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대통령-대통령비서실장-(장관)-비서실 출신 차관
송평인 논설위원 2023. 6. 28. 00:15
장관은 놔두고 차관만 바꾸는 인사
책임은 차관 실장 국장에게만 물어
장관은 책임 안 져 좋을 것 같지만
장관 배제한 대통령실 통치로 간다
책임은 차관 실장 국장에게만 물어
장관은 책임 안 져 좋을 것 같지만
장관 배제한 대통령실 통치로 간다
프랑스의 어느 정치가가 각료직을 제안받고는 차관이 책임지는 조건이라면 맡겠다고 했단다. 그 정치가는 각료직을 맡지 못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에서라면 문제없다. 이 정부는 장관에게 책임을 지우지 않는다. 책임질 일이 있으면 차관 실장 국장 과장에게 지운다.
김규현 국정원장이 인사 파동에도 불구하고 유임될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국정원이 문재인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는 데 있어 그동안 큰 실수를 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1급 인사는 부서장 책임이다. 지난해에는 이 정권에서 꽂아넣은 검사 출신 기획조정실장이 원장을 통하지 않고 직접 대통령에게 사직서를 내는 일이 있었고 최근에는 원장이 올린 1급 인사안에 윤 대통령이 결재까지 했다가 철회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그런데도 인사안을 사실상 주도했다는 원장 측근에게만 책임을 묻고 말 모양이다.
윤 대통령이 누구에게 무슨 얘기를 듣고 ‘킬러 문항’에 귀가 꽂혔는지 모르겠으나 자신이 지시한 킬러 문항 배제에 대한 대책이 없었다고 분노한 모양인데 정작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멀쩡하고 이번에는 차관도 멀쩡하고 다만 대학 입시 담당 국장이 경질되고 교육평가원장이 교체됐다. 위기를 모면한 이 장관은 대통령을 향해 ‘최고의 입시전문가’ 운운하며 이 정부에서 장관이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몸소 보여줬다.
‘킬러 문항’이란 게 문제가 있긴 하지만 교과 과정 밖도 아니고 교과 과정 내에서 여러 번 꼬아서 고난도로 낸 문항까지 다 ‘킬러 문항’으로 몰아 없앤다면 결국 물수능으로 갈 수밖에 없어 변별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물수능으로 가기로 한다면 그것도 하나의 정책이긴 하지만 물수능 예고를 학기 초가 아니라 학기 중에 하면서 어떻게 최고의 입시전문가인지는 모르겠다.
윤 대통령은 취임 1년을 맞은 지난달 9일 국무회의에서 “공무원들이 새 국정 기조에 맞추지 않고 애매한 태도를 취한다면 과감히 인사 조치하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국정 기조를 따라오지 못하는 장관들을 자신이 과감히 인사 조치하겠다는 말을 에둘러 한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발언 직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아니라 2차관이 교체됐다. 내가 보기에는 탈원전 폐기 정책이 대체로 잘되고 있는 것 같은데 윤 대통령에게는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원전 정책은 산자부에 가장 중요한 정책 중 하나다. 그에 부응하지 못했다면 일단 장관이 책임지고 그다음에 담당 차관이 책임지든가 해야 하는데 순서가 뒤집혔다. 장관도 바뀐다는 얘기가 있으니 그건 두고 보자.
윤 대통령 집무실 책상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선물받은 ‘the buck stops here(책임은 내가 진다)’라는 팻말이 놓여 있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한 번이라도 이 말을 진지하게 생각해 봤다면 도대체 대통령은 어떻게 책임을 질 수 있는지 자문해 봤어야 한다. 실제로는 대통령이 책임질 방법이 없다. 의원내각제라면 불신임이 예상될 때 자진 사퇴하든가 조기 총선으로 국민에게 책임 소재를 물을 수 있지만 대통령제에선 그럴 수 없다. 미국 대통령은 그래도 중임제니까 다음 선거에서 패배하는 것으로 책임을 진다고 하지만 한국 대통령은 단임제여서 임기가 끝나면 그냥 끝이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형사상 중대한 범죄를 저질러 탄핵을 당하는 것 말고는 책임질 방법이 없다. 그러면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담당 장관이 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윤 정부에서는 대통령도 책임지지 않고 장관도 책임지지 않는 시스템이 정착되고 있다.
세상에 책임지지 않는 장관 자리만큼 좋은 자리가 어디 있겠나. 그러나 그런 장관은 자칫 핫바지가 될 수 있다는 점은 각오해야 한다.
