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억짜리 달궤도 여행·3억 내고 심해탐사… 그들만의 ‘특별한 경험’[Who, What, Why]
5명 숨진 타이탄 심해 잠수정
탑승자 3명 英서 손꼽히던 부호
무중력 체험, 남·북극탐험 등
수억원씩 드는 비용에도 인기
익스트림 관광 시장 6000조원
희소한 경험 원하는 부자들과
연구 자금 필요한 전문기업간
이해관계 맞아떨어지며 급성장
워싱턴=김남석 특파원 namdol@munhwa.com
111년 전 침몰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여객선 타이태닉호의 잔해를 보기 위해 거액을 내고 심해 잠수정에 탑승했던 억만장자들은 끝내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해안경비대는 18일 대서양에서 실종된 잠수정 ‘타이탄’ 탑승자 5명이 모두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존 모거 제1 해안경비대 소장은 “타이태닉호 침몰 지점에서 1600피트(약 488m) 떨어진 곳에서 타이탄 잠수정의 원뿔형 꼬리 덮개를 발견했다”며 “잔해는 선박의 비극적 내파(구조물이 안쪽으로 급속히 붕괴·파괴되는 현상)와 일치한다”고 말했다. 잠수정 운영업체 오션게이트 익스페디션 역시 성명을 내 탑승자 전원 사망을 확인하고 “이들(탑승자들)은 모험 정신과 해양탐사·보호에 깊은 열정을 가진 진정한 탐험가들이었다”고 애도했다.
타이탄 실종 직후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킨 부분은 탑승자 5명 중 스톡턴 러시(61) 오션게이트 익스페디션 CEO, 타이태닉호 탐사전문가 폴 앙리 나졸레(77)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이 모두 손꼽히는 갑부들이라는 점이다. 항공기 중개업체 ‘액션 에이비에이션’ 회장이자 영국 국적 억만장자·탐험가인 해미시 하딩(59)과 파키스탄계 영국 재벌기업 ‘엔그로’의 소유주인 샤자다 다우드(48)와 아들 술레만(19)이 그들이다. 이 때문에 이번 타이태닉호 잔해 탐사를 비롯해 최근 수십 년 사이 전 세계 부호들을 대상으로 급성장해온 ‘익스트림(극한) 관광’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쇼크(충격) 관광’ ‘고위험 관광’으로도 불리는 익스트림 관광은 천문학적 비용을 지급하고 극단적 위험을 무릅쓰거나 일반인 접근이 불가능한 장소를 찾는 특별한 여행을 뜻한다.
◇25만 달러 내고 생명 포기각서까지 쓴 타이태닉 관광=1912년 침몰한 타이태닉호의 잔해를 볼 수 있는 8일간의 타이탄 관광 비용은 1인당 25만 달러(약 3억2560만 원)에 달한다. 타이탄 운용·유지를 위해 전문 인력·기술이 동원되지만 2∼3개월에 1차례 정도 운영되기 때문이다. 대서양 복판 수심 4000m 지점에 가라앉은 타이태닉호를 보기 위해서는 해당 수심까지 내려갈 수 있는 잠수정이 필수인데 이 같은 조건을 갖춘 유인 잠수정은 6.7m 길이에 수용인원이 5명인 타이탄을 비롯해 전 세계 5대뿐이다.
타이태닉호 관광에는 거액을 내야 할 뿐 아니라 목숨까지 걸어야 했다. 타이탄은 국제수역에서 운영돼 특정 국가의 안전규정 적용을 받지 않았다. 지난해 특집 취재를 위해 탑승한 데이비드 포그 CBS 기자는 “모든 승객이 (타이탄이) 규제기관 승인·인증을 받지 않은 실험 선박이며 신체 부상·장애·트라우마·사망에 이를 수 있음을 확인하는 생명 포기각서에 서명한다”고 밝혔다. 모선과 연결된 케이블 등 안전장치를 제대로 갖추지 않아 2018년 오션게이트 해양운영책임자 데이비드 로크리지가 타이탄에 대한 안전 우려를 제기했지만 회사 측은 오히려 기밀유지계약 위반·허위진술 등 혐의로 그를 고소하고 해고했다. 또 오션게이트는 타이탄이 나사(미 항공우주국)·보잉·워싱턴대(UW) 전문가들과 협력해 설계·엔지니어링 됐다고 주장했지만 이번 사고 발생 후 보잉과 UW는 타이탄 설계·제작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타이탄 탑승객 사망 사고 후 이전에 탑승했거나 탑승제안을 거절해 비극을 피한 부호들의 사연도 화제가 됐다. 라스베이거스 억만장자 제이 블룸과 아들 션은 2월 러시 CEO로부터 탑승제안을 받았다. 러시 CEO는 “헬리콥터나 스쿠버 다이빙보다 훨씬 안전하다”며 탑승료도 15만 달러로 낮춰줄 수 있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블룸 부자는 안전 우려와 일정 때문에 결국 거절했고 그 자리가 이번에 숨진 다우드 부자에게 돌아갔다.
◇달 여행·무중력 체험 등 6000조 원 규모 ‘그들만의 관광’=전 세계 부호들을 겨냥한 익스트림 관광 시장은 최근 수십 년간 급성장했다. 누가 더 희소하고 특별한 경험을 했는지를 다른 이들과의 차별화 요인으로 삼는 억만장자들의 심리와 우주·심해·극지·오지 등을 탐사하고 관련 연구를 진행할 자금이 필요했던 전문 기업·연구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익스트림 관광은 바로 우주여행이다. 2001년 미국 억만장자 데니스 티토가 2억 달러를 내고 지구 상공 400㎞에 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ISS)을 다녀와 ‘세계 첫 우주관광객’ 타이틀을 차지한 이후 본격화했다. 현재는 1억 달러면 러시아 소유스 우주선을 타고 달 궤도를 도는 여행을 떠날 수 있고, 2000만 달러를 내면 ISS에 일주일간 체류할 수 있다. 스페이스X도 달 관광 상품을 내놓았고 블루오리진, 버진 갤럭틱은 우주선을 타고 상공 100㎞의 준궤도 영역에서 10분가량 무중력 상태를 체험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비용은 1인당 45만∼50만 달러다.
심해나 극·오지 역시 부호들이 선호하는 여행지다. 이번 사고로 사망한 하딩은 2021년에도 세계에서 가장 깊은 해저로 알려진 마리아나 해구에 다녀왔는데 심해여행 비용은 25만 달러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2억 원 정도 비용이 소요되는 남극 탐험 관광객은 올해 10만 명에 달할 전망이고, 러시아 억만장자 올레그 틴코프는 사우나·마사지룸 등이 갖춰진 호화 쇄빙선으로 북극점에 도달할 수 있는 북극 관광상품을 2년 전 선보이기도 했다. 또 2014년에는 앨런 유스터스 당시 구글 부사장이 헬륨 기구를 타고 41㎞ 높이 성층권에서 초음속 스카이다이빙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 밖에 니카라과 활화산 마사야 등반을 비롯해 페루 마추픽추 스카이다이빙, 잠비아·짐바브웨 빅토리아폭포 ‘악마의 웅덩이’ 수영, 멕시코 해안에서 상어떼와의 수영 등도 자기 과시를 위해 익스트림 관광에 선뜻 거액을 쏟아붓는 부호들을 위한 대표적 관광 상품으로 꼽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익스트림 관광은 여행자들을 지구 끝, 바다의 바닥, 심지어 우주까지 보낸다”며 “시장 규모가 매년 두 자릿수씩 성장해 2032년 6000조 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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