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괜찮나요, 억눌린 삶을 다독이는 안부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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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눌린 삶.
억눌린 채 살아가거나 스스로 억누르며 사는 삶.
그런 삶이 좋기만 한 게 아니라고 느끼지만 그냥 그렇게 '억눌린 상태로 안정되어버린 생활'에 길든 삶.
'맞아, 맞아, 내 삶도 그래. 어쩌겠어. 그렇게 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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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립·소통단절 문제 다룬 7편
- 평범한 일상 속 모종의 계기로
- 관성적 삶 벗어난 인물들 그려
억눌린 삶. 억눌린 채 살아가거나 스스로 억누르며 사는 삶. 그런 삶이 좋기만 한 게 아니라고 느끼지만 그냥 그렇게 ‘억눌린 상태로 안정되어버린 생활’에 길든 삶. 주위에 물어보면 많은 사람이 공감할 것이다. ‘맞아, 맞아, 내 삶도 그래. 어쩌겠어. 그렇게 사는 거지….’
조금 더 예민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대체로 예술은 그런 예민한 사람을 잡아챈다. 소설가 배이유의 새 작품집 ‘밤의 망루’(알렙 펴냄·사진)에 실린 단편소설 7편은 그런 이들에게 다가가고 말을 걸고 사는 게 괜찮으냐고 묻는다.
등장인물이 아주 별나거나 까탈스럽거나 위험한 사람은 아니다. 평범하다.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간다. 그런데 억눌려 살거나 스스로 억누르며 살다가 일종의 임계점에 다다라 비로소 눈을 뜨고 감각을 열어버리는 순간에 닿으면서 그들은 완연히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 모습에는 놀라움·아름다움이 있다.
표제작 ‘밤의 망루’는 우화풍 단편이다. 이 작품 주인공의 삶을 현대사회의 ‘우리’ 모습에 대입하면, 요즘 말로 ‘공감 쩐다’.
주인공은 망루에서 망을 보는 사람이다. 11살에 망루에 올라가 파수꾼이 된 뒤 한 번도 망루 아래로 내려오지 못했다. 망루에서 혼자 산다. 그렇게 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11살 이전에 배운 단어만 기억할 뿐이고 스물인지 마흔인지 나이도 모른다. 그는 하루 두 시간만 자도 일상에 지장이 없도록 ‘파수꾼의 삶’에 적응돼 있다.
그에게 꿈은 금기다. 파수꾼은 ‘꿈 없는 잠을 짧게 자야’ 한다. 꿈을 꾼다는 건 몸과 의식 사이 균형이 무너지는 일일 뿐이다. 하루 한 번 마을 여성이 와서 그에게 도르래와 바구니로 생필품을 전해주는데, 그 일을 하는 담당자가 메리엠으로 바뀐 뒤부터 파수꾼의 삶에 변화가 생긴다. ‘파란 나비’ ‘물’로 상징되는 변화가 파수꾼의 삶에 새롭게 스며드는 순간 메리엠은 금기를 어기고 망루로 올라와 파수꾼에게 ‘비밀’을 전한다. 그의 삶은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는 함께 산 지 꽤 된 부부에게 권해서 함께 읽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줄곧 든 작품이다. 이순(아내)과 상운(남편)은 오래 함께 산 부부인데, 상운은 얼마 전 사고를 당해 일찍 은퇴했다. 이순은 오랜 세월 자기를 억누르며 살아온 여성이다.
해변에 놀러 간 이순의 독백이 인상 깊다. “집 안이 아닌 곳에서는 늘 감춰져 있는 발가락들이 해를 볼 일이 있겠는가. 역사적인 사건인데.…이순은 발가락 낱낱을 떼어 움직여주었다. 너희를 덩어리가 아닌 개별적 인격체로 존중할게.”(74쪽)
이순은 살뜰하게 상운을 챙기고, 상운은 이순을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지만 속내를 보면 둘은 거의 철저히 어긋나며 서로 모른다. 소설은 조용하고 부드럽게, 충격적인 결말로 다가간다.
‘홍천’도 매력 있다. 스스로는 어떻게 해보기 힘들어 함께 모여 극단적 선택을 하기로 한 몇 사람이 차를 몰고 ‘여행’을 떠난다. 그 여행에서 ‘입양-파양-입양’이라는 존재의 상처를 입은 인물 ‘본’은 엉뚱한 제안으로 일거에 일행이 생명력을 체험하게 해준다. 정작 본인은 역설의 길로 간다. 존재의 상처와 깊은 외로움에 관한 작가의 생각을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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