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희의동행] 물만밥과 김치 한 조각이 주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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췌장 절반을 잘라내는 큰 수술을 받았다.
갇혀 지내는 답답함도 답답함이었지만 그보다는 물만밥에 시큼한 김치 한 조각 올려먹으면 당장에라도 기운을 차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여러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라와 있는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도 내게 물만밥에 김치 한 조각은 더 특별하고, 최고의 음식이었다.
물만밥에 김치 한 조각으로 누리는 행복감과 안정감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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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그간 노환으로 힘들어하던 엄마를 보살피고, 폐암투병을 하는 동생을 챙긴 데 대한 상급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느닷없고 뜬금없이 마음속에 괴는 그 생각은 한참 동안이나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가? 정말 그런가? 기실 보상을 바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에 대한 간병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남게 될 회한과 후회를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한 이유도 있었고, 동생은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은데 그렇듯 덜컥 중병에 걸렸으니, 그 처지가 안쓰러워 저절로 손이 가고 마음이 갔다. 한데, 그 시간에 대한 보상이라니.
여하튼 내가 있던 병동은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병동이었다. 간호와 간병을 병원에서 맡음으로써 외부인은 통제되었고, 보호자 면회 또한 제한되었다. 그만큼 조용했고, 혼자 가라앉기 좋았다. 오히려 적절한 보살핌과 치료로 모처럼 푹 쉬다 나온 기분이었다. 살면서 한 번도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극진한 보살핌을 받아본 적이 없다. 언제나 모든 것을 혼자 해결했고, 종종걸음 쳤고, 전전긍긍하며 헤쳐 왔었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나로서는 호사를 누린 시간들인 셈이다.
어쨌든 병원에서의 시간들은 차분히 나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시간들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한데 한 가지. 딱 한 가지. 힘든 것이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병원 밥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영양을 따지고 환자에 맞게 정성껏 조리해 깔밋하게 차려져 나왔지만 도무지 입에 넣을 수 없었다. 밥을 물에 말아 김치 한 조각 올려먹는 그 개운함이 그리웠다. 평소에는 소박하다 못해 초라해 보일 그 밥상이 간절했다. 갇혀 지내는 답답함도 답답함이었지만 그보다는 물만밥에 시큼한 김치 한 조각 올려먹으면 당장에라도 기운을 차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여러 주의사항과 퇴원 후의 일정에 관한 설명을 들은 뒤 나는 서둘러 퇴원수속을 밟았다. 그리고 물만밥에 김치를 올려 느글거리던 속을 가라앉혔다. 약에 푹 절어 나온 나의 내부가 조금은 씻겨나가고 진정되는 느낌이었다. 잃었던 입맛도 다시 돌았다. 여러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라와 있는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도 내게 물만밥에 김치 한 조각은 더 특별하고, 최고의 음식이었다. 물만밥에 김치 한 조각으로 누리는 행복감과 안정감이라니. 행복은 그렇게 사소하고 늘 내 주변에 있었는데 나는 그걸 간과했다. 물만밥과 김치 한 조각. 그것은 내게 있어 그 어느 성찬도 부럽지 않은 왕후의 밥과 찬이다.
은미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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