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리포트] "AI가 알아서 화질 고쳐줘" 독보적 영상 개선 기술 개발한 윤준호 포바이포 대표
고교 시절 영화 감독해 수상...'추격자' '옥자' 등 수십 편 영화 작업에 참여
아무리 영상을 잘 만들어도 화질이 떨어지면 외면받는다. 그래서 요즘 할리우드 영화나 방송사들은 물론이고 유튜브 제작자들도 화질 개선에 심혈을 기울인다. 이 때문에 주목받는 신생기업(스타트업)이 있다.
윤준호(40) 대표가 2017년 창업한 포바이포는 인공지능(AI)이 알아서 화질을 개선해 주는 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받았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등 많은 영상물이 이 업체를 거쳐 고화질로 거듭났다. 화질 개선 기술 외에 영상물까지 직접 만들고 이를 토대로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온라인 영상물 장터까지 개설했다.
덕분에 유명 가수 박진영과 그의 연예기획사 JYP 등이 투자를 했고 지난해 4월 코스닥에 상장까지 했다. 증시 상장을 스타트업의 시작이라고 보는 윤 대표를 서울 신논현동 포바이포 사무실에서 만나 그가 그리는 영상 산업의 미래를 들어 봤다.
고교 때 영화 만들어 상 받은 할리우드 키드
원래 윤 대표는 영화감독이 꿈이었다. 그는 고교 2학년 때 직접 각본을 쓰고 감독한 단편 영화 '화장실 청소'로 대한민국 영상대전에서 청소년 부문상을 받았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고교 시절부터 영화 제작자들을 알게 돼 영화 작업에 참여했다. "'추격자', '더 게임' 등 창업 전까지 수십 편 영화에서 화질을 다듬는 후반 작업을 했죠."
그가 후반 작업에 참여한 이유는 화질에 대한 남다른 관심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영화를 보면 화질에 관심이 많았어요. 왜 미국과 한국에서 찍은 영화는 색깔이 다른지 늘 궁금했죠. 나중에 영화 제작에 참여하면서 조명과 색온도 등이 달라 그렇다는 것을 알았어요. 이를 후반 작업으로 통칭하는 디지털 인터미디어트(DI) 기술을 통해 개선할 수 있죠."
경험을 살려 서울예대에 진학해 디지털아트를 전공하며 컴퓨터를 이용해 영상을 만드는 것을 배웠다. 대학 졸업 후 2009년 CJ파워캐스트에 취직해 2014년까지 아트&테크 슈퍼바이저로 일하며 화질 개선 일을 맡았다. 이후 영화의 특수효과를 담당하는 포스트크리에이티브파티의 미디어 개발실장으로 이직했다. "3년 동안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와 '옥자', 박훈정 감독의 '대호' 등 많은 영화에서 화질 개선 기술을 접목한 컴퓨터그래픽 작업을 했어요."
그렇게 8년간 영상 경험을 쌓고 나서 포스트크리에이티브파티에서 만난 동료들과 2017년 지금의 회사를 창업했다. "예쁘고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일에 집중하는 다른 회사들과 달리 밝고 선명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어요. 화질이 선명해지면 영상이 생명을 얻는 느낌이 들어요. 그러면서 상품성도 높아지죠. 그런 기술을 보여주는 회사를 하고 싶어요."
그래서 윤 대표는 스스로 "몰입감을 만드는 회사"라고 소개했다. 화질이 좋을수록 영상에 더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화질 개선, 영상 제작, 영상 장터 등 3가지 사업 진행
이 업체는 화질 개선, 영상 제작, 온라인 영상 장터 등 크게 3가지 사업을 한다. 화질 개선 기술은 독자 개발한 AI로 영상에서 잡티(노이즈)를 제거해 선명도를 살리고 명암비와 채도를 높여 선명한 영상을 만든다. "수많은 영상 데이터로 AI를 학습시켜 화질을 개선하는 '픽셀' 기술을 개발했어요. 관련해서 국제학회에 논문도 발표하고 11개 국내외 특허를 출원했죠."
AI가 화질을 개선한 영상을 사람이 다시 검수한 뒤 갤럽 등에 의뢰해 일반인 평가를 거친다. 평가 결과로 다시 AI를 학습시키는 과정을 반복한다. 윤 대표는 이렇게 쌓인 데이터를 경쟁력의 비결로 꼽았다. "이런 작업을 거치며 내부에 수많은 데이터가 쌓였어요. 이 자료들이 우리가 가진 황금이죠."
영상 제작은 대형 화면에 내보내는 독특한 영상을 만든다.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 설치된 150m 길이 대형 화면에 나오는 한국의 미 초고화질 영상이 이 업체 작품이다. "창업하고 1년 지나 대형 화면 위주의 실감 콘텐츠 바람이 불었어요. 그래서 옥외광고 영상과 테마파크의 놀이기구용 영상 등 독특한 영상을 만들었죠."
