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린 먹방 임지연과 거기에 몰입감 더하는 김태희의 연기 변신('마당집')
‘마당이 있는 집’, 임지연의 허기와 김태희의 불안이 의미하는 것
[엔터미디어=정덕현] 추상은(임지연)은 끝없이 먹는다.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짜장면에 탕수육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운다. 하지만 폭식에도 그의 허기는 좀체 가시지 않는 느낌이다. 그래서 그는 누군가와 마주할 때 끝없이 무언가를 입에 집어넣는다. 문주란(김태희)이 그의 집에 찾아왔을 때도 혼자 냉동실에서 꺼낸 꽝꽝 언 아이스크림을 끝내 숟가락으로 퍼서 입에 넣는다.
반면 문주란은 무언가를 먹는 모습을 좀체 보이지 않는다. 그는 마치 먹지 않아도 괜찮을 정도로 모든 걸 다 가진 듯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어찌 보면 그것이 다 허상이 될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그 무엇도 입에 떠 넣지 못하는 사람 같다. 그는 끝없이 의심하고 궁금해 하며 그래서 남편에게도 이웃에게도 또 추상은에게 찾아와 묻고 또 묻지만 그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지니TV 월화드라마 <마당이 있는 집>에는 상반된 환경에 놓인 두 여자가 등장한다. 추상은과 문주란이다. 문주란은 마당이 있는 넓은 집에 살고, 추상은은 마당이 없는 좁은 아파트에 산다. 문주란의 남편 박재호(김성오)는 아내를 챙기는 성공한 병원장이고, 추상은의 남편은 상습적으로 아내를 폭행해온(심지어 임신을 한) 가정폭력범으로 박재호의 병원에 약을 납품하는 제약회사 영업사원이다.
이처럼 겉으로 보면 추상은과 문주란은 상반된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실체를 보면 두 사람 다 남편들의 그늘 아래 심각한 학대를 당하는 인물들이다. 추상은의 남편 김윤범(최재림)이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인물이라면, 박재호는 문주란에게 끊임없이 가스라이팅을 해 그를 스스로 문제 있는 사람처럼 여겨지게 만드는 인물이다. 물리적 폭력과 정신적 폭력의 차이가 있을 뿐, 두 여자는 모두 두 남자의 폭력 앞에 놓여 있다.
그래서 마당이 넓은 집에서 사는 문주란은 그 마당을 누리는 게 아니라 그곳에서 시체 냄새를 맡는다. 그건 실제지만 가스라이팅하는 남편에 의해 감춰지고 은폐됨으로써, 문주란을 더욱 미칠 지경의 불안 속에 살아가게 만든다. 마당 따윈 없는 좁은 아파트에서 사는 추상은은 그 곳을 벗어나고픈 욕망에 몸부림친다. 낚시터에 간 남편이 죽었지만, 자살로 판명되면 보험금을 탈 수 없다는 사실에 그날 남편이 만나려 했던 박재호를 범인으로 몰아세운다.
이 여인들의 허기와 불안을 만들어내는 남편들은 집 바깥에서 어딘가 범죄로 연루되어 있다. 박재호는 가출한 여고생의 죽음과 관련이 있어 보이고, 김윤범은 어쩌다 그 여고생의 핸드폰을 박재호로부터 훔쳐 그 안에 들어있는 비밀을 빌미로 협박을 해왔다. 그러니 김윤범을 박재호가 살해했을 수 있다는 심증이 생기지만, 그날 낚시터에 간 적이 없다는 박재호의 말이 사실이라면 김윤범 살해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추상은이다. 실제로 박재호는 낚시터에 간 게 아니라, 그날 낮 아내가 마당에서 발견한 시체를 다른 곳으로 옮기기 위해 집을 나갔을 수 있다.
남편들 사이에 벌어진 범죄와 비밀, 그걸 은폐하려는 자와 폭로하려는 자 사이에 벌어진 사건들 속에서 추상은과 문주란이 당하고 있는 폭력은 <마당이 있는 집>이 갖고 있는 세상에 대한 비판의식을 꺼내 보인다. 마당으로 대변되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대결처럼 보이지만, 실은 마당이 있어도 불안한 삶을 살아야 하고, 마당이 없어 무언가를 단 한 번도 누리지 못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문주란과 추상은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저 남편들과 벌이는 대결이 그 실체다.
그래서 서로 다른 목적을 갖고 있긴 하지만 문주란과 추상은은 조금씩 협력 관계를 맺어간다. 문주란은 남편의 실체와 사건의 진실을 알고 싶어 하고(자신이 미친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어한다), 추상은은 그 진실을 무기로 자신이 원했던 '누리는 삶'을 한번 살아보고 싶어 한다. 추상은이 보여주는 허기와 문주란의 불안은 그들을 그렇게 만든 세상(남편으로 대변되는 폭력적인 세상)을 은유하고 이들이 한 방향을 보게 만드는 동인이 된다.
그런 점에서 <마당이 있는 집>에서 추상은 역할로 '신들린 연기'를 보여주는 임지연은 이 스릴러의 중심을 잡아주면서 주제의식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가 허기로 표현해내는 억눌린 감정들의 표출은 시청자들에게 기묘한 카타르시스까지 전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감정들을 속으로 꾹꾹 눌러내며 억압함으로써 그걸 불안으로 표현해내는 문주란 역할의 김태희의 연기 변신 또한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김태희가 다소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로 감정을 눌러 불안감을 표현하기 때문에 임지연의 밖으로 터트리는 감정 표출이 더 시원하게 느껴지는 효과를 발휘한다.
<마당이 있는 집>은 오랜만에 보는 대본, 연기, 연출에 빈틈이 없는 완성도 높은 드라마다. 너무나 빈틈이 없어 보는 내내 숨 막힐 정도의 긴장을 하게 만드는데, 그 중심을 잡아주는 건 역시 임지연과 김태희다. 허기와 불안으로 대변되는 이 역할들을 제대로 소화해냄으로써, 우리 사회가 가진 폭력의 시스템이 바로 이 두 기제를 동력삼아 작동하고 있다는 걸 이토록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지니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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