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료기술에 누가 대못을 박았나[기자의 눈]

박효순 기자 2023. 6. 28.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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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원구원(네카, NECA)이 국회 남인순의원실에 지난 6월 20일 제출한 ‘최근 5년간(2018~2022) 신의료기술평가 추진 현황’을 보면, 신청 건수가 2018년 173건, 2019년 136건, 2020년 152건, 2021년 121건, 2022년 123건 등 총 708건에 달했다. 이 중 절반 이하인 43%(기존기술 13%, 신의료기술 30%)가 시장에 진입했다. 시장 진입 실패율은 27%에 달했다. 나머지 30%는 평가 진행 중, 반려 및 취하, 허가·평가 통합운영 비대상 및 중단, 혁신 비대상 등으로 분류됐다.

최근 5년간(2018~2022) 신의료기술평가 소요 기간(연도별 평균 소요일수)은 2018년 223일, 2019년 233일, 2020년 206일, 2021년 191일, 2022년 185일(5년 평균 206일)로 차츰 빨라지고 있다. 법정기한은 2019년 3월 15일 이전 접수 건은 체외진단검사 및 유전자검사 140일, 그 외 280일이다. 2019년 3월 15일 이후 접수 건은 체외진단검사 및 유전자검사 140일, 그 외 250일이다. 제출 자료에서 보건의료연구원 측은 신의료기술평가가 지연되는 주요 사유와 개선 필요성 및 방안에 대해 “최근 5년 간, 신의료기술평가의 안전성 및 유효성 평가 결과 통보 법정기한을 100% 준수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게 최선인가?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인허가에 문제라도 있다는 얘긴가? 관련 업계와 의료계에서는 “보건의료원구원이 보건복지부의 위임을 받아 시행하는 신의료기술평가제도가 혁신의술의 빠른 도입을 저해하는 주요 요인”이라는 아우성이 높다. 의료산업 키운다면서 ‘오히려 대못을 박는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새로운 의료기기가 식약처의 허가를 받았다면 일단 시장에 진입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비급여로 사용되면서 안전성·유효성에 대한 데이터를 충분히 쌓게 되면 그 시점에서 신의료기술평가를 해 건강보험 적용 여부를 검토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주장을 한다.

28일자 <매일경제> 지면에 ‘의료산업 키운다면서…혁신의술 막는 신의료기술평가’ 제하의 기사가 나왔다. 신의료기술평가로 인해 피해를 입은 세 가지 주요 사례가 나온다. 이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 관련 업계의 평가이다.

루트로닉이 개발한 ‘선택적 망막 치료술’은 세계 첫 국산 기술로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신의료기술평가 문턱을 넘지 못하고 ‘최초’ 타이틀을 놓친 대표적인 사례다. 회사는 세계 최초로 레이저 기술을 이용한 황반변성 치료 기술을 개발하고 식약처 품목허가 후 신의료기술을 신청했지만 임상 근거 부족을 이유로 번번이 탈락했다. 결국 국내 판매가 어려워졌고, 해외 진출의 꿈도 접어야 했다. 그러는 사이 호주에서 동등 제품을 제조하는 업체가 판매를 시작했다.

큐렉소 수술보조로봇을 이용한 척추 수술의 경우 신의료기술평가 실패 후 미국 식품의약국(FDA) 문을 두드려 세상 빛을 본 사례다. 척추 유합술 및 고난도 척추 수술에 활용도가 높은 이 기술은 총 3차례 신의료기술평가에서 실패하며 시장 진입을 하지 못했다. 국내 문턱을 못 넘었지만 FDA에서 품목허가를 받아 현재 미국에서 판매 중이다.

시지바이오의 소화기 내시경하 분말지혈제를 이용한 지혈술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했지만 2차 지혈술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하라는 조건이 걸렸다. 제한된 적응증과 연구개발비가 고려되지 않은 낮은 수가가 책정되면서 함께 개발된 분사기 또한 치료 재료로 인정받지 못해 결국 사업화에 실패했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에 따르면, 첨단혁신의료기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식약처로부터 의료기기 인허가를 득하여도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하기 전까지는 이를 사용하는 의료기관에서 급여·비급여 청구가 불가하여 시장진입이 어렵다. 허가 이후 다수의 임상시험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투자와 시간이 필요하지만 판매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국내 제조사가 이를 감당하기는 다국적 의료기기 제조사에 비해 부담이 크다. 이를 해소하고자 신의료기술 평가유예 제도에 이어 혁신의료기술평가 제도를 운영 중이나 실질적으로 첨단혁신기술이 적용된 의료기기의 시장진입에 한계가 있다.

신의료기술 평가유예 기간은 2년이다. 하지만 이 기간은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하기 위한 임상논문 등 임상근거를 창출하는데 있어 매우 부족한 기간으로, 의료기기 임상연구 과정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의료기기산업협회의 분석이다.

혁신의료기술평가는 혁신의료기기 통합심사제도를 통해 혁신의료기기 지정부터 혁신의료기술평가까지 소요기간을 최대 350일에서 80일로 단축했다. 그러나 혁신의료기술 평가제도의 경우 선정 이후 실시에 있어서 실시기관 개별로 임상연구를 선행하여 임상시험 참가자를 등록하여야 하며 실시기관 개별로 사실상 보건의료연구원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의 제한이 있다.

신의료기술평가 유예 기간의 확대(또는 연장) 및 혁신의료기술 실시지침에 따른 과도한 실시기관 및 절차과정에서의 제한사항을 개선 또는 폐지함이 필요하다고 의료기기산업협회는 강조한다.

윤석열 정부는 바이오헬스(의약·의료기) 산업을 제2의 반도체 산업으로 키우겠다며 신시장 창출 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이제 보다 ‘디테일’하게 가야 한다. 혁신적인 의료기기와 의술을 개발해도 신의료기술평가제도의 절벽에 막혀 상당수가 골든타임을 놓치고 심지어 사장된다는 항변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이다. 국민건강의 교두보이며 국가경쟁력이고 미래먹거리인 신의료기술에 누가, 어떻게 대못을 박는지 세밀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얘기다.

박효순 기자 anyto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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