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취로 만든 K콘텐츠의 미래[오늘을 생각한다]
지난 4월 말 윤석열 대통령이 방미 일정 중 만난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최고콘텐츠책임자는 향후 4년간 한국에 25억달러(약 3조2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대통령실은 이를 외교 성과로 내세웠지만, 이는 2021년부터 크게 늘어난 투자의 연속이지, 갑자기 늘어난 게 아니다. 내세울 만한 외교 성과를 찾는 윤 대통령의 갈망을 넷플릭스 측이 활용했을 뿐이다.
넷플릭스가 사업상의 난관에도 불구하고 한국 콘텐츠 제작에 투자하는 이유는 뭘까? <오징어게임> 등 콘텐츠들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왔기 때문이다. 모두가 행복해졌을까? 그렇지는 않다. 우선 OTT는 흥행 성공으로부터 거둔 수익을 독점한다. 제작사들은 흥행 실패의 책임을 지지 않지만, 성과는 OTT가 독식한다. 제작비에서 스타 배우들에게 편중되는 비용도 막대하다. 소위 ‘A급’으로 분류되는 남자 배우들은 편당 3억~10억원의 출연료를 받고 연기를 한다. 같은 작품을 위해 일하는 다른 노동자들과 비교했을 때 소득 격차가 수백 배까지 나는 셈이다.
이 막대한 소득 격차를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그렇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산업의 좁은 문을 통과하지 못한 대다수 (예비) 노동자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많은 연출자·작가, 스태프들이 생계고를 겪고 있으며, 저렴한 인건비로 콘텐츠 개발에 투입된다. 이 지난한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기예와 인맥, 상당한 행운으로 살아남은 소수만이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있다. 크리에이터의 실력은 부차적 문제다. 10년 이상이 걸릴지도 모르는 좁은 문을 통과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생계비와 가족이라는 버팀목의 유무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스타 캐스팅이 언제나 안정적 수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승자독식의 피라미드 산업구조의 최상층에서 막대한 수익을 독점하는 이들의 미소 뒤에는 착취가 숨겨져 있다. 하지만 이 산업에서 일하는 많은 노동자에게 일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면, 성공한 배우와 제작자들만의 대박이 산업에 좋은 영향을 미칠 리 없다.
최근 유럽에선 ‘시청각미디어 서비스 지침(AVMSD)’을 개정해 막대한 수익을 독점하는 글로벌 OTT에 현지 콘텐츠 제작 30% 쿼터 의무, 미디어 다원주의 보장, 중소 독립제작사 보호, 시청자 보호, 미디어 교육 증진 등 의무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우리에게도 이런 조치가 필요하다. 이는 독립제작사들이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고,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방편이 될 수 있다.
종사자들 자신의 힘도 키워야 한다. 올해 초 문화체육관광부가 발간한 <콘텐츠 산업조사>에 따르면 영화·방송·애니메이션 업계의 종사자는 약 9만명이다. 지상파 방송사 정규직들을 제외한 대부분에게는 자기 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조직이 없다. 최저임금과 스트리밍 재방료를 요구하며 두 달간 파업 중인 할리우드 작가노조와는 판이하다. 이런 풍토에선 극소수만 살아남는 잔혹한 구조가 강화될 뿐이다. 만드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즐거울 수 없다.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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