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보내면 되지 왜 굳이 인간이 그 위험한 심해에 가나

이승엽 2023. 6. 2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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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의 값비싼 취미' 세간의 시선
망간단괴·천연가스 등 자원의 보고
과학자들에게 심해는 기술 전쟁터  
호기심과 열의로 공포심마저 극복
지난 18일 타이태닉호의 잔해를 관광하려다가 실종된 미국의 해저탐사 업체 오션게이트의 유인잠수정 타이탄호. AP 연합뉴스

과거 심해탐사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이었다. 1953년 깊은 바다 끝까지 내려가 보고 싶던 '괴짜' 어거스트 피카르 벨기에 브뤼셀대 물리학과 교수는 '트리에스테'라는 이름의 심해 잠수함을 발명했다. 미국 해군연구소는 피카르 교수의 잠수함을 사들여 개조한 끝에 1960년 세계 최초로 바다 속 1만916m까지 내려가는 기록을 세웠는데, 이는 2019년까지 깨지지 않았다. 당시 트리에스테호에는 피카르 교수의 아들이 타고 있었다.

반세기가 지나며 깊은 해저는 재벌의 관광지가 됐다. 영화감독 제임스 카메론은 2012년 가장 깊은 바다로 알려진 마리아나 해구의 1만898m 지점을 탐험했다. 최근에는 타이태닉호의 잔해를 보기 위해 떠났던 관광잠수정 '타이탄'이 파괴되며 승객들이 목숨을 잃는 비극이 일어났다. 하지만 세간의 시선과 달리 심해유인탐사는 자원의 보고를 차지하기 위한 각국의 기술 전쟁의 장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내파 사고 위험 적은 잠수정 조건은

영화감독 제임스 카메론. AP 연합뉴스

우선 심해는 누구나 쉽게 발을 들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혹독한 환경을 견뎌야 하는 만큼 고도의 기술과 자원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잠수정 선체가 수압에 견뎌야 하기 때문에 티타늄 같은 고강도 소재를 사용해야 하고, 마찰력을 줄일 수 있는 구형으로 디자인해야 한다. 잠항과 부상의 반복으로 선체에 피로도가 쌓여 작은 균열이라도 생기면 타이탄호처럼 바로 내파 사고로 연결될 위험이 크다.

김웅서 전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원장은 "타이탄호의 경우 티타늄과 탄소섬유가 함께 사용됐는데, 서로 다른 소재가 이어져 있으면 수압 변화에 취약하다"며 "수압에 견디기 효율적이지 않은 실린더 형태나 최대 잠항수심이 4,000m인 잠수정으로 3,800m의 타이태닉호 잔해를 관광하러 갔다는 사실 등도 사고 발생에 일부 영향을 줬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진단했다.

이런 한계 때문에 아직까지 유인 심해탐사의 범위는 제한적이다. 깊은 바다에서도 버티기 위해 잠수정이 소형으로 제작될 수밖에 없는 만큼 배터리 용량의 한계로 오랜 시간 바다에 머무르기 힘들다. 또 조명이 있어도 반경 약 10m 이상을 육안으로 확인하기 불가능해 초음파 카메라 등이 필수다. 제한적인 통신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장인성 해양과학기술원 해양신산업연구본부장은 "수중 건설로봇의 경우 선박과 연결돼 있어 광섬유를 통한 통신이나 음파발진기(pinger)를 통한 대략의 위치 파악이 가능하지만 유인 잠수정은 그렇지 못하다"며 "심해에선 위성항법장치(GPS)도 작동하지 않는 데다 수중 무선통신이 일부 가능하지만 원활하진 않다"고 설명했다.


中 희토류 수출 금지에 日 심해 개발로 대응

해저 자원 망간을 채취하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럼에도 세계 각국이 심해에 공을 들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깊은 바다 속에 숨은 자원 때문이다. 심해에는 망간단괴와 망간각, 열수광상 같은 광물 자원을 비롯해 석유, 천연가스, 가스 하이드레이트 등의 에너지 자원이 있다. 특히 망간단괴는 태평양 심해 5,000m 아래에 존재하는 광물 덩어리로, 망간과 구리, 니켈, 희토류 등이 함유돼 '바다의 노다지'라 불리기도 한다.

심해의 광구를 확보하기 위해 각국이 소리 없는 전쟁을 펼치는 이유도 이런 해양자원을 빠르게 확보하기 위해서다. 타이탄호 사고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지만, 사실 심해탐사는 관광보다 해양자원 연구와 개발 등 학술·산업적 목적에 방점이 찍혀 있는 셈이다.

김 전 원장은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금지했을 때 일본은 자국의 심해 유인잠수정 '신카이6500'으로 자국 배타적경제수역(EEZ) 내 심해 희토류 개발로 어려움을 극복했다"며 "심해 자원은 필요하다고 당장 내일 나가서 가져올 수 있는 것이 아닌 만큼 사전 탐사와 기술 개발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해저건설 기술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송유관이나 통신선뿐 아니라 최근엔 육상에서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해저에 저장하기 시작하면서 탄소중립 시대의 새로운 개척지로도 주목 받고 있다.


1980년대 이후 멈춰 있는 한국 심해탐사

국내 자체 개발한 최초의 유인잠수정 '해양250'. 한국일보 자료사진

국내 유인 잠수정 기술은 1980년대 이후 사실상 '일시정지' 상태다. 국내 최초의 유인 잠수정은 1987년 한국기계연구소가 프랑스와 기술 협력을 통해 설계 및 제작한 '해양250'이다. 수심 250m까지 탐사가 가능한데, 한국이 독자 개발한 과학실험용 잠수정은 해양250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해양수산부가 2016년 수심 6,500m까지 내려갈 수 있는 유인 잠수정 개발을 추진했지만, 경제성 등의 이유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한국인 최저 잠수 기록도 김 전 원장이 2004년 프랑스 국립해양개발연구소(IFREMER)의 잠수정 '노틸'을 타고 세웠던 5,044m에서 20년째 멈춰 있다.

반면 세계 각국은 유인 심해탐사정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현재 수심 6,000m 유인탐사가 가능한 잠수정을 보유한 나라는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프랑스 5개국이다. 특히 2000년대 들어 해저탐사 분야에 뛰어든 중국은 2012년 자체 개발한 유인 잠수정 ‘자우룽’으로 마리아나 해구 7,062m 탐사에 성공하더니, 2021년에는 ‘펀더우저’로 1만909m 잠수에 성공했다.


유서까지 써가며 내려가는 과학자들

2007년 해양수산부의 '차세대 심해용 무인 잠수정 개발사업'을 통해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KRISO)가 개발한 심해탐사용 무인 잠수정 '해미래(海未來)'. 한국일보 자료사진

유인 심해탐사가 갖는 한계 때문에 무인 잠수정 기술 또한 발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7년 6,000m급 무인 잠수정 '해미래'를 개발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유인 탐사만이 갖고 있는 대체불가능한 장점이 있다고 말한다. 장 본부장은 "많은 해양학자들이 모니터 영상으로 연구하는 것과 직접 눈으로 보고 시료를 채취해 결과물을 얻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며 "과학은 인간의 이런 호기심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김 전 원장은 "20년 전 태평양에서 5,000m 심해탐사에 나섰을 때 당시 잠수정 조종사가 '유서는 써놓았느냐'고 농담을 던졌는데, 정말 무서웠다"며 "공포심을 억누를 수 있게 해줬던 건 심해에 대한 호기심과 과학에 대한 열의였다"고 회상했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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