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완전 제조사편”…국회 달군 급발진 방지법 첫 논의
지난해 12월 강릉에서 난 급발진 의심사고로, 60대 할머니가 운전하던 차에 함께 타고 있던 12살 손자 이도현 군이 숨졌습니다.
유가족은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차량 제조사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진행 중입니다.
또 급발진 사고에 한해 차량에 결함이 없음을 차량 제조사가 입증하게 해야 한다는 법 개정안도 냈습니다.
5만 명 이상 동의하면 법안을 발의할 수 있는 '국회 국민동의 청원' 제도를 활용했는데, 엿새 만에 5만 명을 채울 정도로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연관 기사] [취재후] 12살 도현이 할머니 탄원서 “죽자니 아들에게 더 큰 죄”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82215
이렇게 지난 2월 발의된 '사고 결함 입증책임 전환에 관한 제조물책임법 개정안', 이른바 '도현이법'이 최근 처음으로 국회에서 논의됐는데, 어떤 의견이 오갔는지 살펴봤습니다.
■'도현이법' 정무위 법안소위서 첫 논의..결론은?
국회 정무위 법안소위가 지난 22일 심사한 건 '도현이법'을 포함한 4개의 제조물책임법 개정안입니다.
강릉 급발진 의심사고 이후 국민의힘 정우택 의원,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과 허영 의원 등 여야 의원 3명이 각각 발의한 제조물책임법 개정안도 함께 논의됐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자동차 같은 고도의 기술력이 집약된 제조물에 의한 손해는 그 제조물에 결함이 없었다는 걸 제조사가 입증하게 해야 한다는 게 핵심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의결'이 아니라 '계속 심사'였습니다.
아직 정무위 전체회의에 올리지 말고 좀 더 논의하고, 지켜보자고 의견을 모은 겁니다.
국회에서 법이 개정되려면 소관 상임위 법안소위, 상임위 전체 회의, 법사위, 국회 본회의까지 여러 차례 의결을 거쳐야 하는데 첫 관문부터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다만 정무위 법안소위 회의록 27페이지 분량 중 절반이 제조물책임법 개정안 논의였을 정도로 , 급발진 문제에 대한 의원들의 관심은 컸습니다.
■공정위는 '신중 검토'.."수용 곤란하다는 입장"
정부 측 대표로 법안소위에 나온 윤수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은 대부분의 논의에서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면서 '민사 소송 원칙에 위배된다'는 견해를 고수했습니다.
윤수현 /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자동차 급발진 관련해서 손해배상 책임 관련해서 입증책임 완화라든가 그다음에 추정 요건 완화라든가 이런 취지에 대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도 공감합니다.
그렇지만 입증책임 전환이라든가 이런 내용 들은 민사소송의 기본적인 대원칙인 입증책임 분배의 공평성이라든가 이런 부분에 대해서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고요.
공정위는 허영 의원 개정안 일부에 대해서만 '보완이 필요하다'는 조건을 붙여 '일부 수용'할 수 있다는 의견을 냈을 뿐, 나머지 개정안에 대해서는 모두 '신중 검토'라는 의견을 냈습니다.
'공정위는 그래서 찬성인 거냐'라고 묻는 윤한홍 법안소위원장(국민의힘)의 질문에 윤 부위원장은 "법원 자료제출명령제도 도입, 이 부분을 제외하고는 수용 곤란하다는 입장"이라고 말했습니다.
■"완전히 제조사 편이다. 그렇게 밖에 볼 수 없어요."
이 같은 공정위 입장에 정무위원회 법안 심사 2소위원회 의원들은 답답함을 토로했습니다.
공정위가 너무 소극적인 것 같다는 지적이 있는가 하면 공정위가 완전히 제조사 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는 비판까지 나왔습니다.
국회 정무위원회 민병덕 위원(더불어민주당)
‘이런 이유 때문이야, 이것이 잘못됐기 때문이야’ 이렇게 밝혀지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은 과학적으로 책임이 없습니다.
