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혁기의 책상물림]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
볼일을 보고 나서 물을 내리다가 멈칫할 때가 있다. 간단한 조작 하나로 오물이 말끔하게 씻겨 내려가고 깨끗한 물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이 새삼 신기하기도 하고, 엄청난 사람들이 곳곳에서 흘려보내는 이 하수들이 어떻게 처리될지 걱정스럽기도 해서다. 그다음의 과정을 모르는 우리의 눈에는 편리한 조작과 깔끔한 결과만 보일 뿐이다. 지정된 봉투에 담아 수거장에 내놓기만 하면 눈앞에서 곧 사라져 버리는 쓰레기도 마찬가지다. 비용만 내면 그다음의 과정은 볼 필요도 없이 처리되는 게 당연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경향신문에서 최근 연재한 ‘당신은 무슨 옷을 입고 일하시나요’에서는 그다음의 과정에 투입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작업복’이라는 구체적인 제재를 초점으로 삼아 눈에 띄지 않는 여러 공간에서 일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조명한 내용이다. 첫 회에서 하수와 생활 폐기물을 처리하는 이들의 작업 양태를 접하며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혹은 보지 않았던 것들이 생생하게 눈에 들어왔다.
언론의 기능에 대한 우려가 적잖게 제기되는 가운데, 수개월의 기획 탐사를 거친 밀도 높은 기사를 읽는 것은 참 반가운 일이다. 인터넷 환경의 변화로 특정 정보의 시의적 가치가 예전에 비해 현격히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여전히 언론을 비롯한 여러 매체의 존재 이유가 있다면, 우리가 직접 보지 못하는 것들을 더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전달해줄 수 있다는 점이다. 독서를 왜 하느냐는 물음에 대해 역시, 지금 나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게 한다는 케케묵은 답변만 한 것이 없다.
효율적인 구조 속에서 비용을 지불하고 편리함을 누리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합리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잘 만들어진 ‘결과’를 누리는 것도 사람이지만, 지하 25m 온도 30도 습도 84%의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에도 사람이 있다. 눈감아도 될 그다음의 과정을 봄으로써 우리는 내가 내는 비용이 적절한지, 지금 이대로의 구조가 지속되어도 좋은지 고민하게 된다. 우리의 삶과 세상을 바꾸는 힘은 이런 불편한 고민에서 비롯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는 눈이 여전히 필요한 이유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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