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트르 대제' 꿈꾸는 푸틴…현실은 옐친?

이대건 2023. 6. 28.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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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이 화가 잔뜩 났다.

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이 총구를 조국 러시아로 돌려 국경 검문소를 넘어선 다음 날인 23일(현지 시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TV를 통해 국민 앞에 섰다.

푸틴의 시점은 레닌이 아닌 러시아 제국의 시각이다.

푸틴은 자신의 목표를 옛 러시아 제국의 부활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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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배신, 배신, 배신!'

푸틴이 화가 잔뜩 났다. 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이 총구를 조국 러시아로 돌려 국경 검문소를 넘어선 다음 날인 23일(현지 시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TV를 통해 국민 앞에 섰다. 바그너 그룹의 반란을 명백한 '배신'으로 규정했다. 연설문 전체에 자주 등장한 단어가 바로 배신이다.

"러시아와 러시아 국민의 등에 칼을 꽂는 행위"

"지금 직면한 것은 바로 배신"

"바그너 부대의 병사와 지휘관이 다른 부대원들과 함께 싸우고 죽어간 대의에 대한 배신"

"결국 패배하고 항복하려는 사람들로부터 배신당했다"

"고의로 배신의 길을 택한 자 형용할 수 없는 강력한 처벌을 받을 것"

이처럼 푸틴이 '배신'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여러 번 천명했지만, 아직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바그너 그룹 수장인 프리고진은 벨라루스로 떠나기로 했지만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반란에 동조한 바그너 용병들은 기소하지 않기로 했으며 반란에 가담하지 않은 용병은 국방부와 정식으로 계약하기로 했다. 24시간 반란이 마무리된 뒤 나온 크렘린궁의 공식 입장이다. 결국 푸틴만 큰 상처를 입게 됐다.

1917년 러시아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레닌
1917년 왜 언급?

푸틴의 연설문에서 또 눈에 띄는 건 1917년에 대한 언급이다. 레닌이 이끈 볼셰비키 혁명이 있었던 해이다. 푸틴은 바그너그룹의 '배신' 행위가 이때를 연상시킨다며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 제국의 1차 세계대전 승리가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도둑맞았다"

푸틴의 시점은 레닌이 아닌 러시아 제국의 시각이다. 1917년 러시아 노동자, 민중이 파업을 벌이고 시위에 나섰는데 당시 병사들이 이를 진압하지 않아 혁명이 발생했다. 러시아 황제의 명을 거부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2월 혁명이고 같은 해 11월 레닌이 이끈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났다. 이는 소련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푸틴은 자신의 목표를 옛 러시아 제국의 부활로 삼고 있다. 표트르 대제에 대한 존경심을 여러 차례 강조하면서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을 계속해서 보였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그곳이 옛 러시아의 땅임을 강조하며 이를 회복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표트르 대제는 황제에 오른 이후에도 자신이 직접 익힌 포술을 시연하는 등 여러 기행을 보인 옛 러시아 제국의 상징적 인물이다.

탱크 위 옐친
소환된 '옐친'

하지만 이번 반란 이후 소환된 건 옛 소련과 러시아 지도자들이다. 첫 번째 지도자는 고르바초프 전 소비에트 연방 대통령. 1991년 여름휴가 중이던 고르바초프는 당시 공산당 보수파들에 의해 별장에 감금됐다. 소련식 사회주의에서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로 전환하려던 그를 실각시키기 위한 직접 행동에 나선 것이다. 이때 반란 세력은 국가비상사태위원회를 결성해 권력을 장악하려 했지만, 이를 저지한 게 바로 두 번째로 소환된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공화국 대통령이다.

권좌로 돌아왔다가 사임한 고르바초프 대신 오른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도 재임 기간 반대파에 의해 전복 시도를 당했다. 1993년 다수당인 러시아연방 공산당 등이 국회의사당을 점거하고 옐친을 탄핵했는데 옐친은 육군 전차를 동원해 의사당 포격까지 가하면서 진압했다. 이후 다시 권좌로 돌아왔지만 1999년 임기를 반년 남겨두고 사임해야 했다. 대통령 직무 대행을 맡은 게 바로 당시 총리였던 푸틴 현 대통령이다.

고르바초프와 옐친 모두 반란을 제압했지만 얼마 가지 못해 스스로 내려와야 했다. 푸틴 또한 이번 24시간 반란을 일단 봉합했지만, 옛 지도자의 길로 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러시아에, 전에 없던 균열이 나타났다"며 "혼란이 몇 주 더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프리고진이 군 수뇌부를 겨냥했을 뿐 권력을 직접 쥐려 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이번 반란으로 러시아 권력 균열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는 판단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푸틴은 표트르 대제를 바라본다. 그리고 옛 러시아 제국의 '영광'을 꿈꾼다. 하지만 이번 반란으로 그에게서 옐친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나 더 닮아갈지 아니면 덜어낼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YTN 이대건 (dgle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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