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시련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미래 대한 기대 접지 말고 순간을 자신 것으로 만들길
이봉순 ㈜리컨벤션 대표
“삶이 의미가 있는지 묻는 대신, 매 순간 의미를 부여하는 건 우리 자신이다.”
오스트리아 출신 신경정신과 의사이자 철학자인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에서 시련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과 죽음으로 나누어지는 생생한 경험들을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에 남겼다.
수용 생활 중 초겨울 물기가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알몸으로 실외에 내몰렸던 적도 있었지만 단 한 명도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 평소 조그만 소리에도 잠을 못 자던 예민한 사람도 동료들이 포개어 누울 수밖에 없는 좁은 공간에서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잠을 잘 잤다. 한 벌뿐인 셔츠는 1년 이상 세탁도 하지 못하고 다 헤어져도 입어야 했다. 일하다 상처가 나도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상태에서 누구도 병에 걸리지 않았던 것은 어떤 환경에서도 사람은 적응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위생 상태가 최악인 상황에서도 병에 걸리지 않고 잘 견뎠지만 크리스마스와 새해 일주일 사이에 사망자가 급격히 증가한다. 수용소의 노동 강도가 세진 것도 아니고, 환경이 더 나빠진 것도 아니고, 전염병이 돈 것도 아니다. 한 그룹의 사람들이 크리스마스에 집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잃고 정신력까지 붕괴되면서 균에 대한 저항력이 떨어져 병을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정신력이 신체 면역력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미래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았던 반대 그룹은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두 그룹의 차이는 미래에 대한 기대다. 미래 상실이 죽음을 부른 것이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던 사람들은 체력이 더 강해서가 아니라 살아야 할 이유를 알아서였다.
빅터 프랭클은 끝을 알 수 없는 수용 생활의 고통 속에서 그의 삶의 목적은 다른 사람들이 삶의 목적을 찾는 것을 돕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수용소에서 관찰한 사람들의 심리 상태를 따뜻한 강의실에서 강의하는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면서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한다. 시련을 대하는 그의 방식에서 많은 것을 성찰케 한다.
2021년 IMF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GDP 세계 10위 경제대국임에도 OECD 국가들 중 자살률 세계 1위의 불명예를 안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OECD 국가 간 연령표준화 자살률(10만 명 중 자살 사망자 수)을 보면 한국이 24.6명으로 OECD 평균 2배가 넘는다. 하루 평균 36.1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10~30대 미래 세대들의 자살률 1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노인 자살률도 1위다.
생을 무한하게 창조해 갈 젊은 세대도, 마무리할 실버 세대도 이토록 생에 의욕을 잃고 자살로 이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6·25 전쟁 이후 빈민국에서 경제 대국으로 발전해 오면서 우리 국민은 앞만 보며 달려왔다. 경쟁적인 교육시스템에서 치열하게 살아남아야 했고, 사회에 진출한 뒤에도 도태되지 않도록 생존 경쟁을 벌여야 했다. 이처럼 경쟁 체제에서 성장한 우리 국민은 상대적으로 여유롭지 못하고 사회 정서도 공격적이다.
사회 전체가 공동 노력으로 풀어야 할 일도 많지만 개인 또한 살면서 마주치는 시련들을 대하는 방식 또한 훈련이 필요한 것 같다. 삶을 행복하게 성공한 이들이 시련을 통해 배움과 성장에 초점을 맞추면서 앞으로 나아 갔듯이 말이다. 필자 또한 미래에서 현재를 보라는 의미를 시간이 갈수록 알게 되고, 시련이 클수록 성장 또한 컸음을 경험해 왔다. 시련이 있을 때 이전에 할 수 없었던 생각을 하게 되고 새로운 문을 여는 기회를 가지게 됐다. 우리 삶은 시련의 연속이고 시련을 통한 배움으로 삶의 목적과 의미를 한 단계씩 알아가는 것 같다. 스스로를 계몽하듯 내 안을 깨우는 여정이 시련을 통해서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삶의 의미는 시련이 주는 의미와 한몸 같이 여겨지고, 시련은 인간의 삶을 완성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필수 과정이라 여겨진다.
이생에 태어난 이유, 나의 사명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기여할 수 있을까? 자문해 오다 23년간 해온 국제회의 전시인 컨벤션 산업의 본질인 내 일이 주는 가치에서 나는 찾게 되었다. 회사를 경영하면서 많은 도전들로 일에 회의를 느껴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도 많았지만 꿈으로 시작한 일이 사명으로 이어지니 이토록 감사한 생의 선물이 또 있을까 싶다. 생의 목적이 명료해질수록 어려움을 털어내는 것 또한 쉬워졌다.
언젠가 죽음을 앞두고 나의 사명을 다하며 잘 살았는가? 스스로에게 물을 때 이번 생애 졸업장을 웃으면서 기꺼이 받는 모습을 그려본다.
“시간은 당신에게 순간을 선물한다. 그리고 매 순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건 우리 몫이다.”(조르주 풀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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