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경의 시:선(詩:選)]시는 질문이다

2023. 6. 28.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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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운영하는 서점에는 '궁리책상'이라는 자리가 있다.

그럼에도 근사한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은, 아무래도 시집 가득한 책장에 둘러싸인 시집 서점의 책상이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렇게 적었다.

"혹시 또 오시게 되거든, 제게 시집을 골라달라고 말씀해주세요." 그러곤 또 한참 머뭇대다가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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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함을 믿지 않는 곳에서는 가장 현명한 해결책을 질문이라고 부른다/ 어딘가에 숨어서 이유를 구성하고 있다는// 지금은 질문이 필요해/ 너는 질문을 만나는 게 좋겠다// 그곳에서는 자신의 생활을 잃은 이들이 질문을 찾아 언덕을 넘는다’

- 정영효 ‘언덕을 넘는 사람들’(시집 ‘날씨가 되기 전까지 안개는 자유로웠고’)

내가 운영하는 서점에는 ‘궁리책상’이라는 자리가 있다. 혼자 쓰기에 다소 널찍하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 게 없다. 그럼에도 근사한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은, 아무래도 시집 가득한 책장에 둘러싸인 시집 서점의 책상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한껏 궁리를 해보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번듯한 한편에 자리하게 두었다.

이 책상 위에는 노트 한 권과 연필 한 자루가 놓여 있다. 어떠한 강제도 없으므로, 궁리책상 앞에 앉는 사람들은 거기에 적고 싶은 말들을 부려놓는다. 낙서하기도 하고, 시인의 시를 필사하거나 자작 시를 써놓는 이도 있다. 같은 연필로부터 다르게 발현된 개성이 느껴져 재미있다. 퇴근하기 직전, 이 노트를 열어 읽는 일로 서점의 일과를 마무리한다. 어제는 이런 문장을 읽었다. “시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몰라서 재미없다.” ‘저런.’ 안타까운 마음에 혀를 차고 말았다. 내게 물어봤다면 알려주었을 텐데. ‘모름’이야말로 시의 재미인데. 확인하고 알아가는 즐거움으로 시를 읽는 것인데. 시는 질문이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마음에 던지는 작은 돌멩이다. 좋은 시는 잔잔한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 이내 사라지고 말지라도 그 작은 변화는 무언가를 바꾸어놓기도 한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렇게 적었다. “혹시 또 오시게 되거든, 제게 시집을 골라달라고 말씀해주세요.” 그러곤 또 한참 머뭇대다가 덧붙였다. “자신 있습니다. 여기는 시집서점이니까요.”

시인·서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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