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만만하다" 솜방망이 처벌에…"몇년만 버티자" 한탕주의[긴급진단下]

강은성 기자 박승희 기자 2023. 6. 2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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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탕 해먹고 걸려도 몇년 살면 그만"…범죄이익 환수도 어려워
내부통제는 약하지 않지만…처벌은 선진국 비해 '유치원 수준'

[편집자주] 유튜버도, 불법 리딩방도, 전문가를 사칭한 사기꾼도 아니다. 현직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미리 주식을 사 놓고 해당 종목을 추천해 주가가 오르면 이를 팔아 차익을 남기는 불법행위를 저질렀다. 처음도 아니다. 지난 2021년 현직 애널리스트의 선행매매 혐의 구속수감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사건이 재발했다. 증권사들의 임직원 내부통제가 허술한 것일까. 당국의 감독이 구멍난 것일까. 처벌이 한심한 것일까. <뉴스1>이 긴급 진단했다.

ⓒ News1 DB

(서울=뉴스1) 강은성 박승희 기자 = 지난 2021년에 이어 2년만에 또다시 현직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선행매매 혐의로 검찰에 기소되면서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증권사의 내부통제는 더욱 강화되고 당국의 감시 수준도 높아졌지만 애널리스트의 불법 행위가 반복되는 이유에 대해 업계와 전문가들은 '솜방망이 처벌'이 사태의 또 다른 원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미국 등 해외 선진시장의 경우 자본시장 불공정행위가 적발됐을 때 형사처벌과 함께 막대한 과징금이 부과되기 때문에 범죄 억제력이 크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형사처벌을 내릴때 적용하는 엄격한 '혐의 입증'과정에서 혐의가 상당부분 경감돼 집행유예나 단기 징역형에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때문에 '한탕 크게 해먹고 재수 없어서 걸려도 몇년 몸으로 때우면 남는 장사'라는 인식마저 범죄집단에 퍼지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형사처벌만으로는 자본시장 불공정행위를 억제하기가 쉽지 않고 부당이익 환수와 과징금 부과 등 경제 제재를 크게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자본시장 경제사범 100명중 실형은 26명뿐…2/3는 그냥 풀려나

28일 금융당국과 업계 전문가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제사범에 대한 처벌은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지난 2021년 동일한 혐의로 적발된 하나증권(구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와 DS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자본시장의 신뢰를 크게 해치는 증권사 현직 임직원의 불법행위라는 점에도 불구하고 각각 징역 3년과 1년6개월을 언도받는 데 그쳤다.

법이 약한 것은 아니다. 자본시장법은 미공개정보이용, 시세조종, 부정거래 등 3대 불공정거래 행위에 징역형의 형사처벌을 규정하고 있다. 불법행위 범죄수익 규모에 따라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이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 50억원 이상이면 최대 무기징역에 처한다.

하지만 형사처벌 특성상 입증 책임이 엄격해 검찰의 기소율 자체가 현저히 낮고, 기소하더라도 높은 형량을 받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당국이 수사기관에 고발·통보한 불공정거래 행위 중 불기소율은 55.8%에 달한다. 절반 이상이 기소조차 되지 않고 그냥 풀려난 것이다.

범죄 혐의가 뚜렷해 기소가 되고 재판에 넘겨진다 하더라도 최종 대법원 심리까지 마쳤을때 집행유예로 그치는 경우가 40.6%에 달했다.

즉 주가조작, 시세조종, 미공개정보이용과 같은 중대 범죄 혐의자 100명을 금융당국이 적발해도 그중 56명이 수사조차 받지 않고 그냥 풀려나며, 18명은 집행유예로 또 다시 풀려나며, 실제 징역형의 처벌을 받는 사람은 처음 100명중 26명에 그치는 것이다.

그나마도 금융당국의 조사와 검경의 수사기간까지 합치면 빨라도 2~3년은 걸려, 범죄자가 수사받는 사이 범죄수익을 모두 빼돌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처벌이 약하다보니 재범률도 높다. 금융위 증권선물위원회 조치 기준에 따르면 3대 불공정거래 사건 전력자는 2021년 99명 중 21명에 달해 재범률이 21.2%에 이른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에 대해 "자본시장 범죄자들이 막대한 돈을 갈취하고, 설령 처벌을 받아도 그 형량이 너무 약해 '몇년만 버티자'는 식의 한탕주의가 만연해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미국은 폰지사기범에 징역 150년 언도…연간 과징금만 1조원 달해

반면 미국은 자본시장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이 우리나라보다 수십~수백배 강력하다. 실제 미국 나스닥 증권거래소 위원장을 역임한 버나드 메이도프가 자신의 지위를 악용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주식 폰지 사기를 저지른 사실이 적발되자 미국 사법부는 그에게 징역 150년형을 언도했다.

현직 증권맨이 범죄를 저질러도 징역 3년에 그치는 우리나라 현실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단순히 형벌만 센 것이 아니라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해 부당이득의 환수(Disgorgement) 및 민사제재금(civil monetary penalties)을 부과하는 것이 결정적 차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우리나라의 경우 증권선물위원회)는 행정조치로 민사제재금을 부과할 수 있는데 2019년 기준 최대 94만7140달러(12억3200만원 상당)에 달한다. 특히 SEC는 물가상승률을 고려해 벌금 상한선을 높이고 있기 때문에 현 수준의 민사제재금은 100만달러를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원칙에 따라 지난 2019년 SEC가 불공정거래행위 위반자에게 환수한 부당이득은 32억4800만달러(4조2192억원 규모), 부과된 민사제재금은 11억100만달러(1조4302억원 규모)에 달하며 이는 전년대비 약 10% 증가한 수치다.

신경희 자본시장연구원은 보고서에서 "미국과 일본의 경우 민사제재금 또는 과징금의 부과 건수와 금액이 증가하는 추세"라며 "불공정거래행위가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범죄라는 점을 감안하면 금전적 제재인 과징금이 가장 효율적이고 강력한 제재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역시 "범죄 억제력을 고려해서라도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처벌과 범죄이익 환수 및 경제 제재가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융당국, 과징금 강화 정책 내놨지만…국회는 시큰둥

금융위는 3대 불공정거래로 적발될 경우 부당이득금액의 최대 2배에 달하는 과징금을 신설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현행법상 '부당이득액 산정기준'이 따로 없어 부당이득액이 정확히 산정되지 않았던 관행도 법률에 명시해 개선하기로 했다.

하지만 해당 법률은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특히 법사위는 '입증책임 전환'에 대해 법원행정처가 '위헌소지가 있다'며 반대 의견을 밝혔고 부당이득 환수에 대해서도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비례나 형평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여당인 김도읍 법사위원장 역시 "과징금 상한액 기준이 모호하며 근거가 불충분하다"면서 "전체회의보다는 법안심사소위에서 논의가 필요하다"고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이에 금융당국은 법원행정처 권고 등을 반영한 수정안을 신속히 마련하고 법사위 법안소위에서 법률 개정의 필요성을 중점 피력한다는 방침이지만 법 개정이 순탄치는 않을 전망이다.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esth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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