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20] 정치가 키우는 공포 괴담
“애초에 수국 저택의 유령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우습게 여긴다거나, 유령을 보았다는 소문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본 사람도 있으리라. 다만 그것은 눈의 착각이다. 저택에 사람이 없어지고 나서 들리기 시작했다는 괴상한 목소리의 정체도 바람소리나 새나 짐승의 울음소리가 아닐까 짐작했다. 수국 저택에서 일어났던 괴상한 일은 전부 설명할 수 있다. 다만 그 설명으로 진정되지 않는 마음이 있는 한, 아무리 가르치고 꾸짖고 비웃어도 소용이 없다.”
-미야베 미유키 ‘안주’ 중에서
며칠 전 이웃 집 현관 앞에 천일염 10kg이 배달돼 있었다. 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작은 포장만 눈에 익은 터라 처음엔 쌀 포대인 줄 알았다. 소금을 사재기한다는 소문이 거짓은 아닌 모양이다. 해산물 시장도 한산하다고 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12년을 무탈하게 살고도 우리 사회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있던 2011년보다 더 큰 공포에 떨고 있다.
사려 깊은 소설 속 부부는 조용한 폐가를 얻어 은퇴 후 삶을 시작한다. 집값도 싼 데다 수국이 아름답게 피는 저택이었지만 유령이 산다는 소문이 자자한 흉가였다. 원혼이 있다 해도 자신들을 원망할 이유가 없고, 나타나면 하소연이라도 들어주겠다는 마음이었지만 유령은 없었다.
공포는 유령과 같다. 뇌 송송 구멍 탁 광우병, 전자파에 튀겨진 참외, 세슘 우럭, 방사능 소금. 오싹한 괴담은 한번 귀에 박히면 쉽게 잊히지 않는다. 알을 깨고 나와 처음 본 것을 어미라고 인식하는 오리처럼, 조금만 노출돼도 병들어서 죽을 거라는 공포가 각인되면 과학적으로 아무리 증명해주어도 대중은 안전을 믿지 않는다.
야당은 인체에 무해하다는 사드 환경영향평가도,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 피해가 과장되었다는 원자력학회의 성명도 묵살하고 장외투쟁에 나섰다. 북한과 중국 관련 문제는 억지를 써서라도 편들고 감싸면서 반미 반일 선동에는 늘 열심이다. 미숙한 정치인들은 ‘세상은 틀리고 나만 옳다. 너의 분노는 정의로우니 나만 믿고 따르라’며 앞장선다. 그들이 원하는 건 악당을 물리치고 유토피아를 안겨줄 영웅처럼 보이게 할 혼란, 이것은 국민을 불안에 빠뜨릴 공포와 분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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