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신함과 어색함, 그 어딘가의 ‘인어공주’
캐스팅 과정부터 적잖은 논쟁을 낳은 디즈니의 ‘인어공주’ 실사판이 개봉했다. 논란의 중심이었던 할리 베일리 그리고 애니메이션과 실사화의 차이점을 짚어봤다.
‘인어공주’는 실사화의 핵심인 '캐스팅’을 둘러싸고 시작 단계부터 논란에 휩싸였다. 배우 할리 베일리는 주인공 에리얼 역에 섭외된 순간부터 영화 개봉 이후까지 "인어공주답지 않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이 아픈 말에는 여러 의미가 담겼다. 그 가운데는 차별적이거나 폭력적인 것도 있고, 한편으로 의미 있는 의견도 있을 것이다. 그 논의를 새삼 되짚거나 어느 한쪽을 편들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날 선 논란에 놀라 뒷걸음치느라 의미 있는 비판을 놓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할리 베일리를 통해 재탄생한 인어공주를 다시 한번 찬찬히 떠올려보자. 오로지 영화 안에 머물며. 우리로 하여금 낯섦을 느끼게 만드는 새 공주님의 남다름에 관하여 말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애니메이션과 달리 담담한 캐릭터의 표정
유의미한 차이는 따로 있다. 할리 베일리가 연기하는 에리얼이 애니메이션과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은 바로 '표정’이다. 디즈니 작품이 대개 그렇듯, 애니메이션 속 에리얼은 순수하고 발랄한 갖가지 표정을 시종 풍부하게 선보인다. 그에 반해 할리 베일리의 표정은 훨씬 담담하고 절제되었다. 우리가 그녀를 보며 즉각적으로 낯섦을 느낀다면 디즈니 특유의 상큼발랄한 표정이 적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내게 이 점은 오히려 장점으로 느껴진다. 할리 베일리의 담담한 표정은 캐릭터에 새로운 색을 입힌다. 재탄생한 에리얼은 진지하고 성숙하며 어딘가 모를 슬픔을 안고 있다. 이런 느낌은 할리 베일리의 목소리와 만나 배가된다. 그녀가 부르는 'Part of Your World(저곳으로)’는 인상적이다. 애니메이션 속 에리얼의 노래가 육지를 향한 호기심으로 설레는 소녀의 마음을 보여준다면, 할리 베일리의 노래는 이곳과 분리된 미지의 저편을 향한 그리움, 그곳에 닿지 못하는 슬픔, 어쩌면 영영 만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좌절감을 묵직하게 전달한다. 전자가 가볍고 산뜻하다면 후자는 깊고 아프다. 꾸밈없는 창법, 미세하게 떨리는 고음, 잠시 멈추는 호흡, 덤덤한 표정으로 순수의 노래에 슬픔의 색을 입히는 할리 베일리는 '사이렌(siren)’처럼 느껴졌다.
절제된 표정은 최근 실사화된 디즈니 작품들을 관통하는 특징이기도 하다. 실사화된 '라이온 킹’에서 심바, 품바, 티몬 삼총사를 두고 많은 관객이 자연 다큐멘터리를 연상했다고 고백했다. 이런 반응을 이끌어낸 것도 사자(심바)의 무표정이다. 이것은 거꾸로 과장된 표정이야말로 애니메이션의 특징임을 깨닫게 한다. 애니메이션은 자연에서 찾기 어려운 선명하고 극적인 표정들이 활력을 만들어낸다. 반대로 실사화된 영화에서는 활력이 미진한 게 사실이다. 이런 제약을 어떻게 뛰어넘을 것인지는 실사 영화들의 공통된 고민거리다.
‘인어공주’에서도 인간을 제외한 동물 캐릭터들은 표정이 거의 없다. 물론 세바스찬(다비드 디그스)과 스커틀(아콰피나)을 맡은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는 훌륭하다. 그런데도 굳어 있는 눈과 입에서는 감정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영화가 이런 제약을 어떻게 넘을지 궁금해 동물 캐릭터를 유심히 보았다. 영화의 선택은 의외였다. 어색하지 않은 수준에서 동물 캐릭터에 미세한 표정을 넣은 것. 바닷게 세바스찬은 자연에서는 있을 수 없는 눈동자의 미묘한 변화로 감정을 표현한다. 마치 사람처럼 눈을 치켜떴다가, 흘겼다가, 동그랗게 뜨고는 한다. 그런데 이런 표정 변화는 애니메이션의 상징적인 특징이다. 영화는 실사화의 한계 앞에서 다시 애니메이션으로 회귀하고 마는 것이다. 이런 선택은 영화의 어색함을 메워주기는 하지만, 완벽한 실사화에 이르지 못했다는 사실을 자인한다는 점에서 아쉽다.
애니와 다른 실사화의 매력 그리고 숙제
결국 할리 베일리의 매력을 제외하고는, 실사화된 '인어공주’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것인가. 애니메이션을 현실로 소환하려던 시도는 실패했다고 평가해야 하나. 고민하던 나는 의외의 장면에서 답을 찾았다. 영화의 마지막, 하나의 아름다운 장면이 등장한다. 에리얼의 아버지 트라이튼(하비에르 바르뎀)은 사랑하는 딸의 새 출발을 축복하기 위해 삼지창을 휘두른다. 창에서 뻗어나온 금빛이 수면을 가로지르고, 이것은 바다 위의 태양이 내뿜는 햇빛으로 연결된다. 늘 누군가를 공격하던 삼지창의 불빛은 에리얼을 위한 버진 로드로 탈바꿈한다. 해수면 위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 늘 보는 광경이지만 나는 잠시 멍해졌다. 그리고 에리얼이 아빠를 그리워하며 망망대해를 막연히 바라볼 때, 트라이튼이 떠나가는 막내딸의 뒷모습을 볼 때.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는 이들의 먹먹한 심정을 고요하게 끌어안는다. 애니메이션은 표현하지 못할 감정이라 조심스레 평가하고 싶다. 실사 영화의 의미는 다름 아닌 이런 순간들에 있다.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하려는 시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실사 영화들이 여태 '자연스러운 전환’을 위해 골몰했다면, 앞으로는 그 이상의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단순히 그림을 실사로 치환하는 데 집중한다면 실사 영화는 영원히 성공할 수 없다. 그것은 도리어 부자연스러운 풍경만 보여주다 실패로 마무리될 공산이 크다. 애니메이션의 중요한 순간들이 품고 있는 의미와 감성을 어떻게 실사 영화만의 표현으로 구현해낼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시점이다. 딸을 향한 사랑이 태양의 이미지로 맺힌 것처럼. 끝없는 그리움이 광활한 바다와 만난 것처럼. 실사 영화는 바로 이런 순간들 위에서 비로소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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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홍수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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