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엄마가 ‘웩’ 해줄게”… 사랑 가득한 짐승의 토악질
삭혀진 고기는 건강한 소화 돕는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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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짐승이건 새끼를 정성들여 키우는 부모의 모습은 감동을 자아냅니다. 한낱 미물인 저들도 제 새끼를 먹여살리기 위해 헌신하는데 왜 인간 세상엔 험악한 사건들만 일어나는지 절로 한숨이 나오기도 하지요. 오늘 먼저 보실 흰꼬리열대조 가족의 먹방(Nature Seychelles Facebook)도 절절한 부모사랑이 묻어납니다.
어미새의 헌신적인 보살핌으로 살이 뒤룩뒤룩 찐 새끼 흰꼬리열대조는 오늘도 밥타령에 여념이 없습니다. 묵직한 먹거리를 뱃속에 품고 온 어미의 부리를 사정없이 파고들며 요란하게 울부짖습니다. 그 말은 저들만 알아들을 수 있겠지만, 속내를 해석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아요. “밥줘, 밥달란 말이야. 밥 달라고…” 이윽고 어미의 몸속에서 큼지막한 물고기 한마리가 게워집니다. 새끼는 목구멍을 한껏 젖히며 자신의 위장 속으로 받아들입니다. 어미새의 부리에 낚아채진 다음부터 살기 위한 일념으로 처절하게 몸부림쳤을 물고기가 느꼈을 공포와 절망이 일순간 스쳐지나갑니다. 그러나 어미새 뱃속으로 직행한 이 물고기가 다시 빛을 봤을 때는 위산에 몸이 반쯤 게워지고 삭혀진 상태였습니다. 물론 혼은 빠져나갔고요. 이것이 이 물고기의 운명이었죠. 한결 야들야들해지고 부드러워진 물고기의 몸뚱아리를 새끼는 놓치지 않고 목구멍을 벌려 단숨에 받아먹습니다. 아마도 이 둥지에선 비린내와 토사물 특유의 코를 찌르는 쿰쿰한 냄새가 뒤섞여 진동을 할 거예요.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기준일 뿐. 흰꼬리열대조의 둥지는 내 새끼 먹여살려 건강하게 바다로 날려보내려는 부모 사랑의 향기로 가득합니다.
우리나라에선 살지 않는 열대조는 사다새·군함새·가마우지 등과 함께 사다새목에 속합니다. 왕성한 먹성으로 이름난 물새의 무리들이죠. 그 중에서도 가장 맵시있고 아름다운 모습을 한 종류가 열대조랍니다. 몸통길이보다 훨씬 기다란 한 쌍의 꼬리깃털이 트레이드마크예요. 바다 수면 위 10m 위에서 폭격기처럼 수직낙하해 물고기를 사냥할 때 기다란 꼬리깃털은 마치 제트엔진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이렇게 뱃속에 두둑하게 통째로 담은 물고기는 적당히 삭혀지면서 먹기 좋은 상태로 말랑말랑해집니다. 이처럼 구토(regurgitation)는 제법 적지 않은 짐승들에게서 보여지는 육아방식입니다. 특히 두드러진 무리가 있는데, 바로 슴새·사다새 등 바닷새들과 개과 맹수들입니다.
단란한 새 가족의 식사시간을 담은 사진입니다. 우리나라 신종 텃새로 자리잡으며 강과 호수의 토종민물고기의 씨를 말리고 있는 가마우지의 사촌 뻘로 남극바다에서 살고 있는 남극가마우지입니다. 부모새들이 위장속에서 적당히 삭혀 물렁물렁해진 물고기를 막 게워내서 새끼들에게 주려는 모습니다.
지구상에서 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새로 콘도르와 1·2 등을 다투는 신천옹(알바트로스) 역시 어미가 게워낸 먹이들이 새끼를 키워내는 소중한 영양분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새끼를 길러내는 바닷새들의 특징 중 하나는 상당수가 새끼들의 몸집이 어미나 아비를 능가할 정도로 커진다는 점입니다. 이른바 ‘소아 비만’인 셈이죠.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새끼들의 몸집이 커지면, 부모새들은 더 이상 돌보는 건 포기합니다. 사실상 방치되고 유기되는 셈인데, 이 가혹한 시기를 거쳐 굶주리게 되면서 새끼새들은 ‘인생의 쓴맛’을 먼저 보게 되고, 비대해졌던 몸집도 차차 날렵해지면서 비로소 부모새들처럼 날 수 있게 됩니다.
젖먹이 짐승이 개과 맹수들에게 구토는 또한 훌륭한 이유식이 되어줍니다. 어미젖에 의존하다가 맹수로서 직접 다른 짐승의 살과 피로 연명해야 하는 시기를 연결해주는 훌륭한 징검다리 역할을 해줍니다.
개과 맹수의 맏형이라고 할 수 있는 늑대의 육아에서 구토는 핵심을 차지합니다. 체계적이면서도 헌신적인 육아로 유명한 늑대 사회에서 새끼들은 맹수로 단련되는 첫 과정으로 부모의 위장에서 반쯤 삭혀진 고기를 맛보게 됩니다. 그 다음 단계는 이미 혼이 빠져나가 고깃덩이가 된 짐승 사체입니다. 이런 단계를 거쳐 사냥꾼으로 성숙해갑니다. 아프리카의 잔혹하면서도 영리한 사냥꾼인 리카온 역시 ‘구토 육아’를 하는 맹수입니다. 경우에 따라서 이미 죽어 썩어가는 고기들도 파먹는 다른 맹수들과 달리, 리카온은 눈앞에서 펄떡이는 사냥감을 잡은 뒤 채 목숨도 끊어지기 전에 내장부터 끄집어내 파먹는 습성으로 악명높죠.
이렇게 찢기고 삼켜진 고기들은 보들보들하고 싱싱한 이유식이 돼서 새끼들의 위장을 든든하게 채워줍니다. 오늘도 맹수들의 토굴과 바닷새들의 둥지에서는 배고프다는 새끼들의 쉴새없는 쪼아댐에 어미와 아비들은 ‘웩 웩’ 하면서 위장을 채웠던 먹잇감을 게워내고 있을 겁니다. 그 중 일부는 통째로 삼켜진 몸뚱아리가 고스란히 남아 여전히 눈을 치껴뜨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삭혀진 몸뚱아리들은 다시 새끼들의 뱃속으로 들어가 대를 이어 번성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줄 것입니다. 비린내와 살코기 썩는 냄새와 토사물 특유의 코를 찌르는 시큼함으로 뒤덮인 짐승 보금자리에서 오늘도 새끼를 먹여살리려는 본능의 향기는 무럭무럭 피어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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