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한 수' 韓 메모리…"美·中도 못 건드는 기술력이 곧 칼자루"
[편집자주] 글로벌 '반도체 패권 전쟁'의 시대다. 미국,일본, 대만, 유럽 등 각국이 각축을 벌인다. 반도체는 지난해 한국 전체 수출액의 약 20%(1292억 달러)를 차지하는 주력 산업이다. 한국이 반도체 경쟁력을 잃는 순간 국가적 위기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과거 20년 동안 한국을 먹여살린 반도체 산업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미래 비전을 모색한다.
전례 없는 반도체 불황에 전 세계가 시름하고 있지만, 산업 전문가가 보는 대한민국 반도체의 미래는 사뭇 희망적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KIET) 전문 연구원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10년 후 전망을 10점 만점에 10점으로 내다보면서 그 근거로 "메모리반도체의 무궁한 가능성"을 들었다. 김 연구원은 메모리반도체가 어떤 제품에나 들어가는 범용 제품이란 점을 꼽으며 한국이 메모리반도체 강국인 것을 '행운'이라고 표현했다. 시스템 반도체는 종류별로 그 용처가 제각각 정해져 있는 반면,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는 용처가 구분 없이 다양해 그만큼 수요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예를 들어 인텔의 CPU(중앙처리장치)는 PC, 퀄컴의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는 스마트폰, 엔비디아는 GPU(그래픽처리장치)는 시스템 서버에 들어가는 등 시스템반도체는 특정 제품에 맞춰 들어간다"며 "그러나 메모리반도체는 위에 예를 든 세 곳에 다 들어가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그 때문에 (한국이) 메모리반도체를 리딩하고 있다는 점이 상당한 경쟁력"이라며 "미래 산업을 이끌 것으로 주목받는 AI(인공지능)만해도 당장 메모리반도체 수혜가 연결되지 않느냐"고 했다. 이어 "메모리반도체는 10년 후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산업 자체가 계속 잘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한달 사이 SK하이닉스의 주가가 30% 넘게 급등한 것도 AI반도체 수요 확대에 대한 기대감으로부터 비롯됐다고 시장은 평가한다. SK하이닉스는 고대역폭메모리(HBM3)를 엔비디아의 GPU에 공급하고 있다. 글로벌 AI 반도체 개발에 사용되는 GPU 90% 이상이 엔비디아 제품이다.
메모리반도체의 경쟁력을 지켜나가기 위한 요건으론 기술 선도를 향한 기업의 초격차 전략과 함께 정부의 외교적 노력이 필수적이라고 조언했다. 코로나19(COVID-19) 이후 전세계적 반도체 쇼티지(부족) 충격이 덮친 것을 계기로 미국과 중국은 반도체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 개발을 위한 신소자 원천 기술을 대부분 확보하고 있고, 중국은 반도체 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까지 엮여있는 최대 무역관련국이다. 양국 간 줄다리기가 기한 없이 계속될 것으로 보이면서, 김 연구원은 한국 정부가 그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협상력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김 연구원은 "미국과 중국 모두 한국이 자기 편에 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그들이 한국 반도체 기업을 흔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정부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기업들이 생산하는 메모리반도체가 미국과 중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산업에 전방위적 영향을 끼치는 만큼, 어떤 나라도 실제로 극단적 행위를 하긴 어렵다고 봤다. 압도적인 기술력이 곧 한국 반도체의 대체할 수 없는 지위를 보장해준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제한, 중국의 반도체 공급망 협력 강화 요구 등 현재 우리를 둘러싼 상황 모두 기업이 아니라 정부가 조율해야 할 문제들"이라고 설명했다.
메모리반도체 강화에서 더 나아가 궁극적인 국내 반도체 생태계 발전을 위한 방안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국내 투자 유치를 시급한 과제 중 하나로 언급했다.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EUV(극자외선)노광장비를 독점 생산하는 ASML등이 한국에 투자를 늘릴수록, 공급과 관리 측면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시스템반도체와 소부장, 팹리스 등 다른 분야 역시 놓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반도체 산업의 판도가 당장 내일이라도 바뀔 수 있는 만큼, 어느 한 분야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당부다.
그는 "메모리반도체가 아닌, 당장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분야라도 투자를 계속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D램과 낸드플래시만 열심히 했다가 (반도체 산업 판도) 변화를 캐치 못할 수도 있으니 시스템반도체도 힘들더라도 결국은 계속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2019년 일본 정부의 반도체 소부장 핵심 소재 수출 규제에서 미뤄보아 소부장 분야에도 투자를 게을리 할 수 없다고 했다.
한지연 기자 vividh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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