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밥상] 고기 귀했던 시절 묵 듬뿍…속 든든하니 만사태평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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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익숙하게 먹던 음식은 오히려 먹게 된 유래, 이름의 뜻을 설명하지 못할 때가 많다.
경북 예천과 그 인근 지역 토박이들에게 태평추란 음식이 그렇다.
고기가 귀하던 시절 적은 양의 돼지고기를 잘게 썰고 양을 늘리고자 묵을 듬뿍 넣어 자글자글 끓여 먹던 음식, 태평추.
탕평채는 녹두묵에 고기볶음·미나리·김 등을 섞어 만든 묵무침으로 조선시대 영조 때 여러 당파가 잘 협력하자는 탕평책을 논하는 자리에서 처음 등장한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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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음식 탕평채의 서민 버전
잘게 썬 돼지고기에 도토리묵
새콤한 묵은지 넣고 자글자글
청양초 양념 넣어 얼큰한 국물
탱글탱글한 묵과 함께 후루룩
집밥 메뉴이자 안주로도 인기
“이름부터가 ‘태평추’잖아요. 그냥 태평하게 앉아서 술 한잔 걸칠 때 간단하게 후루룩 먹을 수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 아니겠어요?”
어렸을 때부터 익숙하게 먹던 음식은 오히려 먹게 된 유래, 이름의 뜻을 설명하지 못할 때가 많다. 경북 예천과 그 인근 지역 토박이들에게 태평추란 음식이 그렇다. 고기가 귀하던 시절 적은 양의 돼지고기를 잘게 썰고 양을 늘리고자 묵을 듬뿍 넣어 자글자글 끓여 먹던 음식, 태평추. 입맛 없을 때, 늦은 밤 소주 한잔 걸칠 때 곁들여 먹던 추억이 담긴 음식이다.
태평추는 지난해 발간된 ‘예천 향토음식 채록집’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돼지고기·묵은지·도토리묵에 고춧가루·간장·파·마늘을 넣고 자박하게 끓여 만드는데 두루치기와 비슷하다고 해서 ‘묵 두루치기’라고도 부른다. 마지막에 달걀지단과 고소한 김 가루를 뿌려 완성한다. 초여름까진 미나리를 푸짐하게 올리고 겨울이 되면 메밀묵을 직접 쑤어 넣는 등 제철 재료를 최대한 활용하는 집밥 메뉴다.
전문가들은 태평추가 궁중음식인 탕평채에서 비롯된 음식이라고 설명한다. 탕평채는 녹두묵에 고기볶음·미나리·김 등을 섞어 만든 묵무침으로 조선시대 영조 때 여러 당파가 잘 협력하자는 탕평책을 논하는 자리에서 처음 등장한 음식이다. 탕평채 요리법은 서민들 사이에서 조금씩 바뀌며 뜨끈한 국물과 묵은지의 매콤새콤한 맛이 더해진 형태로 자리 잡게 됐다.
예천읍 노하리 ‘동성분식’은 30여년 역사를 가진 노포다. 식당을 운영하는 노영대(76)·신말순씨(74) 부부는 오랜 세월 같은 자리에서 단골손님을 맞이한다.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부터 보던 단골들이 벌써 손자·손녀를 자랑하는 나이가 됐다. 노씨는 일주일에 두세번씩 오던 단골 발길이 뜸해지면 문득 걱정되는 마음에 먼저 연락해 안부를 묻기도 한다. 긴 시간을 함께해 이젠 모두가 가족같이 느껴진다.
과거엔 태평추 인기가 대단했다. 점심시간만 되면 식당에 앉을 자리가 없는 것은 당연지사. 늦은 저녁 시간엔 근처 경찰서 등에서 밤참으로 배달 주문까지 들어왔다. 노씨는 “냄비째 보자기에 둘둘 싸서 보내면 금세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우고 바닥 보이는 그릇만 돌려보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밥에 곁들여 먹으면 든든하고, 맵고 짜니까 술안주로도 손색없다”고 덧붙였다.
태평추는 불로 끓이면서 먹는 게 제맛이다. 숟가락 위에 묵·김치·고기를 한꺼번에 올려 먹으면 얼핏 김치찌개 같기도 하고 뜨거운 묵사발 같기도 하다. 탱글탱글 씹히는 묵 덕분에 식감이 재밌다. 흰밥 위에 한 국자 크게 퍼서 올리고 쓱쓱 비벼본다. 맛있게 먹는 방법은 청양초 양념을 추가해 먹는 것. 씨를 빼고 곱게 다진 청양초를 양파와 함께 달달 볶다가 물을 조금 넣고 졸여 만든 양념이다. 태평추 국물과 잘 어울리고 매운맛이 혀끝을 알싸하게 자극해 매력적이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집밥’을 찾는 이에게 이만한 음식이 없다. 반찬으로 나오는 고추·방풍나물은 모두 주인장이 텃밭에서 직접 재배해 수확한 것. 직접 띄운 된장에 손수 만든 간장까지 손길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어린 시절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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