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은 자기 상태에 대한 미움이나 비난 없어… ‘낙관적 미래’ 만들죠”

박동미 기자 2023. 6. 28. 09:1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에세이 ‘식물적 낙관’ 펴낸 소설가 김금희의 ‘반려식물論’
“나도 함께 자란다는 기분 들어
식물은 반려동물 중엔 ‘고양이’
늘 배울것 있는 ‘선생님’ 같아”
인터뷰 중간에 소나기가 오니
“빗물받아 화분에 줘야 하는데”
지척에 두고 온 화분들 걱정뿐
김금희 작가는 최선을 다해 ‘사는 것’만을 택하는 식물의 상태에서 자기 비난이나 해함 없는 마음의 형태를 배운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서울 중구 문화일보사에서 만난 김 작가가 활짝 웃으며 인사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식물은 자기 상태에 대한 미움이나 비난이 없어요. 그리고 마음은 본래 그런 식물의 형태이지, 지금 나를 옥죄어오는 나쁜 형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소설가 김금희(43)가 신간 에세이 ‘식물적 낙관’(문학동네)을 출간했다. 등단 15년 차에 접어든 김 작가가 두 번째로 펴내는 산문집. ‘사랑 밖의 모든 말들’(2020) 이후 약 3년 만이다. 각별한 그의 ‘식물 사랑’은 유명하다. 전작에서도 글을 쓰지 않을 때 발코니에 나가 식물을 돌보고, 묻혀 있던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 고백하기도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며 발코니는 더 푸르고 풍성해졌다. 매일 70여 개의 화분을 가꾸는 ‘식물 집사’에게도 작지 않은 변화가 있었을 터. 한바탕 여름 소나기가 내린 지난 14일, 김 작가를 서울 중구 문화일보사에서 만났다. 아마도 그가 다다른 지점이 분명한 그것, ‘식물적 낙관’은 무엇일까.

“지금 이곳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엄정한 상태가 식물에게 있어요.” 김 작가는 바로 이것이 역설적으로 식물들의 ‘낙관적 미래’를 만들어낸다고 했다. 그 상태란 “환경에 적응하는 것, 성장할 수 있다면 환희에 차 뿌리를 박차고 오르는 것, 자기 결실에 관한 희비나 낙담이 없는 것”이고, 결국 “삶 이외의 선택지가 없는 것”이다. 김 작가는 “그렇게 식물은 최선을 다해 자기가 놓인 세계와 조응한다”면서 “이런 질서가 있는 내일이라면 낙관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 간명하고 뚜렷한 진리는 불확실한 인간사에 위로를 준다. 그것이 일찌감치 버지니아 울프나 헤르만 헤세, 카렐 차페크 같은 대문호들이 식물을 예찬했고 지금 우리가 ‘반려 식물’의 시대를 사는 이유일 것이다.

70종의 식물 중, 매일 어느 것 하나는 새잎을 내거나 조금씩 자란다. 김 작가는 “늘 나도 함께 자라고 있다는 기분이 된다”고 했다. 또한, ‘자기 해함’이 없는 식물들을 가만히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환기가 일어난다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소설 작업 때마다 호전적이 된다는 그는 이번 책을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하고 자유롭게 썼다”고 했다. 첫 번째 산문집이 ‘작가’ 김금희를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면, 이번에는 ‘생활인’ 김금희의 면모까지 고스란히 담았다는 것. 예컨대 책에는 휴가 가는 김 작가를 대신해 화분에 물을 주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있고, 글을 못 쓰겠다며 축 늘어진 김 작가에게 “새로운 사람이 되려는 것”이라며 격려하는 후배도 등장한다. 또, 야자나무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화원에 갈 때마다 어딘지 조금 덜 자라고 아픈 듯한 ‘아이’들만 데려오는 심성까지 오롯이 담겼다. 따라서 책은 식물 집사의 ‘기쁨과 슬픔’이면서 동시에 식물을 매개로 한 다양한 관계, 또 그것이 빚어낸 다정한 순간들에 대한 기록이 된다. 무엇보다, 모두 “녹록(綠綠)”하길 바라는 진심이 가득하다. “감추어둔 산문 속의 자아가 자기방어를 뚫고 서서히 나오는 것을 느꼈어요. 이제 세 번째 산문집을 쓰면, 그때는 완전한 ‘해방’을 이루지 않을까요.”

김금희 작가가 지난 14일 문화일보사에서 산문집 ‘식물적 낙관’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문호남 기자

김 작가는 말없이 자기 성장을 도모하는 식물의 모습이 반려동물로 치면 ‘고양이’라면서도, 늘 배울 것이 있다는 점에서는 ‘선생님’ 같다고 했다. 그는 “식물에는 생명과 질서의 완전한 형상이 있는 것 같다. 그 근원적인 매력이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것 같다”고 했다. 특히 김 작가는 아파트에서 식물을 기르다 보니 요즘엔 도시 환경을 자주 돌아보게 된다고 했다. “식물이 자라기 어렵다면 인간이 살기에도 좋지 않은 상황이겠죠. 우리가 버리고 폐기한 삶의 방식에 대해서 자꾸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식물을 기르며 습관화된 성찰과 사색은 글쓰기에 영향을 끼쳤다. 최근 연재를 시작한 장편 소설에 창경궁 온실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도 이러한 연유다.

김금희 작가가 지난 14일 문화일보사에서 산문집 ‘식물적 낙관’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문호남 기자

책은 김 작가가 기르는 식물 중 30종에 대한 정보도 실었다. 생김새나 특징 등 기본적인 설명도 있지만, 캐릭터를 가진 소설의 등장 인물인 양 김 작가의 말로 풀어낸 점이 흥미롭다. 예컨대, ‘핑크 고스트’가 햇빛 부족으로 무늬를 잃으면 “자정을 넘겨버린 신데렐라처럼” 슬퍼지고, ‘괭이밥’이 자라는 모습을 “꼬리를 이쪽저쪽으로 저어보는 고양이”라고 묘사하는 식. 그런데 한때 100종까지 서식했다던 김 작가의 발코니도, 군락지를 이룬 작업실도, 어째 책에는 사진 한 장 없다. 대신, 이를 보고 그린 싱그러운 그림이 있다. “다들 SNS 속 예쁜 집의 질서정연한 테라스를 상상하니까요. 현실적으로 그렇게 가꾸기는 어려워요. 그래도 제 눈엔 모두 예쁜 ‘자식’이에요.”

이날 인터뷰 중간에 소나기가 왔다. 김 작가는 “이런 날은 빗물을 받아서 화분에 뿌려 줘야 하는데…”라면서 “얼른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 가고 싶다”며 지척에 두고 온 화분들을 걱정했다. 그러면서 “자꾸 이렇게 되니 점점 긴 여행은 힘들어지고 있다”며 웃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