 법관이 지정한 전문가가 직접 자료를 조사하는 ‘한국형 증거 수집 제도(디스커버리 제도)’ 도입도 추진한다.
이번 기술유출 방지대책으로 관련 수사에서 가장 문제점으로 꼽혔던 혐의 입증의 어려움이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1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1심 사건 총 33건 중 무죄(60.6%)와 집행유예(27.2%)가 총 87.8%를 차지했다. 피해액 산정이 제대로 되지 않거나, 기업의 피해 사실이 재판부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사업 제안과 거래 교섭, 협상 과정에서 발생하는 산업재산권 유출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방안도 있다. 아이디어의 구체적인 내용과 거래 교섭 시 교환한 자료를 전자문서로 등록해 증거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아이디어 원본증명 제도’가 도입된다. 또 계약 체결 전에도 비밀유지계약(NDA)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이인실 특허청장은 “피해기업들이 기술탈취 분쟁에 대한 특허청의 행정조사, 분쟁조정, 기술경찰 수사를 쉽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원스톱 해결체계를 구축하겠다”며 “특허청의 기술 전문성을 바탕으로 기술심판 역할을 강화해 기술탈취 분쟁이 신속하고 공정하게 해결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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