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학 잔뼈 굵은 석학의 쓴소리…"반도체 망하면 한국도 망해"

오진영 기자 2023. 6. 28.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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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K반도체의 미래를 묻다] ⑤ 박영준 서울대학교 전기정보공학부 명예교수
[편집자주] 글로벌 '반도체 패권 전쟁'의 시대다. 미국,일본, 대만, 유럽 등 각국이 각축을 벌인다. 반도체는 지난해 한국 전체 수출액의 약 20%(1292억 달러)를 차지하는 주력 산업이다. 한국이 반도체 경쟁력을 잃는 순간 국가적 위기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과거 20년 동안 한국을 먹여살린 반도체 산업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미래 비전을 모색한다.

박영준 서울대학교 전기정보공학부 명예교수가 22일 서울 영등포구 라이팩 사무실에서 집무를 보고 있다. / 사진 = 오진영 기자

박영준 서울대학교 전기정보공학부 명예교수는 한국 반도체의 최고 석학 중 한 명이다. 서울대에서 30년 동안 반도체·전자기학을 강의했으며, IBM과 LG, 하이닉스반도체(SK하이닉스 전신)에서 근무하며 반도체 개발에 힘썼다. 그 동안 '닮고 싶은 기술인' '서울대 베스트 티처상' '훌륭한 공대교수상' 등 많은 수식어를 얻었다. 2000년 하이닉스 매각설이 돌 때에도 교수들과 함께 반대 운동을 주도했다.
반도체 기업을 창업해 아직도 현장을 누비는 박 교수는 지금이 한국 반도체의 가장 큰 위기라고 말한다. 한국은 메모리반도체 1위 삼성전자를 비롯해 여러 일류 기업을 보유했지만, 시장 대처능력이 부족해 어려움에 처했다는 진단이다. 반도체 업종 기피 현상과 정부의 지원 부족도 장애물이다. 22일 서울 영등포구 사무실에서 박 교수가 지금이 반도체 위기라고 우려하는 이유에 대해 들어봤다.
정말 '큰 위기' 맞은 한국 반도체…"지금 혁신하지 않으면 늦다"
박영준 서울대학교 전기정보공학부 명예교수와 라이팩이 개발한 광엔진. 반도체에 사용되는 전기 신호를 빛으로 바꾸거나, 빛을 전기 신호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 사진 = 오진영 기자

박 교수는 한국 반도체가 위기를 맞게 된 이유로 크게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는 '무어의 법칙'이 끝나가고 있다는 인식이다. 무어의 법칙은 18개월마다 마이크로칩에 저장할 수 있는 데이터 분량이 2배씩 증가한다는 법칙이다. 그간 반도체는 기존 제품보다 더 작게 만들어 경쟁력을 올리는 데에 치중해 왔다. 하지만 반도체 소형화가 한계에 도달하면서 다른 방식의 가치 창출이 필요해졌다.

둘째는 인력 부족 문제다. 지난 수십년간은 우수 인력이 반도체 업종에 종사하면서 배터리, 자동차 등 다른 업종이 함께 발전하는 선순환이 이뤄졌다. 그러나 현재는 인력 규모 축소로 반도체 경쟁력이 지속 약화되고 있다. 박 교수는 "파운드리를 예로 들면 삼성전자의 우수 엔지니어는 TSMC의 3분의 1 수준"이라며 "우수 인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는 경쟁국에 비해 시장 대처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대만의 경우 TSMC뿐만 아니라 우수 인력들이 애플이나 구글 등 주요 고객사에 진출해 있어 상대적으로 시장 파악이 빠르다. 박 교수는 "국내 반도체의 설계능력이나 생산 능력은 충분히 세계적인 수준"이라면서도 "반도체도 고객을 만족시키는 업종이기 때문에 고객의 니즈를 파악해야 하는데, 한국은 그런 것이 미흡하다"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가 우려하는 점은 새 기회를 마주한 한국 반도체가 자칫 발목을 잡힐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 센터와 전기차 등 데이터가 폭증하면서 반도체 수요는 점차 늘고 있다. 초저전력·초고속 반도체 기술 부문에서 한국이 앞서 있지만, 고객이 원하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능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해외 경쟁 기업의 주력 기술을 파악하는 능력도 미흡하다.

박 교수는 "용량 단위가 기가바이트에서 테라바이트로 바뀌고, 전력 소비량을 기존 대비 10분의 1로 줄이려는 시도가 잇따르면서 반도체는 지금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라며 "위기 의식을 갖고 국가 차원에서 경쟁력 확보를 위해 주력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한 번 반도체 주도권을 뺏기면 다시는 찾아올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 교수는 지금이 제 2의 '동경 선언'이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한다. 40년 전 이병철 삼성 초대회장이 한 발 앞서 초고밀도직접회로(VLSI)에 뛰어들었을 때처럼 한국 반도체가 다시금 혁신을 펼쳐야 한다는 목소리다. 박 교수는 "반도체 부문을 중심으로 다시 한 번 한국이 레노베이션(혁신)하지 않으면 정말 큰 위기가 올 것"이라며 "정부와 대학, 기업이 힘을 합쳐 새로운 미래경쟁력을 창출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오진영 기자 jahiyoun2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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