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돈 주고 개성사는 MZ”…니치향수 품는 글로벌 기업들
프랑스 케링그룹, 블랙록으로부터 크리드 인수
에스티로더와 스페인 푸이그도 니치 브랜드 품어
"스몰 럭셔리가 나중에 큰 소비 이끈다" 분석도
[이데일리 김연지 기자] ‘원료 한 방울에 감성 한가득’
인수·합병(M&A)으로 사세를 확장하는 글로벌 뷰티 기업들이 최근 눈독을 들이는 ‘니치 향수’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위와 같을 것이다. 틈새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니키아’에 어원을 두는 니치 향수는 소수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프리미엄 향수를 일컫는다. 경기 불황 속에서도 글로벌 MZ 세대가 지갑을 열고 있는 몇 안 되는 소비 품목이기도 하다.
나만의 개성(個性)을 표출하는 것에 대한 MZ 세대 움직임이 커지면서 글로벌 기업들이 니치 향수 브랜드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니치 향수가 매출 성장에 있어 효자 노릇이 톡톡히 하는데다가 대표적인 스몰 럭셔리(Small Luxury·명품 자동차와 의류, 가방 등을 구매하는 대신 식료품과 화장품 등 비교적 작은 제품에서 사치를 부리는 것) 제품군으로써 젊은 세대가 거리낌 없이 규모 있는 명품 시장에 입문할 수 있도록 돕는 매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2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프랑스 케링그룹은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 등으로부터 명품 향수 업체 크리드를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인수가를 비롯한 세부적인 거래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외신들은 케링그룹이 크리드 지분 100%를 약 2조원 안팎에 인수하며, 거래는 올 하반기 완료될 것으로 전망했다.
케링그룹은 구찌와 생로랑, 발렌시아가, 알렉산더맥퀸, 부쉐론 등 명품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는 프랑스 명품그룹으로, 뷰티 사업 확장 차원에서 지난 2월 별도의 뷰티 법인을 설립하고 라파엘라 코나지아 에스티로더 전 임원을 영입했다. 이후 케링그룹은 향수 매출 비중이 높은 톰포드 인수전에 나서는 등 니치 향수를 중심으로 뷰티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데 공을 들여왔다.
니치 향수 브랜드 인수에 적극적인 곳은 케링그룹 뿐이 아니다. 조말론과 프레데릭 말 등 니치 향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에스티로더는 지난해 말 약 3조6900억원에 톰포드를 인수하며 포트폴리오를 확대했다. 톰포드는 뷰티 중에서도 특히 향수 매출 비중이 높은 브랜드다.
이 밖에 펜할리곤스를 소유한 스페인 푸이그는 지난해 스웨덴 기반의 니치향수 브랜드 ‘바이레도’의 주요 지분을 인수했다. 바이레도는 남녀 구분 없는 ‘젠더리스’ 컨셉을 내세운 브랜드로, 독특한 향과 스토리로 인기를 얻었다.
“스몰 럭셔리가 큰 소비를”…잠재 고객 확보 매개
글로벌 기업들은 스몰 럭셔리 제품군 중에서도 니치 향수가 △불경기에도 상당한 수익을 창출하는 상품이고 △잠재적인 럭셔리 소비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매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해왔다.
우선 향수는 아무리 비싼 재료를 쓰더라도 원재료값만 놓고 보면 마진이 많이 남는 장사다. 여기에 니치 향수로 정체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면서 시장성까지 뒷받침해주는 모습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세계 프레스티지 향수 시장 규모는 2021년부터 연평균 8%대의 성장세를 보이며 2025년에는 182억달러(약 24조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실제 일찍이 니치 향수 브랜드를 인수한 케링그룹의 주요 경쟁사들은 불경기 속 실적 선방에 함박웃음을 지어왔다. 우선 스페인 푸이그는 지난해 40억달러의 연간 순수익이 났다며 “향수 품목이 실적 성장을 견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2021년 대비 40% 증가한 수준이다. 니치 향수 브랜드 불리와 아쿠아디파르마를 소유한 LVMH 또한 지난해 향수 품목 매출 성장세가 두드러졌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밖에 MZ 세대가 명품시장에 입문하기에 향수만큼 접근성이 좋은 매개가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의류와 가방, 자동차 등 명품 가격이 일제히 큰 폭으로 상승하는 가운데 니치 향수가 명품시장 진입을 위한 관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니치 향수는 MZ 세대의 소비 트렌드를 잘 반영하는 대표적인 스몰 럭셔리”라며 “명품 시장의 잠재적 고객 확보 차원에서도 니치 향수는 뷰티 브랜드라면 공략해야 할 제품군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연지 (ginsbur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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