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대한민국이여, 노래하라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앞으로 한국의 성악가들이 세계 성악계를 이끌어갈 것이다." 세계적인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가 10년 전쯤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올해 성악부문도 한국인 성악가가 우승했으니 이런 시원한 기쁨의 소식을 들을 때면 무더위도 잠시 잊는 것 같습니다.
김태한은 오히려 한국인들끼리 겨루는 국내 콩쿠르에서 1등 하기가 더 힘들다고 했는데, 예전에 올림픽 양궁경기에서 금·은·동메달을 놓고 한국선수들끼리 겨루는 것처럼 이제는 한국 1등이 세계 1등이 되는 세상이 됐습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국의 성악가들이 세계 성악계를 이끌어갈 것이다.” 세계적인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가 10년 전쯤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4일 벨기에 브뤼셀 보자르에서 열린 세계적인 클래식 경연대회 중 하나인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한국인 성악가 바리톤 김태한이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매년 바이올린·피아노·첼로·성악 순서로 개최되는데 지난해에는 최하영이 한국인 최초로 첼로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올해 성악부문도 한국인 성악가가 우승했으니 이런 시원한 기쁨의 소식을 들을 때면 무더위도 잠시 잊는 것 같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우승을 한 23세 김태한은 외국에서 유학한 적이 없는 순수 국내파 성악가라는 것입니다. 클래식은 서양 음악이기에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 그리고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면 완성도 있는 음악적 표현이 나오기 힘듭니다. 우리나라의 국악을 외국인들이 능숙히 해내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제는 외국인 학생들이 한국으로 유학을 와야 할 판이니, 대한민국의 음악교육 수준이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알 수 있지요. 김태한은 오히려 한국인들끼리 겨루는 국내 콩쿠르에서 1등 하기가 더 힘들다고 했는데, 예전에 올림픽 양궁경기에서 금·은·동메달을 놓고 한국선수들끼리 겨루는 것처럼 이제는 한국 1등이 세계 1등이 되는 세상이 됐습니다.
저와 함께 이탈리아 로마에서 유학하다가 세계적인 대가 선생님께 발탁돼 밀라노로 갔었던 유명 성악가를 며칠 전 만났습니다. 그는 다수의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지금은 유럽의 극장에서 10년 넘게 오페라 주역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데, 여름휴가를 보내러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식사를 하다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한국인으로서 정말 자랑스럽고 대단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는데, 그가 굉장히 의미 있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본인은 그 나이 때 너무 긴장한 나머지 그렇게 담대하게 무대에 서지 못했는데, 우승자 김태한의 무대가 너무 세련됐다는 것입니다. 노래 실력은 말할 것도 없이 훌륭하고, 입장할 때부터 노래를 부르고 나갈 때까지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서 자신보다 이미 몇년을 앞서나가는 것 같다며 그를 부러워했습니다.
‘세련되다’라는 것은 서투르거나 어색한 데가 없이 잘 다듬어져 있거나 말쑥하고 품위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이를 수 있는 경지가 아니지요. 땀과 눈물로 채워진 수만번의 연습이 눈빛과 표정, 자세와 행동에서 ‘노래’가 돼 나옵니다. 아니나 다를까 김태한은 인터뷰에서 “큰 무대지만 하나도 떨리지 않았습니다”라고 놀라운 이야기를 했습니다. 무대에 서는 목표가 ‘즐기는 것’이기 때문에 부담은 전혀 없었다는 겁니다.
연습실에서는 최고지만 막상 실전에서는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무대를 떠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모든 우승자에게는 세상을 집어삼킬 듯한 열정과 세련된 여유로움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음악뿐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농업 등 모든 면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진정한 우승자들이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되 무대를 즐겨야 할 때입니다. 대한민국이여, 노래하라!
이기연 이기연오페라연구소 대표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