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웅이 연출한 '문제아 갱생기'…연극 '겟팅아웃'
(서울=연합뉴스) 최주성 기자 = 유명 TV 프로그램에서 말썽을 피우고 폭력적인 행동을 일삼는 아이들은 전문가를 만나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만약 전문가의 손길을 거치는 과정을 생략한 채 아이의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면 갱생을 믿을 시청자는 얼마나 될까.
지난 2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개막한 연극 '겟팅아웃'은 전문가의 도움 없이 다른 사람으로 거듭나는 주인공의 '셀프 갱생기'다. 고선웅 연출이 미국 극작가 마샤 노먼의 1977년작 희곡을 각색했다.
주인공 알리는 다니는 학교마다 반항을 일삼고 쫓겨나길 반복한 문제아다. 특수학교에서도 반항을 계속한 알리는 끝내 살인죄를 저질러 감옥에 갇혔다가 8년 만에 풀려난다.
문제아를 고쳐줄 해결책을 제공하는 인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학교 선생님들은 가능한 한 빨리 알리를 학교에서 내보내려 하고, 교도소에서 알리를 위로해준 신부는 이내 전근을 떠난다.
홀로 복역 생활을 마친 알리는 다른 사람이 돼 세상으로 나온다. 이름을 알린으로 바꾸고 전과 다른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다.
그의 갱생을 믿어주는 사람은 없다. 엄마는 그를 "여전히 성질 더러운 문제아"로 부르고, 교도관 베니와 전 남자친구 칼은 감옥에서의 과거를 잊고 싶은 알린을 찾아와 괴롭힌다.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한 알린은 자신에 대한 편견에 맞서 싸우고 싶은 욕구를 눌러 담는다. 화가 나는 상황에서 '욕을 참지 못했다'며 스스로를 꾸짖기도 한다. 매사에 폭력적으로 반응하던 알리와는 분명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2층으로 구성된 무대에서 현재의 자아인 알린은 1층에서, 예전의 자아인 알리는 2층에서 각각 현재와 과거의 장면을 동시에 제시한다. 알린이 과거를 떠올리면 교도소를 재현한 2층 무대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이경미와 유유진이 각각 연기한 알린과 알리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 인물로 그려진다. 같은 상황에 반응하는 두 인물의 대조가 확연히 드러나는 장면이 흥미롭다.
작품은 주인공이 개심하는 순간에서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달라지겠다는 마음을 지켜내는 과정을 따라간다.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겠다는 알린의 다짐은 주변 인물들에 의해 번번이 무너진다. 알린을 도와주던 베니는 숨겼던 흑심을 드러내고, 칼은 함께 떠날 것을 종용하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집기를 바닥에 던지기 시작한다.
그들에 맞서 참았던 화를 한바탕 쏟아내고 나면 집은 쑥대밭으로 변하고, 알린은 홀로 남은 집에 주저앉아 물건들을 하나씩 치우기 시작한다. 알린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처음부터 다시 쌓아 올린다.
알린은 착한 척을 하는 인물도 아니다. 그는 전과자인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식당 설거지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1주일에 75달러 벌자고 밖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상황을 바꿔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놓지 않는다.
알린의 갱생기를 끈덕지게 쫓아가면 가엾은 모습에 마음이 동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자신의 모습을 바꾸기 위해 수없이 다짐했을 알린을 지켜보며 그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지난 23일 열린 프레스콜에서 고선웅 연출은 "누군가 내 편을 들어줄 때 가장 힘이 난다고들 한다"며 "요즘에는 누군가를 편들어 주는 것을 조심하는 분위기라 작품을 통해 타인에 대한 자비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경미는 누구도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상황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억척스러운 인물을 연기한다. 난장판이 된 집을 보며 눈물과 함께 참았던 분노를 터뜨리는 장면에서는 강한 에너지로 무대를 장악한다.
이경미는 "정신적으로 심적으로 매우 힘들었다"며 "제가 했던 공연 중에서 가장 마음이 힘들었던 공연이지만, 알린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연기했다"고 돌아봤다.
연극은 다음 달 9일까지 계속된다.
cj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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