교체된 산자부 2차관 자리에 대통령실 비서관이 갔다. 곧 대거 차관 인사가 있을 예정인데 대통령실 비서관들이 줄줄이 가는 모양이다. 이런 차관들이 장관의 말에 귀를 기울일 리가 없다. 오로지 대통령실에서 나오는 말에만 귀를 기울일 것이다. 대통령의 뜻에 따라 대통령실이 직접 차관을 상대하는 국정이 이뤄지고 국정의 지휘도는 대통령-대통령비서실장-(장관)-차관이 될 것이다. 어디서 많이 본 지휘도 같지 않나. 검찰의 지휘도다. 스스로 판단에 따라 일하고 그 일에 책임지는 장관 따위는 괄호쳐버려야 이런 지휘도가 성립한다.
김규현 국정원장이 인사 파동에도 불구하고 유임될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국정원이 문재인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는 데 있어 그동안 큰 실수를 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1급 인사는 부서장 책임이다. 지난해에는 이 정권에서 꽂아넣은 검사 출신 기획조정실장이 원장을 통하지 않고 직접 대통령에게 사직서를 내는 일이 있었고 최근에는 원장이 올린 1급 인사안에 윤 대통령이 결재까지 했다가 철회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그런데도 인사안을 사실상 주도했다는 원장 측근에게만 책임을 묻고 말 모양이다.
윤 대통령이 누구에게 무슨 얘기를 듣고 ‘킬러 문항’에 귀가 꽂혔는지 모르겠으나 자신이 지시한 킬러 문항 배제에 대한 대책이 없었다고 분노한 모양인데 정작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멀쩡하고 이번에는 차관도 멀쩡하고 다만 대학 입시 담당 국장이 경질되고 교육평가원장이 교체됐다. 위기를 모면한 이 장관은 대통령을 향해 ‘최고의 입시전문가’ 운운하며 이 정부에서 장관이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몸소 보여줬다.
‘킬러 문항’이란 게 문제가 있긴 하지만 교과 과정 밖도 아니고 교과 과정 내에서 여러 번 꼬아서 고난도로 낸 문항까지 다 ‘킬러 문항’으로 몰아 없앤다면 결국 물수능으로 갈 수밖에 없어 변별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물수능으로 가기로 한다면 그것도 하나의 정책이긴 하지만 물수능 예고를 학기 초가 아니라 학기 중에 하면서 어떻게 최고의 입시전문가인지는 모르겠다.
윤 대통령은 취임 1년을 맞은 지난달 9일 국무회의에서 “공무원들이 새 국정 기조에 맞추지 않고 애매한 태도를 취한다면 과감히 인사 조치하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국정 기조를 따라오지 못하는 장관들을 자신이 과감히 인사 조치하겠다는 말을 에둘러 한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발언 직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아니라 2차관이 교체됐다. 내가 보기에는 탈원전 폐기 정책이 대체로 잘되고 있는 것 같은데 윤 대통령에게는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원전 정책은 산자부에 가장 중요한 정책 중 하나다. 그에 부응하지 못했다면 일단 장관이 책임지고 그다음에 담당 차관이 책임지든가 해야 하는데 순서가 뒤집혔다. 장관도 바뀐다는 얘기가 있으니 그건 두고 보자.
윤 대통령 집무실 책상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선물받은 ‘the buck stops here(책임은 내가 진다)’라는 팻말이 놓여 있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한 번이라도 이 말을 진지하게 생각해 봤다면 도대체 대통령은 어떻게 책임을 질 수 있는지 자문해 봤어야 한다. 실제로는 대통령이 책임질 방법이 없다. 의원내각제라면 불신임이 예상될 때 자진 사퇴하든가 조기 총선으로 국민에게 책임 소재를 물을 수 있지만 대통령제에선 그럴 수 없다. 미국 대통령은 그래도 중임제니까 다음 선거에서 패배하는 것으로 책임을 진다고 하지만 한국 대통령은 단임제여서 임기가 끝나면 그냥 끝이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형사상 중대한 범죄를 저질러 탄핵을 당하는 것 말고는 책임질 방법이 없다. 그러면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담당 장관이 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윤 정부에서는 대통령도 책임지지 않고 장관도 책임지지 않는 시스템이 정착되고 있다.
세상에 책임지지 않는 장관 자리만큼 좋은 자리가 어디 있겠나. 그러나 그런 장관은 자칫 핫바지가 될 수 있다는 점은 각오해야 한다.
교체된 산자부 2차관 자리에 대통령실 비서관이 갔다. 곧 대거 차관 인사가 있을 예정인데 대통령실 비서관들이 줄줄이 가는 모양이다. 이런 차관들이 장관의 말에 귀를 기울일 리가 없다. 오로지 대통령실에서 나오는 말에만 귀를 기울일 것이다. 대통령의 뜻에 따라 대통령실이 직접 차관을 상대하는 국정이 이뤄지고 국정의 지휘도는 대통령-대통령비서실장-(장관)-차관이 될 것이다. 어디서 많이 본 지휘도 같지 않나. 검찰의 지휘도다. 스스로 판단에 따라 일하고 그 일에 책임지는 장관 따위는 괄호쳐버려야 이런 지휘도가 성립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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