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맛과 섬] [144] 비양도 꽃멜젓
6월이면 제주 비양도에는 어김없이 귀한 손님이 찾아온다. 주민들은 손님을 맞기 위해 신새벽에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고, 해녀할망은 포구에서 그 배를 기다린다. 주민들이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는 손님은 꽃멜이다. 멜은 멸치의 제주도 방언이다.
새벽 서너 시에 바다로 나가 전날 쳐 놓은 그물을 걷는다. 밝은 낮에 하지 않고 새벽에 나서는 것은 낮에는 해녀들 본업인 물질을 해야 하고, 아침 경매에 내다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꽃멜은 멸치가 아니라 따뜻한 물을 좋아하는 청어과 샛줄멸이다. 몸에 긴 은빛 줄이 있어 엄연히 멸치와 다른 종이다. 여름이면 제주 연안으로 몰려와 모자반 등 해초나 모래밭에 알을 낳는다. 그곳이 비양도 주변 바다다.
올해는 6월 15일 첫 모습을 보였다. 비양도 인근에 머무는 시간은 한 달이다. 옛날에는 건너 금능리나 협재리 등에서도 잡았지만 지금은 오직 비양도에서만 잡고 있다. 비양도에서도 10여 척이 조업을 했지만 지금은 딱 두 척만 꽃멜잡이에 나서고 있다.
그물을 걷기 위해 두세 명이 바다로 나가는 배를 타야 한다. 그리고 포구에서는 가져온 그물을 털 네다섯 명이 대기해야 한다. 지팡이 크기의 작대기로 멸치그물을 터는 이들은 대부분 해녀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70대 이상의 노인들이라 배를 타는 것도 그물을 터는 것도 버겁다. 여름 한 달만 이루어지는 꽃멜잡이를 위해 일할 사람을 찾는 것도 여의치 않다. 남편과 해녀인 아내가 가족과 함께 배를 타고 마을 해녀삼촌들이 그물을 터는 이유다. 힘들지만 꽃멜잡이를 그만두지 못하는 것은 일반 멸치와 비교해 몸값이 열 배 높기 때문이다.
이날도 새벽 네 시에 시작해 한라산에서 아침 해가 떠오르고나서 끝이 났다. 그물에서 떼어낸 멸치는 바닷물로 깨끗하게 세척한 후 곧바로 한림항 수협으로 운반되어 판매된다. 일반 멸치는 젓갈을 담가 오래되면 살이 녹아 사라지지만 꽃멜은 그대로 형체가 남아 반찬으로 좋다. 여름에 젓갈을 담그면 다섯 달이 지난 후 겨울에 먹기 좋게 숙성이 된다. 제주 오일장에서 곧잘 꽃멜젓을 만날 수 있다. 일반 멸치보다 단단하니 씹는 맛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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