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국가는 모두 비슷하다[광화문]
발전하는 국가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국가발전을 이루지만 그렇지 못한 국가는 모두 비슷하다.
불행한 국가의 공통점은 관료가 부패하고 무능하다는 것이다. 국가 발전은 민간이 성취하는 것이지만 그 발전의 상한은 관료에 의해 결정된다. 관료가 청렴하고 유능하지 않으면 민간은 의욕을 잃는다.
현대의 저개발 국가들을 사례로 들 필요도 없이 조선 말 대한제국 시기 우리의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다. 영국 태생 지리학자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동아시아국가들을 둘러본 뒤 중국 몽골 일본인보다 더 키 크고 잘생긴 조선인들이 왜 그렇게 게으른지 의아했다. 그는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들의 활기찬 모습을 보고 조선이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부패하고 무능한 관료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매관매직이 극심하던 시기, 양반과 관리들에게 수탈당하는 게 일상인 백성들은 게으름이 최고의 방어막이었다.
외부효과와 불확실성에 따른 시장의 실패를 예상하고 대비책을 세운 뒤 차질 없이 집행해 자원이 효율적으로 쓰이게 하는 게 정부와 관료의 역할이다. 정부의 개입이 오히려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정부실패'는 정부의 규모 때문이 아니라 인적 구성원의 무능과 부패 때문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국가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게 하려면 정부에 유능한 인재들이 유입되고 그들이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우리의 상황을 보자면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5급 7급 9급 등 고하를 가리지 않고 고시 경쟁률은 하락을 지속하고 있다. 변호사시험 1등이 로펌을 택하고 중앙부처 초급 사무관과 저연차 검사들이 민간으로 이직하는 사례도 '개가 사람을 무는' 일처럼 흔한 풍경이 됐다.
직장인 커뮤니티에는 '9급 공무원인데 결혼할 수 있을까'라는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올 정도로 하급 공무원들의 사기는 극도로 저하돼 있다. 사회복지직 등 감정노동을 하는 직렬의 공무원들에게 확산하고 있는 대인기피와 공황장애는 심각한 수준이다.
관료나 공무원이라는 어휘에서부터 느껴지는 보수적이고 경직된 문화가 MZ세대와 맞지 않아서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민간 부문에 보상이 많아 그쪽으로 더 큰 중력이 작용하는 게 더 큰 이유다. 전체 사회의 생산성 향상 속도에 비례해 공무원의 처우가 나아지지 못한 것이다. 연금 개혁으로 미래 기대 소득 면에서도 장점이 사라졌다.
보상은 적지만 책임은 무한한 게 공직이다. 인천 층간소음 흉기 난동 사건이나 이태원 참사 등에서처럼 공무 과정에서 적절하지 못하게 대응할 경우 최악의 경우 파면이라는 징계를 받고 구속돼 재판을 받는다. 최근 머니투데이 기자들이 2030 청년층 면직공무원, 현직공무원, 취업준비생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이들은 공무원에 대한 생각으로 공통으로 '월급이 적다', '사회적 인정이 부족하다' '업무강도가 세다' 등 부정적인 면을 가장 많이 언급했다. 불행한 공무원에게 서비스를 받는 국민이 행복할 리 만무하다. 보상 없이 소명의식을 강요할 수 없다.
공직사회의 위기를 지적하는 기사에는 항상 '공무원 되라고 누가 칼 들고 협박이라도 했나(누칼협)'라는 냉소적인 반응이 뒤따른다. 공무원은 자발적으로 선택한 직업이며, 공무원이 그만둘 경우 그 자리를 채울 사람이 줄을 섰다는 것이다. 사회의 문제를 이처럼 개별 구성원의 문제로 축소해서는 제대로 된 해결책을 도출할 수 없다. 나는 유능하고 청렴한 관료가 그렇지 못한 이들로 대체되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해가는 상황을 걱정한다.
인력 수급과 질에 이상 신호가 잡히면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정부가 무능하고 부패한 관료로 채워졌을 때, 우리 사회가 불과 백몇십년 전 비숍 여사가 목격했던 디스토피아로 돌아가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양영권 사회부장 indepe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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