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283>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아비의 심정을 묘사한 심익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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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초밭과 꽃밭이 집 좌우에 있고(藥圃花園屋左右·약포화원옥좌우)/ 한가한 삶이라 어디든 쫓아가지 못하겠는가.
심익운이 아들을 잃은 후 물가로 첫 나들이를 나갔다가 지은 시다.
그리하여 아들이 보던 책에 손을 대지 못한다.
내성적이시던 필자의 부친께서도 장성한 둘째 아들을 잃고 아주 상심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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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초밭과 꽃밭이 집 좌우에 있고(藥圃花園屋左右·약포화원옥좌우)/ 한가한 삶이라 어디든 쫓아가지 못하겠는가.(閑居何處不從行·한거하처불종행)/ 마음 아파 차마 책을 펼쳐보지 못하는데(傷心未忍開書帙·상심미인개서질)/ 다른 때 책 볕에 말리는 날 책잡던 너 생각나리.(曬日他時憶爾擎·쇄일타시억이경)
위 시는 심익운(沈翼雲·1734~?)의 시 ‘아들을 잃은 후 처음 물가로 나가(喪兒後初出湖上·상아후초출호상)’로, 그의 문집인 ‘백일집(百日集)’에 들어있다. 본관이 청송인 그는 1759년(영조 35)에 정시문과에 장원을 한 인물이다. 하지만 1776년 탄핵을 받고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그는 효종의 부마였던 심익현의 후손이지만, 동시에 영조의 즉위를 막으려다 역적으로 몰린 심익창의 후손이다. 형인 심상운도 영조에게 화를 입어 유배 가 세상을 버렸다.
심익운이 아들을 잃은 후 물가로 첫 나들이를 나갔다가 지은 시다. 그가 살던 집 왼편엔 약초밭이 있고, 오른편엔 꽃동산이 있다. 마음 둘 곳이 없었는지 약초밭과 꽃밭을 거닐었다. 아들의 숨소리. 아들의 흔적이 없는 곳이 어디 있을까. 그러다 아들이 쓰던 방으로 들어가니 책이 눈에 띈다. 아들의 책 읽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리하여 아들이 보던 책에 손을 대지 못한다.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아서다. 책을 꺼내 햇볕에 바짝 말리는 포쇄(曝曬) 때 거들던 생각도 난다. 아들 생각이 나 다음에 포쇄를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선다.
2년 전에 시집 ‘가족사진 같을 기록’을 펴낸 시인이자 패션디자이너인 필자의 벗이 미혼의 딸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미술을 전공한 딸은 제주도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서울 유명한 공간 등에도 작품이 소장돼 있다. 종종 딸과 작품 사진도 필자에게 보여주었다. 봄철에 목압서사에 와 필자의 차밭에 함께 올라가 찻잎을 따기도 하였다.
그 어떤 말이 위로가 될까마는 어제 벗과 통화를 하였다. 그러다 보니 심익운이 자식을 잃고 지은 시가 생각났다. 내성적이시던 필자의 부친께서도 장성한 둘째 아들을 잃고 아주 상심하셨다. 부친의 시집 ‘영원의 기록’에 둘째 아들인 필자의 동생의 죽음을 애달파하시는 시가 몇 편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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