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이 세상은 무대, 우리는 배우
며칠 후인 7월1일부터 2023년 '투르 드 프랑스'가 시작된다. 1903년 시작돼 매년 7월에 열리는 이 대회는 세계 최고의 자전거 경기며 '프랑스 일주'라는 뜻에 걸맞게 경주가 지나가는 모든 지역의 축제다. 그후 '지로 디 이탈리아' '부엘타 아 에스파냐'가 생겨났고 이들을 합쳐 '3대 그랜드투어'라고 한다. 매달 극장 이야기를 해오다 갑자기 자전거 이야기를 하게 된 이유는 셰익스피어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는 그의 희곡 '뜻대로 하세요'에서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이 세상은 무대, 우리는 배우일 뿐"이라는 말을 한다.
매년 TV를 통해 '투르 드 프랑스'를 보다 보면 자전거를 타는 선수들보다 그들이 지나가는 배경에 더 눈길을 빼앗기게 된다. 프랑스의 아름다운 소도시 모습에 매료되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이탈리아에서도 에스파냐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마을과 소도시들은 어찌 저리 아름다울까. 왜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할까. 그 이유를 '이 세상은 무대, 우리는 배우'라는 연극적 관점에서 살펴본다.
첫째, 연극무대는 극장 선택에서부터 시작된다. 단군 할아버지께서 극장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잡으셨다. 넓지 않은 이 땅 모두가 수려한 산천이다. 세상 화려한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수도 서울을 비롯해 전 국토와 삼면의 바다가 모두 절경이다. 일단 성공이다.
둘째, 연극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개념을 설정하고 그에 부합하는 무대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각 도시와 마을은 전통과 지향점을 고려해 훌륭한 개념을 설정해두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 개념에 부합하는 무대를 만드는 과정에서 우리는 유럽보다 다소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도시나 마을은 대개 기존 건축 유산에 더해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아니다.
셋째, 무대의 각 요소는 통일성을 가지고 하나의 목표를 향해 조화를 이뤄야 한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긴다. 아름다운 전원풍경에 뜬금없이 고층아파트가 나타나는 정도는 그러려니 한다. 문제는 간판이다. 한국의 풍경은 간판으로 이뤄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적으로 허용된 간판만 해도 어지러울 정도인데 거대한 현수막과 풍선인형이 손을 흔들고 눈부신 LED가 깜박거린다. 인터넷에서 '한국 간판의 위엄' '스위스 한국 간판' 등의 검색어를 입력해 보시라. 알프스 산기슭의 아름다운 마을에 한국 간판들을 합성한 비교사진들을 보면 우리나라의 풍경은 단군 할아버지가 아닌 우리의 책임임을 즉시 알 게 될 것이다.
넷째, 작품의 주제는 배우를 통해 표현되고 무대는 배우들의 연기를 도와야 한다. 무대 배경막에 작품의 주제나 메시지를 인쇄해서 걸어두는 공연은 없다. 우리의 도시는 어떠한가. 거리 곳곳에 수많은 현수막이 걸려 있다. 그 현수막엔 사실상 욕설에 가까운 정치적 메시지들이 적혀 있다. 옛날 대중매체가 부족하던 시절의 선거철에나 잠시 필요했을 현수막들이 국민 모두가 손바닥에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21세기에 왜 필요한가. 신문과 TV와 유튜브와 SNS로는 정녕 모자라서 이러는 것인가. 모두가 시도 때도 없이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세상 같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배우의 대사와 행동 그리고 플롯을 통해 나와야 한다. 그것을 직접적으로 무대벽에 써놓는 짓은 학예회 무대에서도 하지 않는 저급한 방법이다. 심지어 그 현수막들은 시민의 삶을 방해한다. 교통신호와 표지판을 가리고 지하철 입구와 간판을 가린다.
'투르 드 프랑스'는 21일 동안 알프스 산맥을 포함한 프랑스 전역을 3400㎞ 이상 달려 마지막날 파리 샹젤리제에 들어온다. 그 샹젤리제에 있는 맥도날드 매장에는 세상 모든 맥도날드에 으레 달린 커다란 노란색 M자 간판 대신 조그만 흰색 간판이 달려 있다. 도시미관과의 조화를 위해 절제하기 때문이다. 절제는 제도에서 나오고 제도는 잘 운용돼야 한다.
박동우 무대미술가·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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