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당신의 인권이 나의 인권이다
누구나 좋은 삶을 원한다. 좋은 일터에서 출발하여 모든 곳에서 존중받으며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그런 삶 말이다. 자기 노동이 인정받고 그로부터 보람을 느낄 때 좋은 삶도 좋은 사회도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노동 현실은 어떤가. 지난 20년간 일터에서 죽은 노동자가 4만8000명이다. 매년 2400명, 매달 200명, 매일 6명 이상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압도적인 세계 1위의 산재 사망률 국가라는 ‘삶의 지옥도’가 낳은 결과다.
특히 건설 현장은 작년 539명으로 최다 사망자를 배출한 ‘죽음의 일터’다. 고용불안이 심하고 다단계 하청 구조와 무관치 않은 임금체불 문제도 심각하다. 노조는 최소한의 자구책이었다. 그런데 건설노조를 폭력배로 비유하는 ‘건폭’이란 말이 언론을 도배하고 있다. 경찰청은 ‘건폭’ 척결을 위한 특별 단속에 특진까지 포상으로 내걸었다. 숱한 건설노조 간부가 조사와 압수수색, 구속영장을 받는 와중에, 울분으로 목숨까지 던진 노동자도 나왔다. 이 처절한 분신에 대표 보수언론은 ‘자살방조와 유서대필 의혹’을 제기했다. 인권 모독이다!
지난해 파업을 벌인 화물연대 노동자는 저임금·과로·고용불안이라는 3중고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특수노동자다. 그들이 결국 얻지 못한 ‘안전운임제’는 화물운송업계의 최저임금제 같은 요구였다. 최소한의 삶을 위한 요구를 묵살한 결과는 현장에서 과로·과속·과적의 부활이었고, 반대로 노동권을 무시하며 강경 대응을 주도한 국토부 공무원의 훈장 수여였다.
작년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파업은 어떤가. 가로세로 1m 철창 속 노동자의 모습으로 상징된 그 처절한 파업의 결과는 쥐꼬리만 한 임금인상과 노조 간부 5명에 대한 47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 소송이었다. 헌법에 보장된 정당한 노동쟁의에 대한 기업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려는 ‘노란봉투법’ 통과에 맞서 여당은 대통령에 거부권을 건의했다. 입법부가 가결한 법안을 행정수반이 거부하는 것이 대한민국 의회민주주의의 현주소다.
타임머신을 탄 듯 권위주의와 독재 시대의 노동탄압 현장이 도처에서 펼쳐지고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옥죄고, 폭력진압의 대명사로 퇴출된 물대포 투입이 거론된다.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시대착오의 현실이다.
약자나 소수자 탄압은 역사에서 드물지 않다. 그리고 그 여파가 약자에만 그치지 않았다. 나치가 유대인의 재산을 빼앗고 시민권을 박탈할 때 대다수 독일인은 항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종주의적 혐오에 중독되어 ‘하일 히틀러’를 외치는 광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유럽 곳곳에서 유대인이 죽음의 기차에 짐짝처럼 실릴 때 독일인은 가로막지 않았다. 결과는 독일에도 참혹했다. 대학살과 지울 수 없는 전범국가의 굴레를 넘어, 수많은 젊은이가 전장에서 죽고 무려 700만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더 일찍이 유대인 탄압에 독일 대중이 등 돌리지 않았더라면 역사는 다른 길로 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현실로 돌아오자. 건폭몰이로 지지율이 올라간다고 느낀 정권은 노동탄압으로의 직진을 택한 듯하다. 약자를 탄압하는 정책에 사람들이 동조하거나 무관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정책이 다른 이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음은 역사가 증언해 준다. 유대인 차별과 혐오에서 시작한 나치는 ‘위대한 제국’의 건설에 방해가 된다며 30만 명 이상의 독일인 장애인과 정신질환자도 조직적으로 살해했다. 누군가 인권이 무시되는 곳에서는 다른 누구의 인권도 결국 무시되는 것이다.
지난달 포스코의 고공농성 노동자가 경찰 곤봉에 집단으로 구타당했다. 대통령은 노조를 겨냥해 불법 집회와 시위의 엄단을 촉구한다. 하지만 질서와 준법만 앞세우면 인권은 무시될 여지가 크다. 나치 치하의 준법은 법의 이름으로 유대인의 인권을 탄압하는 것이었다.
작가 이청준은 “혁명이 사랑을 잃으면 추하고 가공할 폭력이 되는 법”이라고 했다. 사랑을 담지 않는 혁명이 무도한 폭력의 길이듯, 약자와 소수자를 보듬지 않는 법치도 ‘가공할 폭력’이 될 수 있다. 누군가의 인권을 겨냥한 폭력의 폭주는 결국 다른 누군가와 나의 인권을 겨눌 것이다. 당신의 인권이 바로 나의 인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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