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분의 1’의 과학으로… 초거대 AI 반도체·양자컴퓨터 앞당긴다
실시간 초현실 소통 메타버스
환경오염 해결·우주개척 등
나노기술이 수행할 미래 제시
전문인력 양성·관련 법 정비
다른 과학분야 견인 큰 기대
나노(Nano)는 그리스 신화 속 난쟁이 ‘나노스(Nanos)’에서 유래한 말로, 10억 분의 1 크기의 미소(微小) 물질을 측정할 때 사용하는 단위다. 100만 분의 1을 뜻하는 마이크로(Micro)는 광학현미경으로 볼 수 있는 세균의 크기다. 하지만 나노의 세계는 원자·분자 단위로 최신 전자현미경을 써야만 간신히 관찰된다. 일반인에게는 너무나 작은 세상인 셈이다. 예를 들어 지구를 10억 분의 1로 줄이면 콩 1개 크기로 줄어드는 수준이다.
과학자들은 나노 단위까지 내려가면 물질 표면의 성질이 바뀌거나 색이 변하는 등 여러 신기한 현상을 발견하고 이를 현실 생활에 응용해보려 노력해왔다. 그 결과로 탄생한 ‘나노기술(Nano Technology)’은 이제 반도체·양자컴퓨터 등 정보기술(IT)과 에너지·환경·바이오·우주항공 등 다른 분야의 첨단 과학기술을 받쳐주는 기반 기술로서 점차 자리 잡아가고 있다.
정부도 지난 26일 개최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운영위원회 심의회의에서 ‘나노기술 혁신을 통한 새로운 전환’을 기치로 내걸고 제4기 국가 나노기술지도(2023~2032년)를 확정했다. 이번 나노기술 지도는 오랜 시간과 막대한 투자가 소요되지만 산업 및 사회문제 해결에서 파급력이 매우 높은 딥테크(Deep Technology)로 나노 연구·개발(R&D) 역량을 극대화하려는 점이 특징이다. 국가 나노기술지도는 나노기술개발촉진법에 따라 2008년부터 기술개발 전략의 수립, 연구개발 투자 방향 설정 등을 위해 10년 단위의 장기 로드맵을 다시 5년마다 재수립하고 있는 법정 계획이다. 영역도 나노 소재, 공정·분석·장비, 나노 안전성에서부터 점진적으로 넓어지고 있다. 예컨대, 탄소나노튜브(CNT)는 2000년대 초반 반도체, 디스플레이, 복합소재 등에 적용돼 현재 리튬이온 전지의 전극 도전재로 쓰이고 있다.
우리의 나노기술은 20년 가까운 정부의 집중 투자로 현재 세계 4위 수준까지 올라왔지만, 해외 주요 나노기술 선진국들도 장기 육성 계획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어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미국은 2021년 6차 국가나노기술개발전략(NNI)을 발표하면서 나노기술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투자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국방부·국가과학재단(NSF)이 모여 나노 그랜드챌린지로 차세대 컴퓨팅을 연구하고, 2023년부터는 기후문제 해결을 위한 지구나노(Nano4EARTH)도 운영할 예정이다. 유럽연합(EU)은 핵심지원기술과 산업용 첨단기술 선정 시 나노기술을 반드시 포함시키고, EU 그린딜 정책의 일환으로 지속가능 화학물질 전략에 나노 물질을 넣었다. 중국 역시 중국과학원에서 ‘2050 나노기술발전로드맵’을 발표하고 오는 2030년까지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시킬 것을 천명했다. 일본은 2021년 나노기술·재료 과학기술 연구개발 전략을 공표해 소재기술 투자를 통한 혁신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번에 제시된 한국의 제4기 나노기술지도는 국내외 주요 정책 동향과 빅데이터에 기초한 글로벌 이슈 탐색을 마친 후 전문가 자문을 거쳐 국가 현안 및 미래 선도를 위한 9대 도전적 질문(Big Questions)을 선정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나노기술의 역할을 도출하는 데 중점을 뒀다.
