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통에 방치된 영아 시신…'수의' 못 입혀 결국 [사건의 재구성]

양희문 기자 이상휼 기자 2023. 6. 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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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부모 방치에 참혹하게 숨진 15개월 딸…시신 부패 심해
유족 시신 인수 거부에 관계기관이 장례, 친모 징역 7년6월
ⓒ News1 DB

(경기=뉴스1) 양희문 이상휼 기자 = "부패로 인한 사인불명"

지난해 11월14일 서울 서대문구 한 주택 옥상에 있는 김치통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생후 15개월 여아에 대한 국립과학수연구원의 부검 결과다. 사망한 지 오랜 시간이 흘러 정확한 사인을 밝힐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어린 영혼은 왜 비좁은 김치통에서 쓸쓸한 주검으로 발견됐을까? 아이의 시신을 김치통에 방치한 부모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그들에게 모성애와 부성애는 있었을까? 아니면 다른 사정이 있는 걸까?

◇친모 방치 속에 쓸쓸하게 숨진 15개월 딸

숨진 아이는 친모 서모씨(34)와 친부 최모씨(29)의 딸로, 2018년 10월12일 세상에 나왔다. 한참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갓난아이였지만 그의 부모에게서 자식에 대한 사랑은 찾아볼 수 없었다. 딸이 아파 울어도 엄마 서씨는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국가예방접종도 18회 중 3회만 접종했다.

아빠 최씨가 2019년 8월12일 사기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되면서 딸은 더 뒷전이 됐다. 서씨는 어린 딸을 집에 둔 채 왕복 4~6시간 거리에 있는 교도소로 70회 면회를 갔다. 또 새 남자친구도 사귀면서 알콩달콩 시간을 보냈다. 방치된 딸은 엄마가 없는 빈집에서 홀로 긴 시간을 버텨야 했다.

딸은 점점 아파갔다. 숨지기 일주일 전부터 열이 나고 구토를 했다. 하지만 서씨는 병원에 데려갈 생각이 없었다. 음식을 뱉어내는 딸에게 계속 분유만 먹일 뿐이었다. 결국 딸은 2020년 1월6일 경기 평택시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서씨는 죄책감도, 슬픔도 없는 비정한 인간이었다. 그는 딸의 시신을 한겨울 베란다에 그대로 방치해 놓고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후 범행은 더 대담해져 시신을 이불로 감고 캐리어에 담은 뒤 부천시 친정집 장롱 속에 은닉했다.

최씨도 교도소 출소 직후인 2020년 5월 초 범행에 가담했다. 부부는 딸의 시신을 수건과 비닐 등으로 감싼고 김치통 안에 넣었다. 통에 담긴 시신은 최씨의 삼촌 집과 아버지 집 보일러실을 거쳐 서울 서대문구 자신의 주거지 옥상에 보관했다. 시신은 꽁꽁 싸매져 있어 냄새가 잘 나지 않는 탓에 가족들도 이 사실을 몰랐다.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부부 합산 사기 등 전과 20범…중고거래 사기 일삼아

부부는 딸을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했다. 이들은 딸의 죽음에도 지자체로부터 양육수당을 타왔다. 서씨는 2020년 2월부터 2021년 5월까지 양육수당 330만원을 부정 수급해 생활비로 사용했다. 이후 최씨와 이혼한 서씨는 새 남편의 아이를 갖게 되면서 양육수당을 최씨에게 넘겼다. 최씨도 의도적으로 딸의 사망사실을 숨기고 300만원을 부정 수급했다.

부부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어본 적 없었다. 이들은 중고거래 사기 등을 벌이며 생활비를 벌어왔다. 서씨의 경우 사기죄로 징역형의 집행유예 처벌을 받은 전력이 수차례인 것으로 조사됐다. 최씨는 사기죄로 교도소에 수감되기까지 했다. 수사기관 등에 확인한 결과 부부의 사기전과는 각각 10여건으로, 도합 20여건인 것으로 전해졌다.

◇범행 발각…친모 빠져나갈 궁리만

부부의 범행은 3년 만에 꼬리가 잡혔다. 포천시는 지난해 10월 만 3세 가정양육 아동의 소재와 안전을 위한 전수조사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딸이 영유아 건강검진을 받지 않은 점, 최근 1년간 진료기록이 없는 점, 아이를 보여주지 않는 점 등을 수상히 여겨 같은 달 27일 경찰에 신고했다.

서씨는 경찰 조사에서 "친척집에 키우고 있다" 등 거짓말을 하며 수사에 혼선을 줬다. 경찰은 전국 지자체와 공공기관 304곳을 대상으로 딸이 있는지 파악에 나섰지만 찾지 못했다. 경찰은 단순 사건이 아닌 강력사건으로 판단했고, 최씨를 추궁한 끝에 자백을 받아냈다.

결국 서씨는 아동복지법 위반, 사체은닉,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법의 판단을 받게 됐다. 최씨도 사체은닉과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습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법정에 선 서씨는 딸을 학대한 적 없다며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이상적인 양육환경을 제공하지 못한 측면은 있으나 딸을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방치하며 유기한 사실이 없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 News1 DB

1심을 맡은 의정부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조영기는) 지난 15일 서씨에게 징역 7년6월을, 최씨에게 징역 2년4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서씨는 피해자의 건강 악화 신호가 명백했는데 무시하고 병원에 데려가지 않거나 잦은 외출 등으로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며 "아동학대치사 혐의도 부인하고 있는데 진지하게 반성하는지 의심된다. 다만 피해자를 폭행하는 등의 직접적 학대행위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최씨에 대해선 "배우자와 함께 피해자 사망사실을 은폐하고 시신은닉에 장기간 가담했다. 죄질이 불량하다"며 "다만 서씨가 먼저 시작해 주도한 범행을 이어서 한 점, 죄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대도를 참작했다"고 판시했다.

서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장을 제출한 상태다. 서씨에게 징역 13년을 구형한 검찰도 "친모가 전혀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해 중한 형이 선고돼야 한다"며 항소장을 냈다. 2심은 서울고법에서 열릴 예정이다.

◇방치 여아의 쓸쓸한 장례식

어린 영혼은 마지막 가는 길까지 쓸쓸했다. 지난 1월20일 김치통에 방치됐던 여아의 장례가 관계 기관의 도움으로 치러졌다. 숨진 영아의 친부모는 모두 구속됐고, 유족들도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시신 인수를 거절하자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가 나선 것이다.

대아협은 한 병원 장례식장에서 장례식을 진행했다. 유족 대신 대아엽 관계자 5명이 빈소를 지켰다. 시신은 오랜 기간 방치된 탓에 수의를 입히기 어려울 만큼 부패된 상태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병원 관계자가 분홍색 꼬까옷을 사서 관안에 놓아줬다고 한다. 유골은 강원 철원의 한 수목원에 안치됐다.

yhm9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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