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직필] 쿠팡 ‘클렌징’은 사회적 합의 부정이다
2020년 3월부터 만 2년 동안 10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던 쿠팡 물류센터에서는 올해도 죽음의 행렬이 이어진다. 야간 택배 분류작업을 수행하던 노동자가 화장실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것이 올해 1월이었다. 2월에는 화물 노동자가 트럭에서 떨어져 유명을 달리했다. 퇴근길 셔틀버스를 기다리다 심장마비로 숨진 사례도 있었다. 3월에는 2020년 10월 산재로 사망한 장덕준의 유족들이 회사 측으로부터 사과와 보상 지원을 끝내 약속받지 못한 채 동부지법에 소송을 제기했다. 회사가 택배 사업을 확장하면서 배송 인력을 자회사로 재배치하는 가운데 일어난 사건들이다. 그런 와중에 최근에는 물류센터가 아니라 택배 자회사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대리점한테서 위탁구역을 회수하는 ‘클렌징’ 제도를 둘러싼 갈등이 그것이다.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을 놓고 정부와 택배회사, 노동조합 간에 사회적 합의가 도출된 것이 재작년 이맘때였다. 그때 합의된 약속 중 하나는 택배노동자의 업무 범위에서 분류 작업을 배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 현장점검 결과 지난해 1~8월 점검 대상 97곳 중 실제로 분류 작업 배제가 이루어진 곳은 28%에 그쳤다. 9~12월 점검 대상은 13곳으로 대폭 줄었는데 그중 8곳에서 택배노동자가 여전히 분류 작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사측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현장점검에서 적발해도 개선 명령을 안 내리는 걸 보면 이번에도 정부는 그들과 한통속이다. 그나마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은 나아졌다고 하니 현장의 조직된 힘으로만 합의 이행을 강제할 수 있는 셈이다.
쿠팡의 택배 자회사는 당시 사업자 등록 이전이었기에 사회적 합의의 주체는 아니었다. 하지만 업계 2위 사업자가 합의 결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의 의뢰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실시한 쿠팡 퀵플렉스 노동자 대상 4월 실태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회사가 사회적 합의를 거의 지키고 있지 않아서다.
노동자들은 아직도 평균 2시간 넘게 매일 분류 작업을 수행 중이다. 주 60시간을 넘는 노동을 금지했음에도 노동자 31.4%는 그보다 긴 시간 일한다. 이 회사에 특히 많은 야간노동을 고용노동부가 고시한 ‘과로사 기준’으로 할증해서 따지면 그 비율은 31.4%를 크게 웃돌 법하다. 게다가 국토부 조사로도 노동자 40%는 표준계약서를 쓰지 못하고 있다. 회사는 원청이 부담하기로 합의했던 고용보험료와 산재보험료조차 부담하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클렌징은 심각한 문제다. 사회적 합의의 결과로 제정된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생물법) 제2조와 국토부의 택배사업자 표준계약서 제3조는 대리점마다 위탁구역을 지정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다른 택배회사들도 대리점에 책임 배송지역을 할당한다. 그런데 유독 쿠팡은 위탁구역을 지정하지 않거나 지역 범위를 넓혀 복수의 대리점 간 경합을 유도한다. 그런 다음 부속합의서를 통해 강제된 서비스 수행기준을 준수하지 못하면 위탁구역을 회수하는 클렌징을 단행한다. 대리점에 구역이 지워지면 대리점과 계약한 노동자들도 구역을 잃게 된다. 언제든 그런 일이 일어난다. 사실상 상시해고나 다름없는 것이다. 클렌징은 그렇게 노동조합 활동을 억압하는 수단으로도 악용되고 있다.
재작년 사회적 합의에서 위탁구역 할당 의무를 원청 택배회사에 부과했던 취지는 구역의 안정적 유지 여부가 노동자의 소득과 노동조건에 결정적이기 때문이었다. 분류 작업 배제도, 주 60시간 규정도, 표준계약서도, 원청의 사회보험 부담도 같은 취지였다. 그런데 그와 같은 의무에서 쿠팡만 예외가 인정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는 다른 택배회사들의 이탈 압력만 키울 수밖에 없다.
특히 쿠팡의 클렌징은 우리 사회가 어렵게 도달한 사회적 합의 전체를 무너뜨린다. 그것은 끝 모를 바닥을 향한 경주처럼 노동조건을 악화시킨다. 클렌징은 편법이나 꼼수일 뿐 ‘혁신’이 아니다. 혁신의 올바른 경제학적 정의에는 생산성 개선이 노동자나 하청 공급 기업의 일방적 희생의 산물이면 안 된다는 조건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쿠팡이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기업이라면 당장 사회적 합의의 틀 안에 들어와야 하고, 생물법 적용을 받아야 마땅하다. 합의 이행을 보증해야 할 국토부도 지금처럼 뒷짐만 지고 있을 일이 아니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사회적 합의는 유효하다. 택배노동자 수십명이 과로로 숨져간 ‘죽음의 과거’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택배노조 조합원들에게 지지와 동지적 연대가 절실한 이유다.
나원준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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