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129] 바젤위원회의 탄생

차현진 예금보험공사 이사 2023. 6. 2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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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이 사라지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1969년 비틀스의 고별 공연처럼 예고하고 작별하는 것과 배우 강수연처럼 황망하게 떠나는 것이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폐업 정리 세일’과 함께 계획을 세워 문을 닫을 수도 있고, 부도를 맞아 갑자기 끝날 수도 있다. 금융기관이 둘째 길을 걸으면, 금융시장에 난리가 난다.

1974년 6월 26일 서독 헤르슈타트방크의 파산이 그랬다. 그 은행은 한스 게를링이라는 사람이 지분의 80%를 가진, 서독 내 자산 규모 40위 정도의 소형 은행에 불과했다. 하지만 외환 거래에 전문화되어 있어서 이 은행의 파산은 국제 금융시장을 뒤흔들었다.

돌아보면, 1974년은 혼돈의 도가니였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 서독의 브란트 총리, 일본의 다나카 총리가 스캔들로 사퇴했다. 프랑스 퐁피두 대통령은 암으로 급사하고, 영국 히스 총리는 두 번 의회 해산 끝에 총선 패배로 물러났다. 5대 기축통화국 정상들이 한결같이 느닷없이 교체되는 가운데 오일 쇼크까지 겹쳤다. 그 바람에 환율이 사상 유례없이 춤을 췄고, 이를 견디지 못한 헤르슈타트방크가 파산했다.

그때 서독 정부는 충격을 최소화하려고 금융시장이 마감된 오후 4시 30분에 영업정지를 발표했다. 그 순간 뉴욕은 오전 10시 30분이라서 금융시장이 한창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날 헤르슈타트방크와 주고받을 것이 있어서 10시 반 전에 송금한 뒤 저녁까지 입금을 기다리던 뉴욕의 거래처들은 뒤통수를 맞았다.

헤르슈타트방크 파산 직후 G10 중앙은행 총재들이 스위스 바젤에 모였다. 그들은 “지구는 둥글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기면서 은행감독위원회(BCBS)를 만들었다. 오늘날 최저 자기자본 비율 등 온갖 금융 규제를 다루는 바젤위원회의 전신이다. 그 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중요 금융기관에 대한 정리 계획 수립과 유사시 지원, 청산, 매각을 예금보험공사가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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