2020년 시작한 국내 유일의 온라인 영상 장터 '키컷스톡'도 독특한 사업이다. 이곳에서는 10초 이내의 짧은 고화질 영상을 누구나 사고팔 수 있다. "약 150만 개 짧은 고화질 영상을 모아 놓았어요. 직접 촬영한 것도 있고 다른 영상 제작자들이 찍은 영상도 있어요. 저화질 영상도 고화질로 바꿔 이곳에 올려놓으면 사고팔 수 있죠."
윤 대표가 꿈꾸는 것은 완벽한 디지털 영화다. "짧은 디지털 영상을 모아 붙여 한 편의 영화를 만들 수 있어요. 배우는 컴퓨터와 AI로 만든 가상 인간이 대신할 수 있죠."
10초 분량의 영상 가격은 4K 초고화질이 30만~50만 원, 8K 극초고화질의 경우 약 180만 원이다. "10초 분량의 뉴욕 야경을 8K로 찍으면 왕복 항공료만 180만 원 이상 들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결코 비싼 가격이 아니죠."
"M&A는 계속된다" 3개사 인수
윤 대표는 프로게임단도 인수했다. 지난 4월 국내 다중채널네트워크(MCN) 업체 샌드박스네트워크의 자회사 SBXG를 인수하며 프로게임 사업에 뛰어들었다. SBXG는 온라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를 전문으로 하는 프로게임단이다. "게임은 몰입감이 압도적인 콘텐츠죠. 영화는 매일 몇 편씩 보기 힘들지만 게임은 하루 몇 시간씩 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만큼 팬이 많죠. 게임단을 이용해 게임방송과 영상 등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인수했어요. 이를 통해 우리의 뛰어난 영상 기술을 세상에 알릴 수 있죠."
이처럼 그는 기존 사업과 연계할 수 있다면 적극 인수합병(M&A)할 생각이다. "지난해부터 영화와 드라마용 시각효과를 만드는 매드픽쳐스, 풍경 등 실외 콘텐츠를 만드는 포알액스와 SBXG 등 3개사를 인수했어요. 다양한 분야를 바라보고 확장 전략을 펼칠 예정이어서 M&A는 계속해야죠."
이런 점을 눈여겨본 업체들이 지금까지 270억 원을 투자했다. 가수 박진영과 그의 회사 JYP엔터테인먼트를 비롯해 롯데홈쇼핑, 펄어비스캐피탈 등이 투자자로 참여했다. "JYP는 비대면 콘서트에 비대면 콘서트를 촬영해 초고화질로 개선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죠."
실적 개선이 관건
관건은 실적 개선이다. 공시자료에 따르면 이 업체는 2021년 매출 220억 원, 영업이익 40억 원이었으나 지난해 매출 162억 원, 영업손실 105억 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며 TV 등 영상 기기 판매가 급감해 영상 콘텐츠 수요가 줄어 지난해 실적이 크게 하락했죠."
전쟁은 그에게 큰 깨달음을 줬다. "전쟁을 겪으며 사업 다각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화질 개선 사업, 온라인 영상 장터, 영상 제작 등 다양한 사업에 힘입어 올해 매출은 큰 폭으로 상승할 겁니다."
공시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매출은 약 57억 원으로 전년 동기(약 17억 원) 대비 230% 증가했다. 다만 1분기 영업손실이 약 20억 원으로 전년 동기(약 14억 원)보다 40% 이상 늘었다.
그렇다보니 2월 말 2만2,000원을 상회한 주가도 23일 종가 기준 1만1,350원까지 떨어졌다. "불안한 세계 경기 상황과 우크라이나 전쟁, 메타버스 테마주 하락 등 시장이 전반적으로 좋지 않아요. 여기에 기술 투자가 늘고 상장 비용이 일시적으로 반영돼 적자를 기록했죠. 주가가 기업 평가의 도구이기는 하지만 기초 체력이 반영된 것은 아니라고 봐요. 성장 가능성은 더 커질 것입니다."
"회사가 곧 인생 목표" 한 번도 휴가 안 가
윤 대표에게 개인적 목표를 물었더니 "생각하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에게는 회사가 곧 인생 목표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휴가다. 그는 직장 생활을 하며 한 번도 휴가를 가지 않았다. 창업 후 직원이 120명으로 늘어날 때까지 오로지 일만 했다. "회사 다니는 게 재밌어요. 직장은 살아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죠. 쉬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더러 비는 시간이 생기면 좋아하는 영화를 본다. "넷플릭스를 보거나 극장에 혼자 가서 영화를 보죠."
그렇다고 직원들에게도 일만 요구하지 않는다. 이 업체는 전날 휴일이면 다음 날 오후 1시에 출근하는 제도를 갖고 있다. "휴일 다음 날 출근하려면 힘드니 이를 조금이라도 줄여주려고 만든 제도죠." 12년간 편의점을 운영한 사람을 뽑아서 간식 코너도 만들었다. "편의점처럼 다양한 간식을 구비해 놓았어요."
그는 남들이 도착지라고 생각하는 증시 상장을 스타트업의 시작으로 본다. "사람들에게 혁신을 가져오는 사업과 빠른 의사 결정, 조직의 유연성을 스타트업 정신이라고 생각해요. 스타트업 정신은 상장했다고 끝나지 않죠. 상장을 첫 번째 투자인 시리즈A라고 봐요. 상장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죠."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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