그런데 밝혀지지 않으면 이 불확실함 속에서 이익을 얻은 사람은 지금 그것을 만들어서 파는 사람인 거잖아요. 여기에서 민법 민사소송의 기본원칙만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은 제가 보기에는 이건 완전히 제조사 편이다. 그렇게밖에 볼 수 없어요.
■ "그렇게 대처하시면 공정거래위원회 직무유기입니다"
공정위가 업계만 대변하느라 소비자는 신경 쓰지 않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원들의 질타도 쏟아졌습니다.
소비자 보호에 힘써야 하는 정부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지적입니다.
국회 정무위원회 최종윤 위원(더불어민주당)
특히나 급발진 사고로 인해서 나타난 문제들은 앞으로 기술이 고도화된 제조물과 관련돼서 정부가 입장과 앞으로 방향에 대한 패러다임 자체를 변환시켜야 해요.
저는 여기 처음 와서 보는데 깜짝 놀랐네요. 그렇게 대처하시면 공정거래위원회 직무유기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게 제가 보기에는 폭발점은 아니지만, 임계점은 온 것 같아요. 여기에서 한 번 정도 다시 검토해 보시고 그리고 신중하게 하지 마시고 적극적으로 해 주시고.
국회 정무위원회 민병덕 위원(더불어민주당)
그런데 왜 그쪽(제조사)의 입장에서 얘기하세요. 이쪽(소비자)의 입장에서 그쪽(제조사)의 정부기관들을 설득해 주셔야 한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그렇게 했을 때만이 자동차 업계가 급발진이 안 일어나게 하기 위한 연구를 훨씬 더 하고 거기에다가 돈을 더 쏟을 것 아닙니까.
이렇게 방어를 해 주면, ‘그것은 밝혀지지 않았잖아. 너희들이 엄청난 소송 비용을 써 가면서 밝혀 봐. 그러면 내가 보상해 줄게’ 이런 상태로 나오면 자동차의 결함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하겠습니까? 자동차의 결함을 해소하고 그래서 소비자가 보호되게 하기 위해서 공정거래위가 있는 거잖아요.
국회 정무위원회 강훈식 위원(더불어민주당)
지금 이 논쟁과 쟁점에 정부가 빠져 있습니다. 국민들의 불안감은 그대로 있고요. 정부는 빠져 있고 제조업체에 부담을 줄 것인지 아니면 피해자의 부담을 줄인 것인지 쟁점만 있다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일은 계속 벌어지고 있고 우리가 엊그제 TV에서도 봤고 앞으로도 TV에서 볼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는 겁니다. 언젠가 또 나올 것이라는 거지요. 그렇다면 정부는 무슨 역할을 할 것이냐는 겁니다.
■윤한홍 소위원장, 공정위에 전향적 접근 당부
윤한홍 소위원장(국민의힘)은 자동차 운전하는 사람이 차량 결함을 입증하는 건 불가능하다면서도, 자동차회사가 입증하기도 쉽지 않을 거라고 했습니다.
결국 손해배상, 즉 운전하는 국민 피해를 어떻게 보전해줄거냐 하는 문제로 이어질텐데 이 같은 조치라도 이뤄지게 하려면 공정위에서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게 윤 소위원장 입장입니다.
그러면서 "단순히 법리적으로 피해를 본 사람이 입증을 해야 한다, 그냥 법리적인 단순한 논리만 가지고는 국민들께 다가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심사 내내 '신중히 검토하겠다'만 반복한 공정위의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고 지적한 겁니다.
윤 소위원장은 "이 법 여기서 심사를 마무리하지는 않겠다. 어떤 방식으로든 운전하는 소비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된다"는 말로 제조물책임법 개정안 첫 심사를 마무리했습니다.
'도현이법' 등 급발진 방지법과 관련한 국회 논의 과정을 계속 전해드리겠습니다.
‘급발진 의심’ 12살 도현이 사망, 아빠의 소명은… (KBS 뉴스9, 5월 22일)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81522
‘사고 전 마지막 기록’ 해외는 20초, 우리는 5초? (KBS 뉴스9, 5월 22일)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8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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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기자 (jjw@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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