나노기술이 뚫어야 할 9대 난제는 △초거대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실시간 초현실 메타버스 △양자컴퓨터 △탈탄소 신재생에너지 전환 △환경오염 해결 △스마트 농업 △디지털 헬스케어 △우주 개척 △안전한 삶으로 집약됐다. 정부는 단순히 나노기술이 수행해야 할 미래 역할을 제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나노기술 분야의 지원역량 강화와 전문인력 양성, 관련 법·제도 정비 추진 등을 통해 나노 인프라 혁신까지도 큰 그림을 그렸다. 구혁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초원천연구정책관은 “기술패권 경쟁이 가속화되는 시대에 9가지 도전적 질문을 통해 국가 연구개발의 임무를 명확히 하는 전략을 수립하고자 했다”며 “나노기술이 다른 과학 분야의 성과를 견인할 수 있는 기반 기술이자 인프라로서 작용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초고속화 NPU 개발… 고해상도 정보처리 메타버스 구현
■ 해결해야 할 9대 도전
탈탄소 신재생에너지 전환
우주 나노금속 소재 연구
나노기술이 해결해야 할 9대 도전으로 정부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실시간 초현실 메타버스, 양자컴퓨터, 탈탄소 신재생에너지 전환, 환경오염 해결, 스마트 농업, 디지털 헬스케어, 우주개척, 안전한 삶을 제시했다.
가장 주목받는 분야는 역시 신경망처리장치(NPU)로 불리는 새로운 AI 반도체다. 7개월 전 챗GPT 등장 이후 천문학적인 규모의 파라미터(매개변수)로 인류의 과거 지식을 모두 사전 학습시킨 초거대 AI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고 있지만, 현재의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반도체로는 고속화·저전력화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공개 자료에 따르면 GPT-3 학습에 미국 120개 가구의 1년 전기 소모량인 1.287GWh의 전력이 들고, 미국 자동차 110대의 1년간 CO2 배출량인 502t의 이산화탄소가 나온다. 1초에 163조 번 연산이 가능한 GPU 1024개를 써도 GPT-3 언어 모델 학습에 약 1개월이 걸린다. 따라서 초고속화, 저전력, 데이터 저장공간 확충의 도전을 극복해야 하며, 이게 기존 폰노이만 방식의 고전 메모리와 연산장치가 아니라 연산-기억 동시 수행이 가능한 나노 소자가 필요한 이유다.
이에 정부는 2차원 나노 소재를 활용한 메모리 소자 디자인과 연산 아키텍처로 PIM(Process In Memory) 기능을 수행하게 하는 기술 개발에 나선다. 나노 어레이(array)를 통한 인공 시냅스-뉴런 소자도 개발하는데, 이를 활용하면 집적화의 한계에 도달한 고전 반도체보다 더 작은 나노 스케일의 극미세 공정으로 데이터 장기 저장과 읽기·쓰기 무한 반복이 가능해진다.
몰입감과 실시간 동영상 고해상도 정보 처리에 난항을 겪는 메타버스 분야에도 나노기술을 통해 신축과 변형이 자유로운 새로운 디스플레이 혁신이 가능하다. 나노 발광소자로 해상도와 투과율 가변 범위를 향상시키고, 나노 광학렌즈로 색수차 및 광효율을 개선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양자컴퓨터의 큐비트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양자 나노 소재로 결맞음 시간을 늘리고 나노 표면 제어 기술로 계산의 정확도를 향상시키는 것도 풀어야 할 도전 중 하나다. 탈탄소 사회의 실현을 위해 2차전지 소재 개발과 수소 저장 및 바이오 연료 고농도 생산, 이산화탄소 포집 등에도 나노기술을 적용하는 방안이 연구될 전망이다. 이 밖에 식량의 장기간 보존을 위한 나노코팅 기술, 인체 내 정밀 약물 도달을 위한 나노 구조·전달체의 생산, 초내열·열방호를 위한 우주 나노금속 소재 등도 주요 연구 과제다.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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